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와인, 그 뒷이야기

박미향 2012.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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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노무현 전 대통령 즐겼던 산딸기와인 개발한 최석용씨와의 짧은 통화

 

그날은 휑한 들에 버려진 볏짚처럼 볼품없는 평범한 아침이었다. 그 하루를 싼 방식으로 소비하기 위해 다크서클이 축축 늘어진 판다곰 몰골로 리모컨을 끌어당겼다. “띵~” 티브이가 어둠을 걷는 동시에 뉴스가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부엉이 바위’….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들이 튀어나왔다. 2009년 5월23일 토요일. 내게 솜털 같은 그저 그런 날을 누군가는 ‘끝’냈다. 눈물이 광대뼈를 타고 내렸다. 심장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아팠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길을 나섰다. 집 앞 네일숍을 찾았다.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남에게 못생긴 내 손톱을 울긋불긋 색칠해달라고 부탁하게 될 줄은. 멍하게 손을 내밀었다. 까만색을 칠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덕에 최석용·허정화씨 부부를 만나게 됐다. 그해 6월 이들을 경남 김해시 상동면 매리에서 만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곁을 지켰던 김경수 비서관은 “술을 즐기지 않으셨지만 ‘산애딸기와인’은 드셨다”고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8년 10월29일 이곳을 찾았다.

빨간 산딸기가 산등성이를 덮고 있는 아름다운 농장이었다. 구포역에서 차로 40여분을 내리 달려야 나타났다.

‘깡촌’에서 만난 부부는 아름다웠다. 부부가 재배하는 산딸기는 신들이 내려와 뿌린 열매처럼 달고 건강했다. 아기 엉덩이 살처럼 뽀송뽀송하고 뾰족한 것으로 톡 건드리면 빨간 즙이 ‘어서 옵쇼’ 하는 것처럼 잘잘 흘렀다. 볼을 딸기로 빵빵하게 채워 넣어도 욕심이 날 만큼 맛났다.

도전정신이 투철한 최석용씨는 ‘산애딸기와인’을 개발했다. 포도도 아니고 딸기로 와인을 만든다고? 희한한 일이었다. 최씨는 정성스럽게 만든 산딸기를 “후려치는” 경매장 사람들에게 화가 나 옹기에 산딸기를 처박아두었다. 며칠 뒤 술이 되어 있었다. 2004년 일이다. 그때부터 딸기와인 개발에 나섰다. 재료는 딸기지만 여느 와인과 같은 방법을 사용했다. 맛은? 햇볕에 비춰 보면 자주색이 돈다. 아로마(와인의 첫 향)는 풀냄새, 타닌은 적고 살짝 신맛이 난다. 알코올 도수는 12도. 샤토마니(충북 영동에서 생산하는 국산와인)가 아주 달고 과일향이 강한 반면 ‘산애딸기와인’은 얼추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 와인과 비슷한 맛을 낸다. 스테인리스 발효통도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착한 농부를 만나고 나면 ‘참, 세상은 그래도 살아볼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를 다시 만나 밥 한 끼 먹으려고 했다. 얼마 전 떡볶이 취재차 부산으로 향하던 기차 안에서도 굳게 결심을 했더랬다. 결국 지켜지지 않았지만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잘 있습니다. 꼭 오세요. 제일로 반갑네요.” 그사이 변화도 많았다. 농장은 4대강 사업 때문에 인근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고, 당시 개발중이었던 산딸기식초가 출시되어 인기를 끌고 있다. 올해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스타팜농장’으로 지정했다. ‘착한 농부’ 최석용씨는 시집 <행복한 하늘>도 냈다. “요즘은 더 열심히 해요.” 착한 냄새 폴폴 나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노란 개나리 피는 봄에는 꼭 빨간 산딸기농장을 찾아야겠다. ‘산딸기닷컴’ 055-331-8114, www.sanddalgi.com.

글·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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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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