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신커피로드를 가다

끼니 2018.03.12
조회수 989 추천수 0

00500048_20180118.JPG

강릉은 자타공인 커피의 도시다. 1980년대 후반 서울 혜화동과 안암동에서 커피숍 ‘보헤미안’을 운영했던 한국 커피 1세대 장인 박이추(68)씨가 2000년대 초반 강릉에 터를 잡으면서부터다. 2002년 문 연, 그리스 산토리니풍의 커피숍 ‘테라로사’의 인기도 한몫했다. 이들의 명성이 밑거름돼 강릉 안목해변엔 커피 거리가 조성돼 있다. 한때 커피 자판기 여러 대가 명물로 커피 마니아들을 맞이했던 이곳에 현재는 터줏대감 격인 커피전문점 ‘산토리니’ 포함 프랜차이즈 커피체인점까지 30여개가 들어서 있다. 세련된 실내 장식보단 진한 커피 향과 맛을 선호하는 커피 애호가들은 요즘 안목해변이

아니라 연곡해변과 사천진해변을 찾는다. 강릉의 신커피로드가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새 커피길의 출발점은 ‘보헤미안’이다. 현재 보헤미안은 사천진해변 초입의 ‘보헤미안 로스터스 박이추 커피공장’과 보헤미안 경포점, 서울의 상암점 등이 있다. 하지만 연곡리 후미진 언덕 아래 있는 ‘보헤미안’에서 박씨가 직접 핸드드립으로 내려주는 ‘콜롬비아 게이샤’, 그가 블렌딩한 커피 등을 맛봐야 진짜다.


두꺼운 안경을 쓰고 부스스한 차림새로 구부정하게 주전자를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커피를 내리는 박씨를 보는 것만으로, 이곳을 찾은 보람이 있다. 그는 “요즘 행복한 이가 적은 것 같다. 커피를 마시면서 잠시나마 행복을 찾으려 하는 듯하다”고 말한다. 그가 정성스럽게 커피를 내리는 이유다.

쥬시크러쉬.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쥬시크러쉬.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보헤미안 언덕을 빠져나와 영진항 쪽으로 3~4분 걸으면 호기심을 바짝 당기는 분홍빛 복합문화공간 ‘쥬시크러쉬’가 나온다. 국제 서핑강사 자격증이 있는 대표 우창우(47)씨가 연 이 공간엔 요가장, 서핑카페 등이 붙어 있다. 카페엔 독특한 커피가 있다. 대도시에서도 쉽게 맛보기 힘든 니트로커피(질소커피)를 판다. 차게 내린 콜드브루(Cold Brew) 커피에 식용 질소를 넣어, 두꺼운 거품 층과 버터처럼 부드러운 맛을 낸 커피다. 힙하기론 서퍼들만 한 이들도 없다. 그들의 감성을 녹여 만든 카페는 고즈넉하고 소박한 항구와 대비돼 더 돋보인다.


한창 눈요기를 하고 연곡해변으로 나오면 ‘카페 드 자바’, ‘카르페디엠’, ‘커피브라질’ 등이 있다. 이들 커피숍의 특징은 스페셜티 커피(고급 원두커피)와 창이 넓어 출렁이는 파도가 손에 닿을 듯한 풍경이다. 2013년 문 연 카페 드 자바는 최수연(50) 은영(47) 자매가 운영하는데, 이들은 ‘강릉 로스팅 커피 클럽’, 커피 장인 이정기씨의 수업 등에서 실력을 길렀다.


‘커피브라질’은 간판에 한국어, 일어, 이탈리아어, 한자 등 여러 나라말이 적혀 있다. 주인 엄우성(56)씨는 “에스프레소는 이탈리아에서 온 것이고 나의 핸드드립 방식은 일본식”이라서 간판을 재밌게 꾸몄다고 한다. 열풍이 아닌 직화로 원두를 볶는다. 블렌딩 커피는 4가지, 단일 품종 원두커피는 14가지 있다. 케이티(KT)를 다니다가 명퇴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과감하게 커피 분야에 뛰어든 엄씨는 “3년간 손님이 거의 없어 고전하다가 점차 커피 맛이 소문이 나면서 단골도 생기고, 요즘 오는 이가 늘었다”고 한다. 넓은 창 앞에서 바다를 친구 삼아 독서삼매경에 빠진 이들도 있다. 관광객이 몰려 다소 어수선한 안목해변 카페에선 보기 힘든 고요한 힐링이다.

