곰장어·붕장어로 몸보신, 주꾸미·낙지·고등어로 입호사
부산은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공단처럼 쭉 펼쳐진 해변 때문만은 아니다. 정신 못 차리게 할 정도로 신선한 생선이 있다. 부산 맛골목의 다른 축, 바다음식골목을 찾아 나서보자.
대표적인 곳은 장어골목이다. 정확히 말하면 곰장어골목, 붕장어골목이라고 해야 맞다. 장어는 종류가 수십 가지다. 우리가 즐겨 먹는 장어는 뱀장어, 곰장어(먹장어), 붕장어(아나고), 갯장어(하모) 등이다. 서울의 장어집은 대부분 민물장어인 뱀장어를 취급한다. 해풍을 친구로, 어부를 아버지로 둔 부산 사람들은 먹지 않는다. 곰장어는 꼼장어라고도 부른다. 꼼수에 잘 걸려드는 장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수심 100~300m 바다의 자갈이나 개흙에서 서식해 양식은 어렵다. 이놈은 독하다. 껍질을 벗기고도 10시간 넘게 생존한다. 잘 꺾이지 않는 곰장어의 생명력 때문인지, 예부터 부산에서는 독한 방법으로 먹었다. 손톱만한 불씨에도 활활 타는 짚불에 던져 구웠다. 뜨거운 불기운에 곰장어는 공포에 가까운 몸부림을 친다. 부산 사람들이 곰장어를 먹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몰려와 먹을거리가 부족하자 장에 팔 수 없는 부실한 장어는 끼니가 되었다.
기장 곰장어
기장 곰장어 옛날 방식으로 굽는 법 1
기장 곰장어 옛날 방식으로 굽는 법 2
기장 곰장어 옛날 방식으로 굽는 법 3
기장 곰장어 옛날 방식으로 굽는 법 4
기장 곰장어 옛날 방식으로 굽는 법 5
기장 곰장어 옛날 방식으로 굽는 법 6
기장 곰장어 요즘 방식으로 굽는 법
남자한테 좋은데, 참 좋은데→기장 장어골목들
기장군에는 짚불구이 곰장어촌이 있다. ‘기장곰장어’(051-721-2934)를 운영하는 김영근(69)씨는 어린 시절 하루 3마리만 먹으면 꽁지에 불난 개처럼 천방지축 뛰어다녀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고 한다. “참 성가신 놈이다. 대나무 통발로 잡는데 살려고 진액을 뿜어낸다. 진액을 없애는 작업은 고역이었다.” 이 거리는 35년여 전 곰장어집이 하나둘 늘면서 형성됐다. 80년대 후반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기장곰장어는 지금도 연 매출이 14억원일 정도다. 처음에는 옛날 방식대로 구웠다고 한다. “비 오면 짚을 다 버리지, 1㎏ 굽는 데 짚단이 6~7개 들어가는데 논 한마지기당 6만~7만원 줬어.” 지금은 얇은 철로 이은 철판에 곰장어를 얹고 그 아래 짚풀을 태워 익힌다. 3번에 걸쳐 익혀낸다.
김씨가 옛날 방식 재현에 나섰다. 에일리언이 뚝뚝 침 떨어뜨리듯 미끈거리는 곰장어는 활활 짚더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제아무리 해리 포터라 해도 구해낼 수 없을 정도로 금세 곰장어는 생을 마쳤다. 시꺼멓게 변한 짚단 사이로 곰장어가 노려본다. 이런 아찔한 상상은 목장갑으로 껍질을 쭉쭉 벗겨 잔혹한 육식동물의 본성을 마구 자랑하는 순간 잊어버린다. 맛있다는 얘기다. 옛날 방식으로 구우면 껍질이 더 검게 변한다. “남자한테 좋은데, 참 좋은데.”
기장군 죽성리 붕장어골목
기장군 죽성리 붕장어골목
같은 소리가 기장군 죽성리(월전) 붕장어골목에서도 들린다. 붕장어는 등이 다갈색, 배는 흰색, 지느러미는 검다. 목에서 꼬리까지 점선도 있다.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로 징그럽다. 붕장어촌은 장어를 구워 먹는 이들이 없었다면 찢어진 서커스 천막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허름하다. 바다 쪽이 뻥 뚫려 오륙도가 친구 하자고 덤벼들지만 고개를 돌릴 수는 없다. 작은 화로에 직접 굽는 ‘덕계집’(010-4877-4140)의 붕장어 맛이 틈을 안 준다. 기장곰장어가 <성균관 스캔들>의 ‘문재신’이라면 이곳 붕장어는 ‘이선준’이다. 짚불구이 곰장어가 위장을 차곡차곡 메웠지만 ‘이선준’을 마다할 수는 없다. 왜 남자한테만 좋은지 따지는 여러 명의 ‘김윤희’들이 이 자리 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기장시장에 들어서면 여느 지방 소도시와 다름없는 번잡함과 소란스러움이 있다. 10년 전부터 대게골목이 만들어졌다. 열세 집은 러시아산과 국산을 같이 판다. ‘기장시장대게’(051-721-0010)는 운동선수의 넓적다리처럼 굵은 대게 다리가 나그네를 유혹한다. 연화리 해녀횟집골목에서 30여년 전 해녀들은 바다 생물들을 빨간 광주리에 펼쳐 팔았다. 지금은 작은 천막집도 생겼다.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면 등대가 보이고 바람이 살랑 분다. 간판을 옮겨다니며 한 천막을 두 집이 함께 사용한다. ‘성주할머니’(010-7227-7114)의 주인 김성주(74) 할머니는 바다에서 톳을 깨느라 정신이 없다.
