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명인 이름난 나주 나씨 종부 강순의씨의 특별한 나물전 맛보기
봄나물로 전 부치면
싱싱하고 단맛 살아남아

땅은 아직 차갑다. 하지만 마른 나뭇가지에는 환한 볕이 살포시 내려앉기 시작했다. 봄이 멀지 않았다. 변하는 계절을 따라 식탁도 기지개를 펼 준비를 한다. 지난 17일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능평리, 김치명인으로 이름난 강순의(65)씨를 찾았다. 그곳에는 봄 냄새가 가득한 밥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강씨의 이름이 박힌 나무 간판을 지나 마당에 들어서자 낯선 풍경을 만났다. 빨랫줄에 세탁물 대신 커다란 바구니들이 비닐종이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안에는 손가락만한 생선 알들이 보인다. “어란입니다. 시어머니가 이맘때면 늘 신랑한테 해줬던 음식이죠.”
어란은 민어알이나 숭어알을 소금이나 간장에 절여 말린 음식이다. 일종의 포다. 강씨는 숭어알에 참기름도 발라 말린다. 다음달이면 완성이다. 3개월 동안 어란은 마치 황태처럼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겨울바람을 견뎠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그는 이 수고스러운 음식을 지금도 만든다. 평생 부엌을 생명처럼 지켜온 종부로서 살아온 내력 때문이다.
강씨는 나주 나씨 반계공파 25대 종부다. 충청도 당진이 고향인 강씨는 21살에 나도균(68)씨와 결혼해서 매서운 종부의 삶을 시작했다. 시증조모 밥상까지 끼니때마다 “어른들 밥상과 간식”을 차렸다. 어란도 그 간식 목록에 있었다.
나주 나씨 종가는 ‘입는 것’보다는 ‘먹는 것’이 중요했던 집안이었다. “시어머니는 옷은 깨끗하게 빨아 입으면 된다고 하셨어요. 대신 음식은 신경을 많이 쓰셨어요. 제철 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었어요.”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식재료는 이 댁을 지키는 파수꾼이었다. 지글지글 전 부치는 소리는 나주 종가에 봄이 왔음을 알리는 전령이었다. 어란이 나주 종가 봄 밥상의 애피타이저라면 소박한 봄나물전은 메인요리다. “봄나물로 전을 부치면 싱싱하고 단맛이 살아남아 있어요.”
강씨가 감태, 달래, 갯나물, 봄동을 부엌 바닥에 펼쳐 봄을 담기 시작한다. 강씨의 나물전의 기초는 다시마육수다. 밀가루에 붓는 다시마육수에는 자연재료에서 얻을 수 있는 감칠맛이 풍부하다. 자체에 짠맛도 있어 특별히 간을 할 필요도 없다. 물이 끓어오르자 그가 재빨리 불을 끈다. 오래 끓이면 점액질이 나와 미끈거리기 때문이다. 전에는 고기 대신에 마른 새우가 들어간다. “고기는 식으면 맛이 없어요.” 잘게 썬 대파, 홍고추도 들어간다. 홍고추는 화려한 색을 선물한다.
“감태는 지금이 젤로 맛나죠. 깨끗이 씻어 소쿠리에 밭치면 물이 빠져요.” 다져 넣은 새우와 감태 때문에 바닷가 갈매기 우는 소리가 귓등을 때린다. “달래는 손질이 중요해요. 머리가 통통하잖아요. 칼등으로 잘 으깨야 매콤한 맛이 살아남아요.” 숙련된 식재료 손질도 맛의 비결이다. 아삭아삭 씹는 맛과 그리 맵지 않은 매콤함이 살아 있다. 갯나물은 세발나물이라고 한다. 전라남도 신안, 진도 등지에서 갯벌의 염분을 먹고 자란 나물이다. 이른 봄에 그 맛이 활짝 꽃핀다. 갯벌의 흙 같은 자연의 맛이 투박하게 치고 올라온다.
