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찌개가 안심스테이크보다 어려워

박미향 2012.04.29
조회수 9114 추천수 0

1세대 스타셰프 윤정진 대중음식 조리에 나선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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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자 맛난 냄새가 난다. 고불고불 좁은 골목 양편에는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중세 유럽의 지하 도시를 탐험하는 것처럼 호기심이 끓어오른다. 고소한 비빔밥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히나 싶더니 파스타가 유혹의 손짓을 보낸다. 뜨끈한 사케 한잔이 외로운 도시인을

위로하는 듯하더니 이내 시원한 맥주가 껄껄 웃으며 맞는다. ‘씨제이 푸드월드’(서울 중구 동호로)는

삼호어묵, 행복한 콩, 백설관 등 17개 씨제이의 외식브랜드가 모여 있는 플래그십 스토어다. 이제

문을 연 지 두 달 남짓 됐다.
한 끼를 해결하려고 길게 줄을 선 직장인들 사이로 분주하게 다니는 한 남자가 보인다. 180㎝가 훌쩍

넘는 키, 두툼한 손바닥, 쩌렁 울리는 목소리의 소유자 윤정진(44·사진) 셰프다. 국내 스타 셰프의

계보를 따지자면 윤씨는 1세대다. 1999년부터 <최고의 요리비결>, <6시 내고향> 등 각종 티브이

요리프로그램에 출연해 유명세를 탔다. 호텔, 고급 퓨전레스토랑 ‘시안’, 도자기 전문업체 광주요가

만든 고급 한식당 ‘가온’ 등이 그가 거쳐온 곳이다.
그는 “대한민국 1%”를 위해 요리했다. 한 끼에 30만원이 넘는 삼계탕과 4만원짜리 고등어조림을

만들고 스테이크 접시에 각종 장식으로 예술혼을 불태웠다. 그랬던 그가 요즘 한 끼 6000원 하는

직장인들의 찌개를 끓이고 있다. 그의 정식 직함은 ‘씨제이 푸드빌 에프앤비 복합화 티에프 부장’이다.

푸드월드의 메뉴를 개발하는 총괄 주방장인 셈이다. “대중 속으로 들어가 그동안 (요리)한 것들을

풀어내고 싶었어요. 내 음식이 어떻게 융화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과정이 재미있습니다. 된장찌개,

김치찌개는 흔한 음식이지만 제대로 맛을 내기란 또 쉽지 않죠.”

 

최고경영자 눈치 대신 손님들과 직접 만나는 즐거움 얻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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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식 단품요리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다. 각오도 단단하다. 해물을 듬뿍 넣은 된장찌개, 비빔밥이

 곁들여진 청국장 등 소소한 차이를 요리에 담는다. 매생이국도 전통 완도식으로 낼 예정이다. “완도에

서 매생이국은 원래 굴을 넣어 끓이지 않았어요. 돼지고기 비계와 김치를 볶아 물을 넣고 끓이죠.

양식이 대중화되기 전에 굴은 흔하지 않았거든요.” 3년 동안 <6시 내고향>에 출연해 전국을 다니면서

 익힌 할머니들의 손맛은 그의 큰 자산이다. “두메산골에 들어갈 때는 소주 한 박스와 치킨을 사들고

갔어요. 마을회관에 떡하니 풀면 주민들은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주름진 시골 촌부의

무릎에 스스럼없이 누워 소박한 음식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만족감이 크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운영할 때는 조심스럽죠. 그림자서비스를 해야 하니깐

‘맛이 있으셨습니까?’ 질문도 쉽게 할 수 없었어요. 비서실에서 연락이 오면 못 드시는 음식부터,

드시는 습관까지 챙기고 올라오는 계단 수까지 알려드리죠. 앉는 자리부터 고민이 됐어요.” 컨디션이

안 좋은 최고경영자는 쳐다보지도 못했다. 눈짓 한번 잘못했다간 사달이 나기 때문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다르다. 식탁을 돌며 “맛있으셨어요? 밥공기 한 그릇 더 달라고 하세요”라고 묻고, 아이들에게는

 “피자 맛있니? 우리는 화덕으로 굽는다”고 말하면서 웃는다.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웃는 일들이