보헤미안 커피.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보헤미안 커피.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파도가 부르는 위로의 노랫가락에 혼을 뺏긴 채, 차로 2~3분 달리면 사천진해변이 나온다. 들머리에 있는 ‘보헤미안 로스터스 박이추 커피공장’에 도착하면 연곡리 보헤미안과는 또 다른 매력에 가슴이 설렌다. 커피공장 견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치 영화 <찰리와 초콜릿공장>에 들어선 듯 계단마다 신비롭고 거창하다.

여기서 남쪽으로 도로를 건너 2분 걸으면 10개가 넘는, 다양한 개성을 자랑하는 커피 전문점을 만난다.

이 해변에서 으뜸 커피전문점은 ‘쉘리스커피’다. 중세시대 고성에 딸린 아담한 건축물 같다. 이 집은 바로 옆에 로스팅 공간이 따로 있어 신선한 커피를 맛볼 수 있다. 1층엔 나무장작으로 불을 때고 찬장, 벽 등에 온갖 추억 가득한 오래된 물건들이 가득하다. 눈바람 피해 이곳을 찾으면 포근한 어머니의 품 안에 든 듯하다.

‘카모메’, ‘카페 뤼미에르’ 등도 눈에 띈다. 카페 뤼미에르는 지난해 7월 문을 열었는데, 24살 청년 김혜지씨가 창업한 공간이다. 행정학을 전공한 그는 공무원이 되길 바랐던 부모의 뜻을 꺾고 자신이 좋아하는 디저트, 각종 피자, 커피 등의 세계로 발을 디뎠다. 구운 딸기 피자. 시금치 피자, 바다색 나는 레몬음료 등을 판다.
본래 강릉은 차 문화가 발달한 지역이다. 강릉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차를 천천히 우리고 흐르는 시간을 음미할 줄 알았다. 그들이 차분하게 원두를 내리는 커피 세계에 빠진 건 이미 예정된 신의 계획처럼 보인다.

강릉/박미향 기자 mh@hani.co.kr
재료 |
커피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시원한 막국수도 먹고 돌돌 말아 파스타도 먹고!

  • 끼니
  • | 2018.06.22

고성막국수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한강은 어머니다. 차갑고 싸늘한 도시 서울을 품에 안고 온기를 불어넣는다. 사랑을 이제 시작한 이들에겐 최고의 데이트 장소를, 마음이 아픈 이들에겐 쉼터를 제공한다. 건강을 챙기려는 이들에겐 이만한 체육관도 없다. 한참 뛰고 달리다 보면 배가 고파지기 마련. 한강에서 5~10분 거리엔 맛집들이 넘쳐난다. 강서구의 지존, 고성막국수...

소머리국밥의 마술···속이 든든! 힘이 팡팡!

  • 끼니
  • | 2018.05.24

곤지암 일대 대표 먹거리 소머리국밥 '최미자' '골목집' '구일가든' 3총사 골프장 개장, 곤지암 나들목 개통 등 한몫 음식평론가 박정배 "서민 보양식으로 으뜸" ’골목집소머리국밥’. 박미향 기자 제주는 고기국수, 포항은 과메기와 물회, 나주는 곰탕. 지역마다 자랑하는 음식이 한 가지씩 있기 마련이다.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 일대도 예외는 아니다. 전국구로 내세우는 음식은...

미쉐린 스타 요리사 평양냉면집 낸 사연은?

  • 끼니
  • | 2018.05.24

평양냉면·곰탕 등 파는 평화옥 순희네빈대떡·가메골손만두·오뎅식당 등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맛집 대거 입성 쉐이크쉑 버거·일본 3대 우동 맛도 볼만 ‘평화옥’의 평양냉면. 박미향 기자 ‘공항서적’이란 게 있다. 좁은 비행기 안에서 대충 훑어봐도 될 만한, 비행기를 타기 전 짬 난 시간에 볼만한 책을 말한다. 여러 번 읽어도 도무지 실체가 파악 안 되는 경제서나, 삶의...

