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선물>불고기전골의 자비

조회수 9943 추천수 0 2012.10.04 11:37:54

 25년전 이맘때, 옆집 할아버지의 꼬임에 넘어간 귀 얇은 친정어머니의 성화에 남편을 처음 만났다. 작은 공장을 운영하는 성실한 청년이라서 고생은 시키지 않을 거라는 할아버지의 말에 속는셈 치고 만나보니 성실한 거는 틀림없어 보여 같이 산 세월이 이렇게 흘렀다..

 그런대로 꾸려가던 공장이 외환위기로 직격탄을 맞아 살던 집이 경매로 넘어가고 빚까지 남게 되자 살림만 하던 나는 인건비도 줄일겸 남편을 도와 일을 시작하였다. 매사에 긍정적인 남편은 인생은 마라톤과 같다며 살다보면 대박이 날 때가 있을 거라고 위로 같지 않은 위로를 때마다 그 놈의 성실을 바리바리 싸서 할아버지께 되돌려 드리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이런 내 마음을 눈치 채신 듯 서둘러 세상을 떠나셨다.

 일에 지쳐 쉬고 싶은 마음에 기다렸던 추석연휴에 마침 보고 싶었던 영화제 수상작이 상영되고 있었다, 나도 이렇게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자긍심을 온몸으로 발산하며 영화를 보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화면에 비친 청계천의 허름한 공장이 남편이 처음 일을 배우던 곳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저렇게 열악한 곳에서 일하며 미래를 꿈꾸었을 젊은 시절의 남편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울컥했다. 살면서 좋을 때 보다 미울 때가 더 많았지만 지금까지 성실해도 너무 성실하게 공장일에 매진하며 만족하고 있는 남편에게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오늘밤에는 남편이 좋아하는 당면 듬뿍 넣은 불고기전골에 술 한잔 마시면서 살얼음판 같았던 지난 세월을 서로 위로해주고 싶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
공지 [이벤트] 사랑은 맛을 타고! imagefile 박미향 2011-11-18 30622
공지 [이벤트] 여러분의 밥 스토리를 기다립니다 - 밥알! 톡톡! - imagefile 박미향 2011-05-20 38092
181 <맛선물>한번도 먹어본적 없는 음식 file kesuoh 2012-10-31 8932
180 <맛선물>콩나물무침 vzzing 2012-10-29 8879
179 [맛선물] 제발 받아줘 namij 2012-10-29 8906
178 요리담당 기자의 삶 담긴 ‘맛있는 식탁’ imagefile 끼니 2012-10-15 22918
177 두유를 직접 만들어 드리고 싶어요. negonego 2012-10-15 8806
176 <맛선물> 우린 역도부 삼형제! dmsgud100 2012-10-12 8535
» <맛선물>불고기전골의 자비 sabet1105 2012-10-04 9943
174 낭화를 아시나요 ? jhk9324 2012-09-29 10404
173 맛선물 wang0827 2012-09-28 8553
172 <맛선물> 영원히 못 잊을 닭백숙 59pigpig 2012-09-26 9738
171 <맛선물> 계란 한 알, 딸기 한 알 prup 2012-09-24 9370
170 <맛 선물> 은희가 은희에게 takeun 2012-09-22 9588
169 [맛선물] 아빠와 함께 먹고 싶은 미역국 octobermj 2012-09-19 9025
168 <맛 선물> 계란찜을 먹는 두 가지 방법 중전 2012-09-16 9690
167 <맛선물>아름다운 이웃에게 육개장 한 그릇씩을~~ com6210 2012-08-31 8979
166 [맛선물]조일병 기다려라! 이번 주말, 엄마가 밥차 몰고 면회간다! ggossi1 2012-08-28 10391
165 <사랑은 맛을 타고> 케냐의 맛 jangmi1514 2012-08-27 8916
164 [맛선물] 엄마의 떡볶이 moon5799 2012-08-24 9690
163 <맛선물>"얘들아, 김밥이다." file viveka1 2012-08-24 8846
162 <맛선물>수제비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dunamom 2012-08-20 88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