강씨 나물전의 으뜸은 역시 봄동전이다. 봄동은 일년 중에 딱 봄 한철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이때를 놓치면 아쉬움이 크다. 가을배추보다 조금 두꺼운 봄동은 노지에서 제멋대로 자라 ‘떡배추’라고도 부른다. “봄동은 두 장을 맞붙여 지져요.” 그래야 늘어지지 않고 봄동 자체의 식감을 즐길 수 있다. 강씨는 솜씨 좋게 숟가락을 들고 지진다. 팬에 올라간 봄동에 밀가루 반죽을 숟가락에 가득 담아 붓는다. 지글지글, 자글자글, 소리가 춤춘다. 완성된 나물전은 봄의 한 귀퉁이를 뚝 잘라 식탁에 펼친 모양새다.
다시마 육수로 밀가루 반죽
고기 대신 새우 넣어 식어도 고소해
“봄동겉절이와 유채나물겉절이도 같이 맛보세요.” 김치명인이 솜씨를 발휘해서 달콤하고 매콤한 김치를 봄나물의 짝으로 낸다. 봄나물이 짝을 제대로 만나 환상의 궁합을 자랑한다. 소문대로다. 그의 김치는 혀를 사로잡는다. 이름깨나 날리는 음식연구가들도 과거 앞다퉈 그의 김치를 배웠다.
“사방 80리가 종가 소유였던 땅을 다 팔 정도로 하는 사업마다 잘 안된 종손” 때문에 얻은 명성이라고 그는 말한다. “큰애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 길거리 나앉게 생겼어요. 애가 셋이었죠. 세상 물정은 모르고,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께 배운 음식솜씨는 있고 해서 폐백 이바지 음식을 시작했어요.” 강씨의 폐백 이바지 음식은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한 사람 해주면 그이가 2~3명을 이어주는 겁니다.” 폐백음식으로 집을 두 채나 살 정도로 돈을 벌었다. 9~11가지 만들면 약 300만원, 20가지 넘으면 800만원 이상 받았다. “벌면 뭐합니까! 1~2년 안 돼 차압 딱지 들이닥치고 했어요.” 종부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강씨의 김치 맛은 폐백음식을 보낼 때 서비스로 보낸 백김치, 장아찌 때문에 입소문이 났다. “‘60 평생 이런 김치 맛을 처음 본다’는 소리를 하는 단골들이 늘기 시작했어요.” 음식은 맛이 모든 것을 알려준다. 1993년 서울시 농업기술센터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김치강의 요청이 들어왔다. 강의는 대박이었다.
요리 스승인 시어머니 문사재씨는 5년 전에 작고했다. 고생한 기억들조차 추억이 되었다. “처음 시댁에 와서 어머니가 ‘정지에 가봐라’라고 하는 소리를 못 알아들어 혼났어요. 충청도에서는 부엌이라고 하죠.” 시어머니는 “큰 밥상만한 홍어”를 씻지 않고 종이에 둘둘 말아 짚단 사이에 넣고 꼬박 일주일 삭혔다. 육회는 금방 잡은 쇠고기를 5일장 열릴 때까지 시원한 곳에 두었다가 초고추장에 비볐다. 강씨는 강의 일정으로 바쁜 와중에도 그런 솜씨를 발휘했던 어머니가 그립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 recipe - 강순의 선생이 알려주는 봄동전재료
봄동 3포기, 마른 새우 150g, 다시마국물(물 5컵, 사방 10cm 크기 다시마 2장) 3큰술, 소금 약간, 반죽(밀가루 5큰술, 찹쌀가루 5큰술, 다시마국물 1/2컵)만들기
1. 봄동은 잎이 작은 것을 고른다. 밑동을 자르고 씻는다.
2.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봄동을 넣는다. 살짝 데쳐 식히면서 물기 뺀다.
3. 마른 새우는 다진 뒤 다시마국물을 넣고 섞어 부드럽게 불린다.
4. 밀가루, 찹쌀가루, 다진 새우, 소금 약간을 넣고 섞는다. 다시마국물을 부어 가며 반죽한다.
5. 팬에 식용유를 바르고 봄동 앞이 마주보게 2장씩 나란히 포갠 뒤 그 위에 숟가락으로 반죽을 떠 얹는다.
6. 노릇해지면 봄동을 뒤집어 반죽을 또 부어 익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