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순천(45) |
사라져가는 전통 음식 어간장…현대식으로 개발해 유통하는 해어림
“베지근하다게.”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리 주민 김대윤(65)씨는 어릴 때 먹었던 ‘멜젓(멸치젓갈)을 끓여 만든 장’ 맛을 한마디로 표현한다. ‘맛나다’와 비슷한 뜻의 제주도 말이다. “멜젓을 한참 먹고 나면 살은 없어지고 가시하고 흥건한 물만 남아요.” 김씨의 어머니는 그것을 끓여서 장을 만들었다. 콩 간장과는 또다른 맛이다. 옛날을 회상할 때마다 논두렁처럼 이어지는 그의 눈가 주름이 착착 접힌다. 김씨의 할아버지 세대 이전부터 제주도에서 멜젓은 간장게장보다 실력이 더 출중한 ‘밥도둑’이었다.멸치젓갈로 만들던 전통 제주어간장
고도리·전갱이로
자체 개발해“제가 초등학생 때죠. 동네 아저씨들이 떼배(뗏목) 타고 멜 잡으러 갔다 오면 쪼르륵 달려가 몰래 몇 마리 숨기기도 했죠. 반찬이라고는 멜젓과 김치밖에 없었어요.” 귀한 반찬의 국물 한 방울이라도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1960~70년대 인공조미료가 들어오면서 ‘어머니의 멜젓 장’은 더이상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다행히 10여년 전부터 ‘제주어간장’이라는 이름을 붙여 그 옛날 ‘멜젓 끓여 만든 장’의 전통을 이어가는 이들이 있다. 문순천(45·사진), 오숙영(45) 부부가 주인공이다.이들 부부의 일터인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로 달려가자 도로변에 덩그렇게 ‘해어림’이라고 적힌 간판을 만난다. 이들이 10년 전에 만든 2148.7㎡(650평) 크기의 ‘제주어간장’ 공장이다. ‘해어림’은 ‘젓갈과 고기가 있는 숲’, ‘해가 떠서 깃들다’라는 2가지 의미란다.“원래 수산업에 오래 종사했어요. 양식도 하고 원양어선도 탔죠.” 개량 한복을 곱게 입은 문씨가 말문을 연다. 그는 일에 매달릴수록 어릴 적 먹었던 할머니의 생선 장맛이 떠올랐다. 건강한 먹거리 공부를 하면서 “발효가 세상 식문화에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부러 동남아시아로 가는 원양어선을 타기도 했어요.” 연구가 목적이었다. 베트남에는 ‘느억맘’(Nuoc Mam), 타이에는 ‘남쁠라’(Nam Pla)라는 생선소스가 있다. 우리네 젓갈처럼 생선을 소금에 절이고, 발효가 끝난 뒤 생기는 국물을 활용한 조미료다. 일명 피시소스라고 불리는 것들이다. 그는 해안 마을에 사는 칠순이 넘은 어르신들을 만나 그들의 옛날 요리법을 채록했다.문씨가 사무실 옥상으로 안내한다. 옥상에는 수백개의 옹기가 질서정연하게 도열해 있다. 뚜껑을 열자 바다가 선물한 짠맛에 단감을 섞어 넣은 듯한 향이 난다.
해어림에서 생산하는 어간장. 매장에 따라 포장이 다르다. |
과정 통해 완성
5년 숙성제품은 더 부드러워문씨는 이 생선들을 간수를 뺀 천일염에 2년간 절인다. 매끈하고 탱탱한 ‘놈’(생선)들은 까칠까칠한 ‘녀석’(소금)들을 만나 2년간 동거를 끝내고 나면 취객처럼 흐물거린다. 그 결과물을 문씨가 내민다. 플라스틱통 바닥에는 시커먼 찌꺼기들이 쌓여 있고 맨 위에는 둥둥 기름들이 떠 있다. 가운데만 국물이 있다. “이 국물이 재료입니다.” 1차 숙성이다. 이 국물을 잘 거른 뒤에 무말랭이, 다시마, 말린 밀감을 넣어 끓인다. 옹기에 넣어 6개월 이상 2차 숙성을 한다. 한 병의 어간장이 나오기까지 약 3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과 맞먹는다.어간장은 콩을 발효시켜 만든 일반 간장과 달리 생선을 주재료로 만든 간장인 셈이다. 색은 조림용 간장과 국간장의 중간 정도다. 짠맛이 적고 전혀 비리지 않다. 조림, 찌개, 국 등 다양한 요리에 쓸 수 있어 좋다. 숙성 연도에 따라 맛도 다르다. 5년 숙성된 어간장은 간장 특유의 쏘는 맛이 적어 더 부드럽다. “올해 만들면 3년 뒤 나와요. 자연에 맡기고 기다리는 과정인 거죠. 많이 만들 수 없어요. 옹기 하나하나 세심하게 챙겨야 해서 가족 경영 아니고는 힘들어요.” 뚜껑 관리조차 자칫 소홀하면 다 버리게 된다고 한다. 1년에 50t의 생선으로 약 4만병(900㎖)을 생산한다.
가자미찌개. 어간장은 해산물 요리에 잘 맞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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