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발령 중학교에서 3년차로 근무할 때였다. 첫해는 교사인 나보다 학교와 학교라는 조직이 돌아가는 생리를 더 잘 알고 있던 2학년 아이들을 담임해 죽을동 살동, 부적응 학생보다 더 힘든 하루하루를 보냈고, 두번째 해는 이건 아니다 싶어 어떻게 나도 즐겁고 아이들도 즐겁게 생활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보내고 드디어 셋째해에 거창한 학급운영계획을 가슴에 품고 새 아이들을 만났다. 공부 잘하거나 못하거나 상관없이 모두 어울려 행복한, 오고 싶은 학급을 만들자는 원대한 꿈을 품고... 매월 초 편지로 학부모님을 만나고, 모둠활동과 모둠일기, 매월 한번씩 대학로로 연극보러가기, 우리반만의 체육대회, 앞뜰야영...교실밖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아이들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기쁨을 가질 수 있는 기회로 가득했다. 여름방학날 우리반끼리 학교 운동장에서 했었던 앞뜰야영도 마찬가지였다.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남학생과 여학생 손목을 묶고 하는 짝축구 한판 뛰고 저녁에는 요리 경연대회가 있었다. 1학기 동안의 모둠과는 달리 이번에는 아이들이 마음놓고 놀 수 있도록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모둠을 만들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대체로 모둠이 잘 짜여졌는데, 반에서 일진의 주변에서 맴돌며 튀었던 아이들 4명이 한 모둠이 되었다.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준비물 준비에서부터 밤시간과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지는 일정에 별무리 없이 어울릴 수 있을지..(이런 이유때문에 다른 모둠아이들도 걱정이 되어 한 모둠이 되길 꺼려했었다.) 아이들이 모둠별로 각자 요리를 선택하고 역할을 나누어 열심히 만들기 시작했다. 치즈떡볶이, 김치볶음밥, 삼겹살... 그리고 걱정하던 그 아이들 모둠의 요리는 짜장밥... 걱정반 의심반.. 자꾸 이 아이들의 텐트 앞을 서성이는데 이거 왠걸 양배추, 돼지 고기, 감자, 호박, 양파 가지런히 썰고, 기름충분히 두르고 달달 볶고, 춘장 넣어서 볶고, 밥 알맞게 해내고... 예상외로 잘 되어간다 싶었는데.. 시간 초과...그러나 아이들은 실망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요리가 최고라며 늦은 식사를 엄청 행복해하며 즐겼다. 그런데 방학하던 그날 일이 밀려 늦게까지 일하시던 한 선생님이 냄새를 맡고 운동장으로 나오셨다. 아이들에게 이 선생님께 식사를 대접해드릴 모둠을 찾으려는데 아이들은 거의 식사를 마친 상태라 난감해 하고 있는데 이 짜장밥팀이 갑자기 몰려오더니 자기들이 아니면 누가 모시겠냐고 재료를 다시 볶고, 밥을 데우고, 계란 후라이까지 얹고, 그것도 모자라 등판이 가장 넓은 아이가 넙죽 엎드리더니 그 위에 상을 차리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맛있게 드시라고 정중하게 인사까지... 그 선생님은 눈을 부비며 이 아이들이 매번 학생부에 불려다니며, 수업시간에 잠만 자던 그 아이들이 맞나 하시면서도 정말 즐겁게 식사를 하셨다. 심사위원으로 오신 어머님들도 예절과 정성 부문에서 후한 점수를 주셨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날 감동시킨 건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날 밤 모닥불을 피우고, 밤새 즐거운 이야기 꽃을 피우고, 밤참으로 라면을 끓여먹고, 새벽에야 억지 잠을 재웠는데 빗방울이 후두둑 뿌리기 시작했다. 서둘러 텐트를 걷고 학교건물 그늘로 대피하는데, 여학생들 모둠의 텐트중에 펼침형텐트가 있어 아이들이 접지못하고 애를 먹고 있는데 평소에 믿거니 했던 의젓한 남자아이들은 자기들 텐트만 걷어서 처마아래가서 웅크린 채 불러도 미동도 않고 있는데 이 짜장밥 모둠 아이들이 냉큼 달려와 비를 맞으며 텐트를 말끔하게 걷고 뒷정리를 도와주는데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이 기쁨은 교사만이 알 수 있을것이다. 요즘엔 아이들이 너무 바빠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초임시절의 학급행사도 모두 꿈같은 일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