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꾼’ 있는 데 ‘해장국’ 있다

끼니 2016.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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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마다 특색 다른 1천년 해장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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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줄 왼쪽부터) 하동 ’원조강변할매재첩국’의 재첩국, 경주 ’팔우정해장국’의 묵해장국, 청주의 ’남주동해장국’의 해장국, 목포 ’만선식당’의 우럭간국. (아랫줄 왼쪽부터) 제주 ’세화해녀잠수촌’의 보말국, 괴산 ’서울식당’의 올갱이해장국, 부산 ’진주복국집’의 참복지리, 안동의 ’옥야식당’의 ’선지국밥’.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영화감독 육상효는 애주가다. 그는 고통스러운 숙취를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가 푼다고 한다. 애주가들마다 이런 자신만의 해장 비법이 있다. 육 감독처럼 이마에 방울방울 땀이 맺히도록 사우나를 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해장국을 몸에 모셔 숙취로부터 해방을 도모한다.

우리는 언제부터 해장국을 먹었을까? 기록으로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술을 빚어 병에 담아 파는 병술집이 있었다. 병술집이 끼니와 안주 겸용인 해장국을 파는 주막으로 변모하면서 그 역사가 시작됐다고 한다.

지방마다 해장국에 들어가는 식재료와 맛은 달랐지만, 유독 콩나물과 다슬기(올갱이), 재첩, 북어를 애용했다. 일찍부터 술꾼의 ‘자질’이 뛰어났던 우리 민족은 알코올 분해에 효과가 큰 아스파라긴산이 콩나물에 풍부하다는 사실을 동물적으로 알았나 보다. 재첩도 즙을 내 먹으면 황달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하니 놀랍다. 다슬기나 재첩은 속을 확 풀어주는 시원한 맛을 내기 쉽다. 숙취 해소에 특효인 아미노산은 북어에 많다.

지역마다 해장국의 얼굴은 다르다. 서울은 소뼈를 우린 국물에 선지, 우거지 등을 넣거나 큼지막한 뼈다귀를 넣어 끓인 해장국이 대세였다. 청진동 일대에는 유독 해장국집들이 몰려 있었다. 1937년 종로구청 인근에는 땔감용 나무를 파는 시장이 열리곤 했는데, 나무를 팔러 온 나무꾼들을 대상으로 이간난이라는 이가 ‘평화관’이라는 국밥집을 차리면서 골목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고유명사처럼 된 경기도 양평의 양평해장국도 서울의 해장국과 재료가 비슷하다.

일제 강점기에는 배달 해장국도 있었다. 서울의 돈푼깨나 있던 고관대작들이 주이용 고객이었다. 1925년에 나온 <해동죽지>에는 ‘광주성(경기도 광주) 안에서는 효종갱을 끓인다. 배추속대, 콩나물, 표고버섯, 소갈비, 해삼, 전복과 토장을 섞어 푹 곤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효종갱이 바로 배달 해장국이었다. 밤에 항아리에 담아 솜으로 싸서 서울로 보내면 새벽종이 울릴 때쯤 도착해, 전날 숙취로 해롱거리는 고관대작들이 먹었다.

비옥한 농토와 어장이 풍부한 전라도는 해장국의 종류도 많다. 낙지연포탕, 짱뚱어탕, 장어탕, 재첩국, 홍어애탕국 등을 해장국으로 먹는다. 고흥 사람들이 즐긴 피굴은 바다의 비아그라인 굴을 껍질째 삶아 만드는 음식이다. 굴이 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삶은 물의 윗물이 해장에 특효다. 이 물에 김 가루, 굴 알맹이, 참기름, 깨소금 등을 넣으면 완성인데 간이 적당히 밴 고소한 국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술꾼들이 많다. 전주의 콩나물해장국은 전국을 평정했다.

경상남도는 해장국 종류가 더 많다. 복국, 재첩국, 백합탕, 장어탕, 도다리쑥국, 돼지고기시래기국, 시락국(시래기국) 등 육지와 바다를 넘나드는 맛이 많아 해장국의 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쇠고기와 굴을 같이 넣어 조리하는 남해의 굴해장국은 해장의 지존이다. 그런가 하면 북어 껍질로 끓인 어글탕도 있다.

경상북도에는 묵나물콩가루국, 팥잎국, 콩가루우거지국 등 유독 콩가루가 들어간 해장국이 많다. 집안이 콩가루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아예 콩가루를 먹어치우려 한 걸까?

서해안에서 많이 잡히는 낙지를 재료로 쓴 밀국낙지탕, 박속낙지탕 등은 충청남도의 해장국이다. 어촌 사람들이 집에서 조리해 먹던 낙지를 1970년대 일부 사람들이 술안주나 숙취 해소용 탕이나 국으로 개발하면서 퍼졌다고 한다.

바다를 낀 육지는 신선한 생선이나 해조류를 재료로 해장국을 끓여왔다. 강원도의 속초, 삼척, 고성, 강릉이나 경상도의 포항 등지에서는 사철 잡히는 곰치가 사랑받았다. 생김새가 흉해 팔 수 없었던 곰치로 맛을 낸 곰치해장국은 예부터 가난한 어부와 서민들의 알코올 해독제였다. 김, 달걀, 국간장이 재료의 다인 김국은 조리하기도 간편해 예전 강원도 사람들이 즐겨 먹었다.

척박하고 농사도 어려웠던 제주는 채집이 쉬웠던 보말이 해장국 재료다. 껍질째 삶아 바늘로 파내 해장국을 끓인다. 옥돔미역국은 평소 먹기에는 귀한 해장국으로, 예전엔 차례나 제사 때나 맛볼 수 있었다.

요즘 20~30대들은 해장파스타를 즐긴다. 국물이 넉넉한 ‘한국식’이다.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는 이도 있다. 하지만 역시 숙취해소에는 국물이 흥건하고 건더기가 빡빡할 정도로 넉넉한 해장국이 최고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참고 <한국음식 오디세이>,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음식 백가지>, <한국의 전통 향토음식>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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