강릉, 신커피로드를 가다

  • 끼니
  • | 2018.03.12

강릉은 자타공인 커피의 도시다. 1980년대 후반 서울 혜화동과 안암동에서 커피숍 ‘보헤미안’을 운영했던 한국 커피 1세대 장인 박이추(68)씨가 2000년대 초반 강릉에 터를 잡으면서부터다. 2002년 문 연, 그리스 산토리니풍의 커피숍 ‘테라로사’의 인기도 한몫했다. 이들의 명성이 밑거름돼 강릉 안목해변엔 커피 거리가 조성돼 있다. 한때 커피 자판기 여러 대가 명물로 커피...

미쉐린 가이드 2018···가온·라연 ‘★★★’

  • 끼니
  • | 2017.12.20

<미쉐린 가이드 2018 서울> 별점을 받은 레스토랑의 요리사들이 <미쉐린 가이드> 인터내셔널 디렉터 마이클 엘리스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박미향 기자 광주요의 ‘가온’과 신라호텔의 한식당 ‘라연’이 지난해 이어 연속 <미쉐린 가이드> 별 3개를 받았다. 미쉐린코리아는 8일 오전 11시, 호텔 시그니엘 서울의 그랜드볼룸에서 <미쉐린 가이드 2018 서울> 발간을 발표하면서 ...

제주 메밀버무리와 꿩엿을 아시나요?

  • 끼니
  • | 2017.10.16

자연주의 건강 맛집 메밀꽃차롱의 ’꿩샤부샤부’ 원매(1716~1797)는 중국 청나라 시대의 인물이다. 시인이었던 그를 후대의 사람들은 음식 사학자로도 기억한다. 그가 펴낸 고서적 <수원식단> 때문이다. 서른세살 때 부친이 사망하자 그는 관직을 사임하고 낡은 정원을 사들여 ‘수원’이라 이름 짓고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평소 사람들과 교류하길 즐겼던 그는 초대받은 집의 ...

꽃처럼 예쁜 한가위 음식···보기만 해도 침이 꼴깍

  • 끼니
  • | 2017.10.16

‘더 플라자’에서 ‘전국 12종가 내림음식 향연’ 펼쳐져 종가의 내림음식 명절 차례상에 오르면서 이어져 와 ’경북 안동 의성 김씨 지촌 김방걸 종가’의 증편. 한가위에 가장 많이 먹는 음식은 송편이다. 반달을 닮은 송편은 지역마다 모양과 맛이 다르다.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해 조상들의 재기발랄한 기질을 확인할 수 있다. 충청도 사람들은 주로 호박송편을 만들어 먹었...

망치탕수육·숯불커피…‘신상 맛집’ 여기 다 있네

  • 끼니
  • | 2017.03.15

맛·멋·재미로 무장한 홍대입구역 6번 출구 일대 식당·카페들 서울 지하철 홍대입구역 6번 출구 앞은 봄기운이 완연하다. 역사 주변에 심은 앙상한 나무들이 기지개를 켜고 화려한 봄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주말이면 데이트 나선 연인들과 커다란 여행 가방을 끌고 다니는 외국인들이 거리를 메운다. 도시 여행자에게 맛난 한 끼는 필수다. 그들을 유혹하는 맛집도 하나둘씩 얼...

이런 식빵, 침이 고이네

  • 끼니
  • | 2017.02.16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입맛 사로잡은 서울의 식빵집들 교토마블의 ‘삼색식빵’. 박미향 기자 식빵은 본래 밥 문화인 한국에서 간식이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위상이 달라졌다. 식생활이 서구화되고 밥보다 빵을 찾는 이들이 늘면서 식빵이 ‘식사 빵’으로 자리잡고 있다. 종류도 다양해졌고, 식빵만 팔거나 식빵을 간판스타로 내세운 빵집들도 생겨났다. 1~2시간 줄 서는 것은...

시장에 가면 신선함도 있고, 가성비도 있고

  • 끼니
  • | 2017.02.09

저렴하게 바닷가재 먹을 수 있는 재래시장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에서 맛 본 랍스터회. 박미향 기자 ‘재래시장은 옳다’. 이 문장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따지는 시대에 외식을 즐기는 이들이 입버릇처럼 쓰는 말이다. 높은 임대료의 압박, 터무니없는 권리금 횡포가 상대적으로 덜한 재래시장은 유명 상권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맛을 즐길 수 있는 게 매력이다. 최근 몇 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