즐겁기만 하다. 그들과 소통하면서 배우는 것도 많다. “파인 다이닝은 어찌 보면 더 쉬워요. 사람의

뇌는 어떻게든 만들어내요. 하지만 그냥 평범해 보이는 요리에 깊은 맛을 내는 것은 어렵죠. 접시에

여러 가지 테크닉으로 잔재주를 부리기보다는 한 가지 맛이라도 깊이를 주려고 노력”하면서 그는

새로운 맛의 세계를 만들고 있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육수다. “고급 한식이든 양식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육수입니다. 사골, 멸치, 다시마를 넣어 제대로 내려고 합니다.” 그는 달마다 테마를

 정해 제철음식 등을 만들 예정이다.
그가 요리사가 된 것은 봄에 꽃이 피고 여름에 매미가 우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요리사였다. 미8군 요리사였던 아버지는 퇴근 무렵이면 맛있는 것들을 가져왔다. 그의 혀는

강하게 단련되었다. 리베라 호텔, 스위스 그랜드 호텔 등 10여년간 호텔 요리사로 일했다. 요리사로서

 회의가 들 무렵 퓨전레스토랑 시안에 “무심하게 아무 생각 없이” 입사를 했다. 최고경영자의 권유로

미국 캘리포니아 샌타모니카로 요리 견학을 갔다가 충격을 받았다. “메기가 통으로 튀겨져 나오고

캐비지에, 산비둘기가 미디엄으로 쪄져서 나왔죠. 접시 바닥에는 커민 소스가 깔려 있고, 드레싱은

차야 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뜨거운 소스가 나오는 거예요.” 요리사로서 “나도 해보자”라는 뚜렷한

목적의식이 생겼다. 4년 동안 시안에서 일하면서 열흘 이상 쉰 적이 없다. 재미있는 요리를 창조하고

맛을 내는 일에 미쳐 있었다.

전국 몇바퀴 돌며 한식 장인들 만나 향토음식에 눈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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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한식요리사의 길을 걷게 된 것은 고급 한식레스토랑 가온을 만든 조태권 회장 때문이었다.

 조 회장은 가온 오픈을 앞두고 준비시간으로 1년 반을 줬다. 그는 전국을 세바퀴 반 돌면서

향토음식을 맛보고 실습을 했다. 장안에 이름깨나 날리는 한식요리사들을 찾아다니면서 개인교습을

받았다. 유약을 바르지 않는 “숨 쉬는 독”에 된장과 고추장을 담가 맛을 봤다. 화려하기만 한 그의

이력에도 어두운 그림자는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연 기흥별당은 1년 만에 문을 닫았고 몇 건의

사기도 당했다.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으로 이겨냈다.
그는 전국 곳곳을 파헤치고 메워 갯벌이 사라지는 현실이 안타깝다. 건강한 우리 식자재가 그만큼

사라지기 때문이다. 한식 세계화에 대해서도 한마디 한다. “일본 하면 기코만 간장이 떠오르잖아요.

우리 식자재가 세계 곳곳에 퍼져야 됩니다. 떡볶이를 만들어 먹으려고 해도 고추장이 있어야 하죠.

이탈리아 슬로푸드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일본은 초밥을 들고 온 셰프들을 위해 전세기를 띄우더라고요.”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윤정진 셰프의 <스팸부대전골>
◉ 재료 | 육수(물 1L, 대파 60g, 무 300g, 청양고추 40g, 마늘 80g, 건다시마 60g, 소금 30g,

청양고춧가루 40g, 간장 35g), 주재료(베이컨 50g, 스팸 55g, 햄 75g, 비엔나소시지 30g,

수제 소시지 40g, 간 쇠고기 20g, 베이크드 빈 70g, 쑥갓 30g, 팽이버섯 10g, 느타리버섯 30g,

새송이버섯 30g, 대파 30g, 떡사리 50g, 풋/홍고추 10g, 치즈 1장)
◉ 만들기 | 1. 물에 건다시마를 넣고 3시간 불린다. 2. 1에 대파, 무, 청양고추, 마늘을 썰어 넣고

 끓으면 다시마를 건져 약불에서 20분 끓인다. 3. 2에 소금, 청양고춧가루, 간장을 넣고 끓으면 불을

끄고 체에 거른다. 4. 냄비에 주재료를 돌려 담고 3을 부어 3분 끓인 뒤 마지막에 치즈를 얹는다.
TIP. 주재료 | 베이컨은 7cm, 스팸과 햄은 1cm 크기로 자른다. 소시지, 대파, 풋고추와 홍고추는

 어슷 썬다.
 정리 박미향기자

(2011년 10월27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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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이메일 : mh@hani.co.kr       트위터 : psol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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