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식빵, 침이 고이네

끼니 2017.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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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입맛 사로잡은 서울의 식빵집들

교토마블의 ‘삼색식빵’. 박미향 기자
교토마블의 ‘삼색식빵’. 박미향 기자

식빵은 본래 밥 문화인 한국에서 간식이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위상이 달라졌다. 식생활이 서구화되고 밥보다 빵을 찾는 이들이 늘면서 식빵이 ‘식사 빵’으로 자리잡고 있다. 종류도 다양해졌고, 식빵만 팔거나 식빵을 간판스타로 내세운 빵집들도 생겨났다. 1~2시간 줄 서는 것은 기본인 빵집도 등장했다. 1996년에 문 열어 20여년간 식빵 전문 빵집이라는 명성을 누린 ‘김진환 제과점’의 아성을 넘보는 곳들이다.

이명원 <파티시에> 편집장은 “제과제빵업계도 한 가지 메뉴를 주력으로 내세우는 전문화 경향이 뚜렷하다”고 한다. 화제가 되고 있는 서울의 식빵 전문 빵집을 ESC가 정리했다.

소울 브레드의 ’통밀100% 식빵’. 박미향 기자
소울 브레드의 ’통밀100% 식빵’. 박미향 기자

소울 브레드

오전 11시에 문 여는 ‘소울 브레드’는 오후 1~2시면 빵이 떨어진다. 이곳엔 ’통밀 100% 식빵’, 퀴노아와 아마씨 등을 넣은 ‘고대곡물식빵’, 크랜베리와 블루베리를 넣은 ‘베리베리식빵’, 오징어먹물과 롤치즈를 넣은 ‘먹물롤치즈식빵’ 등 독특한 식빵이 넘실거린다.

이 빵집은 ‘무반죽법’으로 유명하다. 보리, 밀 등 곡류에 들어 있는 단백질이 물을 만나 만드는 글루텐은 반죽을 강하게 치댈수록 점성과 탄성이 높아진다. 이 과정에서 더 쫄깃해지는 식감 등이 싫은 이들이 이곳을 즐겨 찾는다. 이 빵집은 밀가루 등을 섞은 재료를 몇 번 접는 정도로만 빵을 만든다. 이미 프랑스 등에서는 활용을 많이 하는 무반죽법이다.

이 집 식빵의 재료는 주인 권순석(48)씨가 직접 만든 사워도(시큼한 맛의 발효 반죽), 앉은뱅이밀, 오스트레일리아산 유기농 밀가루, 생협 등에서 파는 우리밀 등이다. 우유, 버터는 안 쓴다. 25℃ 저온숙성, 8시간 이상 1차 발효 등을 거치기 때문에 식빵 한 덩어리가 나오려면 이틀이나 걸린다. ‘느린 방식’으로 빵을 만드는 주인 권씨는 “제빵사가 고되면 고객이 좋다”는 철학을 가졌다. 17년간 출판업계에 몸담았던 그는 업계가 어려워지자 평소 취미로 했던 ‘홈 베이킹’을 직업 삼았다. 서울 도심도 아닌 우면산 자락 끝의 이 빵집을 몇 시간이나 걸려 찾아오는 손님이 많다. 그의 신념이 만든 성공이다. “작은 빵집이 성공하려면, 유명한 상권이 아닌 곳에서도 버티려면, 찾아올 만한 남다른 맛과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이제는 장인정신이 고귀한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말한다. 서초구 우면동 59/ 070-4235-4748.

밀도의 식빵들. 박미향 기자
밀도의 식빵들. 박미향 기자

밀도

“맛있는 식빵은 시간이 지나도 풍미가 유지되고 깊은 감칠맛이 느껴진다.” 이렇게 말하는 전익범(49) ‘어반라이프’ 베이커리 사업본부 알앤디 센터장은 25년 경력의 베테랑 제빵사다. 도쿄제과학교 출신인 그는 빵집 ‘시오코나’ 등을 운영하다가 2015년 성수동에 식빵 전문 빵집 ‘밀도’를 열었다. 수십 가지 빵을 만들던 그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때”라 판단하고 “식사 빵이자 빵의 기본인 식빵”만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의 섬세한 손길이 닿은 식빵은 단박에 입소문이 나, 30~40분 이상 줄을 서는 건 기본이었다. 이를 눈여겨본 라이프스타일 콘텐츠 기획 회사 ‘어반라이프’가 지난해 6월 그를 영입하고, 그의 빵집 밀도를 인수했다. 현재 성수, 위례신도시 등 직영점 5개를 운영 중이다.

