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건져온 신선함, 양념 없어도 깊은 맛

끼니 201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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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말국·조개죽 등 믿고 먹는 제주의 ‘진짜 해녀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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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어촌계 우뭇개식당’의 해산물.

섬의 동쪽은 척박한 제주에서 그나마 농사를 지을 수 있었던 서쪽에 비해 더 거칠고 메말랐다. 이런 이유로 동쪽인 하도리, 세화리, 오조리, 온평리, 시흥리, 성산리 등에는 유난히 해녀가 많았다. 살림은 주로 물질로 이어갔다. 거친 자연 속에서 살아온 해녀들은 독립심과 생활력이 강했다. 그들의 성정이 고스란히 스며든 ‘진짜 해녀 식당’도 섬 동쪽에 많다. 제주향토음식보존연구원 양용진 원장의 도움을 받아 해녀 식당을 살펴봤다.


세화 해녀 잠수촌


해녀박물관의 강권용 학예사가 “제주 최고의 보말국을 먹을 수 있다”고 칭송한 식당이다. 세화어촌계가 운영하는 이곳에 도착하자 어촌계장 고영순(77)씨가 맞았다. 보말국을 주문하니 강한 어조로 “황돔지리 먹어!”라고 했다. 보말국을 놓칠 수는 없었다. 두 가지 다 주문했다.


미역과 보말이 한가득 들어간 보말국은 탄성을 지르게 했다. 보말이 모양 그대로 살아있고, 푸짐했다. 조리도 간단한 보말국이 서울의 고급 한식식당도 흉내 내기 어려운 깊은 맛을 내 놀라울 뿐이었다. 비결은 다시마라고 한다. 보말국 육수는 일반 육수를 낼 때보다 다시마가 몇 배 많이 들어간다. 직접 잡은 보말을 한 번 씻고 미역과 성게를 넣어 끓이면 완성이다. 조미료는 참기름과 소금이 다다.


돔지리는 꽃밭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향긋했다. 푸짐하게 들어가는 신선한 생강과 미나리가 향의 비결이다. 아기 피부 같은 생선살이 혀에 닿자 부른 배가 다시 허기진 것처럼 아우성이었다. 깨끗이 그릇을 비우자 뿌듯함이 밀려왔다. 굵은 소금 말고는 들어가는 양념이 없다고 한다.


7살부터 물질을 한 해녀인 어촌계장 고씨는 78명이던 이 지역 해녀가 38명으로 줄어든 게 그저 안타깝다. “280명이던 때도 있었어. 그물도 억새를 뽑아 밤새 호롱불 켜서 꼬아 만들던 시절이었지.” 주름진 얼굴 위로 지난 세월의 희로애락이 스쳐갔다.


여름휴가철 이 식당은 물회로 문전성시다. “회국수도 인기야!” 고씨의 자랑이었다. 회국수 양념은 그가 직접 개발한 것으로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맛이라고 지역민들은 말한다. “조미료 전혀 안 넣어. 재료에 다 있는데 뭣하러 넣어!”(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1500-60/(064)782-9285/8000~3만원)


(왼쪽) ‘세화 해녀 잠수촌’의 보말국, (오른쪽) ‘세화 해녀 잠수촌’의 황돔지리.
(왼쪽) ‘세화 해녀 잠수촌’의 보말국, (오른쪽) ‘세화 해녀 잠수촌’의 황돔지리.


시흥리 해녀의 집


서귀포시 시흥리 어촌계 소속 해녀 40여명이 운영하는 식당이다. 5명으로 구성된 8조의 해녀들이 매일 나와 음식솜씨를 자랑한다. 안이 훤히 보이는 주방은 웬만한 고급식당보다 깨끗했다. 시흥리는 신선한 조개가 유명한 곳이다. 질 좋은 조개와 쌀, 참기름이 조개죽의 재료다. 현복자 어촌계장은 “짭조름한 맛은 조개에서 나온다. 다른 양념을 넣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한 숟가락 뜨는 순간 쫄깃한 바다가 심장에 박혔다. 그릇의 바닥까지 박박 긁어 먹어도 아쉬움이 남을 정도로 맛났다. 반찬도 정갈했다. 속이 꽉 찬 깅이(게의 제주 방언) 튀김이 여행객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직접 잡은 소라, 전복, 문어회와 숙회, 전복죽, 오분자기죽, 조개죽이 메뉴다. 금채기인 6~8월에만 가두리양식장에서 키운 전복을 사용한다.(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 12-64/(064)782-9230/8000~15만원)

‘시흥리 해녀의 집’의 조개죽.
‘시흥리 해녀의 집’의 조개죽.

