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라고 불리던 시절, 학교에 들어가 처음으로 사귄 친구는 우리집과 가까운 곳에 사는 아이였다. 단발머리에 자그마한 체구를 가진 그 아이는 귀하게 자라 조금은 도도해 보이기도 했다.
형제 자매가 많아 북적대고 그다지 풍요롭지 못한 우리집에 비해, 그 친구의 집은 반듯한 양옥집에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있고, 식구도 별로 없어 집이 늘 조용했다. 그 아이와 친해지게 된 것은 집이 가깝다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이유 중에 하나는 그 친구는 마론인형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그것도 목과 팔과 다리가 돌아가고 팔목과 무릎까지 굽어지는 마론인형. (그 뒤에 우리 부모님을 졸라 인형을 구입하긴 했지만 어느 것도 움직이지 못하는, 속이 텅빈 마론인형을 사주셨다) 친구의 마론인형은 여러 켤레의 구두에 화려한 옷을 여러벌 가지고 있었고 내 인형은 남은 천을 잘라 구멍만 내서 가까스로 팔과 다리를 끼워입히곤 했다. 나는 내 인형보다 사람같이 생긴 친구의 인형을 더 좋아했고 내 것인양 가지고 놀았다.
그 아이의 집에는 늘 이모님이 계셨는데 빨강머리 앤에 나오는 마릴라 아주머니를 많이 닮으셨다. 그 이모님은 앤을 처음 대했던 것처럼 나에게는 늘 무표정하고 무서운 얼굴이었다. 하지만 조카가 데리고 온 친구에게 항상 간식을 내어 주셨는데, 내가 그 아이의 집을 수시로 드나든 이유가 간식으로 주신 바로 토스트와 코코아 때문이었다.
사이다밖에 모르는 내가 달콤한 코코아도 처음 맛보는 맛이었지만, 계란 한 장을 두껍게 부쳐 식빵 두장 사이에 끼워 넣어 만든 토스트는 35년이 지나도 잊혀지질 않는다. 빵이 그냥 빵이 아니라 계란이 들어간 최고의 빵이었다. 항상 주셨던 간식이지만 배고프던 시절, 나에게는 정말 최고의 간식이 아니었나 싶다. 그 맛있는 간식 때문에 마릴라 이모님의 무서운 표정을 견디고 그 아이집을 수시로 드나들며 놀았던 기억이 난다.
1~2년 쯤 뒤, 그 아이는 강남 부자동네로 이사를 갔고 한번 초대를 받아 방문했으며 마지막 편지에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그 해에 꼭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세월은 흘렀고 20년 쯤 지나 우연히 그 아이한테 연락이 왔다. 다른 환경 속에서 10대, 20대를 보낸 우리들은 다시 만났을 때 너무 멋쩍고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성인이 되고 단 한번의 만남이었지만 지금 되돌아보니 그 아이는 나를 정말 보고 싶어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토스트와 코코아가 아니었던들, 나는 그 아이를 기억이나 하고 있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끝>경북 청송군 진보면 (백봉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