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황미희
벌써 30년전 일이다. 나는 대학교 입학하면서부터 여덟 살 나이 차이 나는 초등학생 남동생과 자취생활을 했다. 동생이 고등학생이 되고부터는 매일매일 도시락을 싸 주었다. 언제부터인가는 점심, 저녁, 두 개의 도시락을 싸 주었다. 여담이지만 나중에는 저녁은 집으로 먹으러 오게 하려고 아예 학교 후문 쪽으로 자취집을 옮기기도 했었다. 어쨌든 내가 '반찬떡볶이'라고 부르는 이 요리를 어디서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나만의 요리 비법이라고 생각하며 동생 도시락 반찬으로 곧잘 싸 주곤 했다.
반찬떡볶이는 팬에 들기름을 두르고 약간의 쇠고기와 당근, 양파를 넣고 간장, 파, 마늘, 고춧가루, 설탕을 넣어 볶는다. 양념이 어우러지면 떡볶이 떡을 넣고 떡이 말랑해지며 간이 배어들 때까지 볶는다. 그러고는 상추와 깻잎을 썰어넣고 한 두번 뒤적이다 참기름, 깨소금을 넣고 마무리하면 된다. 이것은 밥 반찬으로 좋은데, 식어도 맛있어서 도시락 반찬으로 싸 주면 동생 친구들에게 엄청 인기 있는 반찬이었던 기억이 난다.
이럭저럭,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고 그때도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다. 그리고 여전히 도시락 반찬으로 반찬떢볶이가 빠질 수는 없었고 여자들만 있던 그곳에서 반찬떡볶이는 '완전 인기 짱'이었다. 그때 아르바이트하던 곳은 자취집과는 상당히 떨어져 있어서 지하철을 타고 한참을 간 후 다시 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출근길이야 그때나 지금이나 붐비기는 마찬가지였다. 변두리 역에서 지하철을 타면, 역을 하나 둘 지날 때마다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몇 정거장만 지나면 인파에 꽉 끼여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다. 그날도 밥과 함께 언니들과 동료들이 좋아하는 반찬떡볶이를 큰 통으로 한 통 싸서 종이가방에 얌전하게 넣어가지고 지하철을 탔다. 역을 지날 때마다 승객은 점점 불어나고 내 몸은 꽉꽉 조여오는데, 아뿔싸, 도시락을 넣은 종이 가방이 부실했던지 인파에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기를 반복하는 통에 종이가방 밑이 터지면서 도시락이 바닥으로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몸을 구부리는 것은 엄두도 못 내는 판. 다시 이리 밀리고 저리 치이면서 두 개의 도시락은 이미 사람들 발밑에 깔려 보이지도 않았다. 너무나 창피한 나머지, 나는 다음 정거장에서 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 틈에 섞여 내려버렸다. 밑둥이 찢어진 종이가방만 한 손에 덜렁 쥔 채…….
이제는 어느덧 내 아이들이 자라 도시락을 싸가던 내 동생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그 애들에게 도시락 싸 줄 일은 없다. 요즘은 그 추억의 반찬떡볶이를 가끔 집에서 반찬으로 해 먹곤 한다.
그때 그 도시락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 도시락을 같이 먹으려 했던 기태 언니, 춘화, 대학생이던 진영이, 대학 후배였던 수정이. 반찬떡볶이를 맛있게 먹었던 그들은 지금쯤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