‘시흥리 해녀의 집’의 반찬인 깅이(게)튀김.
‘시흥리 해녀의 집’의 반찬인 깅이(게)튀김.

성산어촌계 우뭇개 식당


식당은 성산일출봉 아래 바닷가에 있다. 성산일출봉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 들어가, 왼쪽으로 이어진 내리막길을 따라가면 낮은 지붕을 인 해녀의 집이 나타난다. “이판상환, 이판상환~.” 뜻을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렸다. 해녀 강태순(77)씨가 중국인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한 접시에 3만원. 관광 오는 중국인이 늘자 강씨는 늦은 나이도 아랑곳 않고 중국어를 배웠다.


본래 이곳은 해녀 탈의장이었다. 1987년, 식당으로 변신했다. 해녀들이 막 건져 올린 소라, 전복 등 신선한 해산물을 관광객들이 “판매하라”고 떼를 쓰면서 시작됐다. 초기엔 읍사무소 직원들이 장사를 막았다. 관광지 안에서 잡아온 ‘생물’을 팔아선 안 된다는 이유였다. 이듬해 봄, 해녀 120여명이 시위에 나섰다. 고송환 어촌계장은 “우리가 성산일출봉 입구와 도로를 막고 있으니 관광객은 아예 들어오지 못했다. 군수까지 오고 난리가 났었다”고 그날을 기억했다. 그렇게 해산물 판매 허가를 겨우 얻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허기진 관광객들이 요구하는 전복죽이었다. 식당 허가를 받아야 팔 수 있는데, 허가가 안 났다. 고 계장은 “몇 년 뒤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여기 와서 어려운 게 없냐고 하길래 전복죽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바로 허가 지시가 났다”고 말했다. 지금은 72명의 해녀들이 똘똘 뭉쳐 하루 두 번 해녀의 물질과 춤을 재현하는 ‘물질 공연’도 하고 신선한 전복, 문어 등 해산물과 전복죽을 판다. 눈앞에 출렁이는 푸른 바다를 마주한 채 신선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게 이 식당의 매력이다.(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 104-1/(064)783-1135/1만~싯가)


모드랑


제주에서 배로 1시간20분 가야 닿을 수 있는 섬 추자도, 거기서 다시 배로 15분을 더 들어가면 부속섬 추포도가 있다. 해녀 정소영(31)씨가 솜씨를 부리는 제주시 애월리 식당 모드랑의 주재료는 추포도에서 나는 것들이다. 한 달에 두세 번 애월리와 추포도를 오가며 그가 직접 채집한 소라, 성게, 문어나 그의 아버지가 낚아 올린 생선 등으로 엉겅퀴국수, 소라튀김, 소라볶음, 회덮밥, 참돔회, 방어회 등을 만들어 낸다.


소라튀김은 마치 쇠고기 같다. 소라볶음에는 시장에서 짠 참기름과 소금으로만 간을 한다. 엉겅퀴국수는 이 식당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다. 정씨는 “전국에 우리만 있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투박한 흙냄새에 감칠맛이 입혀졌다. 정씨는 “우리 섬의 질 좋은 해산물을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싶다”고 했다.(제주시 애월읍 애월리 2063-1/(064)799-6784/1만3000~3만원)


‘모드랑’의 소라튀김.
‘모드랑’의 소라튀김.


막둥 해녀 복순이네


대문에 걸린 글자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물질허래 가수다’. ‘물질하러 갔다’는 뜻이다. 한쪽 벽에는 알록달록한 해녀 그림이 그려져 있다. 예쁜 카페처럼 아기자기하다. 마당엔 조개껍질, 전복껍질이 깔려 있다. 양용진 원장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추천하는 곳이다. 그는 “한상 차려놓고 물질하러 간다면서 주인 해녀가 가버리는 재미있는 식당인데다 신선한 재료가 그릇 안에 푸짐한 맛깔스러운 곳”이라고 했다.


인근 다른 해녀의 집들이 죽을 주로 파는 것과 달리 이곳은 해산물물회, 성게칼국수가 주 메뉴다. 물회에는 ‘바다의 산삼’이라는 홍해삼도 들어간다. 소라, 해삼, 문어, 성게가 한 접시에 나오는 ‘해산물 모듬’도 인기다. 모든 음식에 성게가 들어가는 점이 독특하다. 성산읍 고성리의 막둥이 해녀인 강복순(52)씨는 물질을 못 나가면 아예 영업을 안 한다. 예약은 필수다.(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2133/(064)783-2300/7000원~시가)


‘막둥이 해녀 복순이네’의 외관.
‘막둥이 해녀 복순이네’의 외관.

제주/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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