여기선 담백한 ‘담백식빵’과 생크림이 듬뿍 들어간 ‘리치식빵’이 인기다. 최근에는 한손에 폭 들어가는 크기의 ‘초코미니식빵’, ‘마롱(밤)미니식빵’ 등도 찾는 이가 많다. 전씨는 오스트레일리아산 유기농 밀가루, 캐나다와 일본 홋카이도산 밀가루, 전라도 지역에서 생산되는 우리밀을 섞어 식빵을 만든다. 그는 “흔히 밀가루 하면 강력분, 중력분, 박력분으로 (단순하게) 분류하는데, 외국만 해도 밀가루 종류가 수십 가지이고 각기 맛이 다르다”라고 설명했다. 호밀과 꿀을 이용해 만든 천연발효종도 재료로 들어간다. 성수동1가 656-442/ (02)497-5050.

미소식빵의 ’시나몬식빵’. 박미향 기자
미소식빵의 ’시나몬식빵’. 박미향 기자

미소식빵

어린아이가 그린 듯한 식빵 모양, 촌스러워 보이는 간판 글씨. 연남동 주택가에 있는 ‘미소식빵’은 촌스러울 정도로 소박해 오히려 정감이 가는 빵집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13가지의 식빵이 쭉 도열해 있다. “치장을 싫어하시는 어머니 스타일을 그대로 담았다.” 인기가 많다는 ‘시나몬식빵’을 건네며 서유리(36)씨가 말했다. 미소식빵은 제빵 기술자인 어머니 김윤숙(61)씨와 그가 운영하는 식빵 전문 빵집이다.

전북 정읍이 고향인 김씨는 찐빵을 만들던 모친의 솜씨를 물려받아 독학으로 빵쟁이 길에 들어섰다. 그는 매일 새벽 5시에 나와 반죽을 한다. 화장품업계의 홍보마케팅을 했던 서씨는 그런 어머니를 잠시 도우려고 회사를 그만뒀다가 아예 빵집 운영을 맡았다. 서씨는 “밀가루와 찹쌀가루를 섞고, 식용유황과 식이섬유가 들어가는 것이 우리 집의 자랑”이라고 한다. 빵집 상호 ‘미소’는 동생 이름이다. 간판도 포장지 그림도 모두 미소씨가 그렸다. 가수지망생인 미소씨는 문화방송 <듀엣가요제>에 출연해 동네에서는 유명인사다. 마포구 연남동 504-24/ (02)333-5199.

식빵몬스터의 ‘초코식빵’. 박미향 기자
식빵몬스터의 ‘초코식빵’. 박미향 기자

식빵몬스터

식빵몬스터는 식빵 돌풍을 처음 일으킨 주인공이다. 독특한 이름으로 일찌감치 20대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방송을 타는 등 유명해졌다. 현재 서교동 본점과 직영점인 연남점 두 곳이 있다. 주인 서주원(26)씨는 조리학교에서 양식을 전공한 이로 취직 대신 창업을 선택했다. 창업 준비를 하던 중 초콜릿, 베이컨, 치즈 등 속 알맹이가 다양한 식빵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한다. 네덜란드산 초콜릿이 들어간 초코식빵은 빵을 뜯자마자 물컹한 검은 초콜릿이 침을 고이게 한다. 차 한잔과 식빵을 즐길 수 있는 ‘식빵몬스터’는 식빵 모양의 쿠션 등 장식에서도 주인의 젊은 감성이 돋보인다. 마포구 서교동 328-15/ (02)3144-3303.

교토마블의 딸기·치즈·삼색식빵. 박미향 기자
교토마블의 딸기·치즈·삼색식빵. 박미향 기자

교토마블

지난달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도 입점한 교토마블은 ‘64겹 데시니식빵’이 유명한 식빵집이다. 데니시식빵은 덴마크식으로 만든 식빵으로 겉은 매우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것이 특징이다. 평범한 식빵보다 밀도가 높다. 마치 종이가 쭉쭉 찢어지는 듯한 식빵의 결이 20~30대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용산구 용산동5가 24-1/ (02)3785-2002.

이 밖에 은평구 대조동의 ‘티나의 식빵’, 마포구 망원동의 ‘라팡’, 동작구 노량진동의 ‘브레드숨’ 등이 있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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