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먹는 못생겼지만 맛있는 추억의 맛.

조회수 9298 추천수 0 2013.03.17 15:09:28

내 나이 서른 초반.

지금은 나름 도시에서 브런치 즐기는 바쁜 도시녀 행세를 하고 살지만 어릴적 실상은 버스도 하루에 몇 번 들어오지 않는 오지 중에 오지에 살았다. 어찌된 일인지 시간이 갈수록 우리집은 군에서 읍으로 읍에서 리, 첩첩 산중으로 더 들어갔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의 분교학교 발령에서 정점을 찍었다. .어릴적 시골 기억은 나름 낭만있고 추억있고 즐거웠다. 봄이면 호미들고 냉이며 달래캐러 다니고 여름이면 강가에서 고학년인 오빠는 냄비에 된장풀고 망으로 둘러싼뒤 고기도 잡아서 매운탕도 끓여주고, 여름엔 수박서리, 참외서리, 겨울엔 고구마며 감자를 불에 구워먹고, 사시사철 뒤돌아서면 배고픈 아이들은 전 학년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굶주린 배를 채울 궁리를 했다.

 

 슬슬 찬바람이 불어 겨울이 빨리오는 시골의 초겨울.. 강이고 산이고 밭이고 내 집처럼 뛰어 놀던 우리는 출출해진 배를 붙잡고 친구네 집으로 향했다. 친구 미숙이 어머니가 아이고 미숙이 친구들 왔네, 배고프제~밥 묵고 가라 ”“하고 친구들이랑 방에서 까르르 뒹굴거리며 놀고 있었다. 곧이어 어머니가 한상 차려 왔는데 국그릇 한 가득 개 밥이 있지 않은가? 국은 국인데 국안에 김치, , 콩나물에 얼핏보니 국수가락도 있는 것 같고 머리가 처참히 뭉개져있던 커다란 멸치까지 그대로 있는데 이게 밥인지 국인지, 국수인지, 이걸 먹으라는 건지 , 개밥 주다 날 주는건지...머리 속엔 온갖 상상을 하며 이 집을 탈출해야 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어린 마음에 이건 아니다 싶어 부리나케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집으로 줄행랑을 쳤다.

 

엄마한테 고자질 하듯 엄마 미숙이 엄마가 내 한테 개밥줬어!!”우렁차게 외치며 부당함을 토로하는데 별일 아니라는 듯 엄마는 씻고 밥먹자하시곤 상을 차려주셨다.

 곧이어 엄마는 옆집에서 엄청나게 쉽고 편하며 게다가 맛까지 좋은 믿을수 없는 레시피를 얻어와서 한 껏 톤이 올라가셔서 자랑스레 내가 이걸 만들었노라. 일장 연설후 맛있게 안 먹으면 집에서 나갈줄 알아라는 무언의 압박감도 함께 국을 내 놓으셨다. 가만히 보니 미숙이네 개밥이랑 별다를게 없었다. 게다가 설이 갓지나 떡국이 넘쳐나던 우리집에 그 개밥 안엔 떡까지 버젓이 자리잡고 들어가 있었다.

 

어릴적 비빔밥도 먹기전에는 예뻤는데 비비고 나면 이상한 색깔과 뭔가 알수 없는 음식으로 변한 것 같아 먹기 꺼려했던 나인데. 인건 뭐 집에 남아있는 오만 재료 다 때려놓고 국 끓였으면서 세상에 이런 맛이 없다며 우기는 엄마에게 무언의 배신감과 절망감이 몰려왔다. 배는 고프고 엄마 눈치는 보이고 한 입 뜨는데....두둥...‘~이거 뭐지?’ 두 입 뜨는데 두둥...어린나이에 얼큰함에 캬~소리가 절로 나왔다. 비록 비릿한 멸치가 그래도 있어서 정중히 이것까지 먹는건 자존심이 허락지 않아 멸치는 들어서 빼고 남은 한 그릇을 뚝딱. 입으로 들어가는지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잘 먹었다.

 

....이런 개밥이 이런 맛이라니....예쁜게 맛있다. 란 나의 생각을 완전히 부숴버리는 맛이었다. 그 후 추운 겨울만 되면 것도 겨울내내 그 개밥은 당당히 우리집 상의 주인이 되어 남녀노소 누구하나 싫어하는 사람 없는 단골 메뉴가 되었다. 어릴 땐 그게 뭐냐 물으면 갱식이라 해서 갱식인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어 찾아보니 갱시기 였다. 옛날에 먹을게 없을 때 집에 있는 재료 다 넣고 만들었다는데 경북에서 주로 먹던 음식이란다.

 

나이가 들어서 옛기억과 그 맛이 그리워 찾아보니 옛날 먹을게 귀했던 때 집에 있던 찬밥, 기르던 콩나물, 고구마며 감자, 익은 김치 등을 넣고 푹 끓여 뭐하나 버릴게 없이 먹던 구황음식이란다. 내 나이 꺽은 60안된 나이지만 음식하다 버린 밥이며 김치같은거 보면 아깝기도 하고 저거 멸치 육수물에다 다 넣고 끓이면 갱시기 되는데하고 혼잣말 많은 노인네처럼 궁시렁 댄다. 한겨울 추운날 찬거리 없을 때 지금도 가끔 그때 맛이 그리워 해 먹곤한다.

그러면 옆에 신랑은 한껏 격양된 얼굴로 이거 뭐야?’ 라는 눈빛으로 뚱하니 내 잔소리가 무서워 먹기는 하지만 요즘같이 먹을게 널리고 널린 세상에 이런걸 꼭 먹어야 하나 하는 뜨악한 표정으로 궁시렁 댄다. 어릴적 추억을 먹는 나와 결혼해서 첨 맞이한 갱시기을 대한 신랑의 추억은 한참 다르겠지만 그래도 먹다보면 나의 갱시기와 남편의 갱시기도 점점 닮아지리라 믿는다. 신랑도 나의 추억을 함께 먹어줬음 좋겠다. 오늘따라 추운날 호호~불어가며 땀 줄줄 흘리며 먹던 갱시기가 먹고 싶다. 아니다. 걱정할 것 없이 바로 냉장고 열고 재료 탈탈 털면 바로 만들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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