기장군 연화리 해녀횟집골목
기장군 연화리 해녀횟집골목
맛 정겹고 종목 다양해→어묵·고갈비·주꾸미·고래고기 골목
부산 하면 어묵이다. 부산어묵은 인적이 닿는 곳을 따라 기찻길이 쭉 뻗은 것처럼 전국적으로 소비되고 있다. 중구 부평시장에는 어묵골목이 있다. 과거 어묵공장 자리였다. 3대가 이어가는 ‘환공어묵’(051-245-2969)은 환갑을 넘겼다. 환공어묵은 질 좋은 생선을 한번 찌고 또 튀겼다. 앞니에 닿는 탱탱함이 매혹적이다. 환공어묵은 최근 군납도 결정되었다고 한다.
환공어묵의 여러 종류의 어묵들
추억을 불러오는 육고기가 통닭이라면 물고기는 고갈비다. 광복동 고갈비골목에는 1974년 문을 연 ‘원조 남마담 고갈비’(051-246-6076)가 아직까지 있다. 한창 성업하던 70~80년대는 고등어를 하루 300~400마리씩 구웠다. “우리 집은 헐타(싸다). 10·26 겪은 사람도 지금도 왔다 간다.” 걸걸한 주인 임애순(67)씨의 말투가 정겹다.
지척인 중앙동에는 주꾸미골목이 있다. 석쇠에 구워 나오는 주꾸미는 술안주로 딱이다. ‘뚱보집’(051-246-7466)이 분주하다. 자갈치시장 고래고기골목, 장어골목과 연예인 이승기가 야구선수 이대호를 만나 더 유명해진 태종대 조개구이골목도 가볼 만하다.
자갈치시장 고래고기골목
횟집골목을 빼면 섭섭하다. 부산 맛객들은 광안리나 해운대보다 미포와 청사포를 추천한다. 미포는 소박한 횟집들이 몰려 있는 포구다. 바다음식골목이 해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범천동 귀금속거리에는 조방낙지골목이 있다. 지금은 골목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몇 집 없다. 귀금속거리가 조성이 되면서 하나둘 사라졌다. 하잘것없는 금덩어리 따위가 긴 세월 이어가는 맛을 쫓아낸 꼴이다. 60년대부터 한자리를 지킨 ‘원조낙지볶음 할매집’(051-643-5037)은 지금도 단골들로 북적인다. ‘조방’은 자유시장 자리에 있었던 조선방직회사의 준말이다.
‘원조낙지볶음 할매집’의 낙지볶음
평범해도 맛은 좋아→뚝배기·칼국수 골목 등
육고기·물고기의 번창에도 평범한 음식으로 맛을 지키는 골목도 있다. 동래구 칼국수골목과 부전동 뚝배기골목이다. 뚝배기가 뽀글뽀글 끓을 때 관광객들은 바로 앞에 있는 부산롯데호텔을 찾는다. 부산롯데호텔의 일식당 ‘모모야마’(051-810-6360)의 야경 때문이다. 정성스러운 손놀림으로 초밥을 빚는 주현식 셰프 뒤로 도시의 불빛 수만점이 반짝인다. 최근 43층으로 일식당을 옮긴 뒤 데이트족이나 근사한 분위기를 즐기는 이들이 찾고 있다.
부산롯데호텔 일식당 ‘모모야마’
여행의 마지막은 부산역 앞에 있는 러시아골목과 ‘상해거리’다. 부산에 정박한 미 해군들이 찾았다고 해서 한때 ‘텍사스 스트리트’라고 불리기도 했다. 영어와 생뚱맞은 러시아어가 거리를 메우고 있다. 러시아 보따리상인들이 자주 찾던 골목이다. 16년째 러시아 음식을 파는 ‘꾸리샤 그릴’(051-441-6433)의 주인 김영희씨는 러시아 동포한테 음식을 배웠다. 상해거리는 1884년 청나라 영사관이 이곳 화교학교 자리에 들어서면서 시작되었다. 현재 16개 중식당이 성업중이다. 소박한 ‘일품향’(051-467-1016)은 늦은 시간까지 손님들이 끊이지 않는다.
'일품향'의 만두
부산=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