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정말 치즈를 가장 좋아할까?

끼니 2018.04.09
조회수 8071 추천수 0
이기적인 미식

욜로 푸드로 뜬 치즈 수백 가지
제조법 분류 참조하면 고르기 수월해
빵과 먹으면 더 맛있어
한국도 생산 농가 늘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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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욜로 푸드’ 중 하나인 여러 가지 치즈.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치즈아카데미 프로마쥬 김은주(37) 대표는 치즈 한 조각과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치즈는 와인 안주로 알려진 서양의 발효식품이다. 그는 “진한 커피와도 잘 어울려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다”고 말한다. 한 대학병원에서 일했던 그가 치즈에 빠져 유명한 치즈 블로거가 되고 직업마저 바꾸게 된 건 2004년 우연히 접한 카망베르치즈 때문이었다. 보드라우면서 기분 좋은 짠맛에 반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김 대표처럼 치즈에 빠진 20~30대가 많다. 치즈는 적은 양으로도 호사를 누릴 수 있어, 대표적인 ‘욜로 푸드’로 꼽힌다. 하지만 막상 치즈를 사려면 난감하다. 치즈는 수백 가지나 된다. ESC가 김 대표의 도움을 받아 치즈 초급자를 위한 가이드를 마련했다.


치즈는 종류가 너무 많다. 어떻게 구별하나?

치즈는 어떤 가축(소, 염소, 양, 물소 등)의 젖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맛이 다르다. 거의 모든 가축용 초식동물의 젖은 재료가 된다. 심지어 순록, 야크, 라마, 낙타, 말의 젖으로 만든 치즈도 있다. 소젖이 가장 많이 사용되고, 염소젖은 신선하고 숙성이 덜 된 치즈를 만드는 데 주로 쓴다. 양젖은 지방, 단백질 등이 염소나 소의 젖보다 높은데 콜레스테롤은 낮다. 하지만 초급 입문자에겐 제조법에 따른 분류가 쉽다.


제조법에 따른 분류를 알고 싶다.


숙성하지 않는 생치즈는 바로 먹는 치즈로 모차렐라, 샤브루, 마스카르포네, 리코타 등이 여기에 속한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식감, 담백하고 신선한 맛이 특징이다. 몰랑몰랑한 흰 곰팡이연성치즈는 겉이 흰곰팡이로 싸여 있다. 카망베르, 브리 등이 여기에 속한다.


세척외피연성치즈는 숙성과정에서 겉을 마르크(Marc. 와인 만들고 난 뒤 생기는 찌꺼기로 만든 술)로 닦아낸 것이다. 진한 오렌지 빛깔과 우리네 삭힌 홍어와 비슷한 향이 특징이다. 에푸아스, 트라피스트 등이 대표적이다. 반경성치즈는 가열하지 않고 압착한 치즈로 체다, 고다가 여기에 속한다. 단단하면서 노란빛을 띠는 경성치즈는 가열해 압착한 치즈로 파르미자노, 에멘탈이 대표적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고르곤졸라는 푸른곰팡이치즈다. 향과 짠맛이 강하다. 가공 치즈는 가열해 높은 온도에서 살균한 것이다. 단단한 치즈일수록 수분 함량이 적고 짠맛이 강하다.


흰 곰팡이연성치즈. 윤동길(스튜디어 어댑터 실장)
흰 곰팡이연성치즈. 윤동길(스튜디어 어댑터 실장)

어떻게 먹으면 좋은가?


치즈는 어떤 종류의 빵과도 잘 어울린다. 우리네 식탁에 김치가 있다면 서양엔 치즈가 있다. 서양인들의 주식인 빵과 궁합이 잘 맞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자세히 살피면 생치즈는 아이들 간식으로 좋다. 부드러워 노인들이 먹기도 편하다. 맑은 냇물이 한입에 들어오는 느낌이다. 토마토, 루콜라 등과 먹으면 맛있다.


치즈 입문자들이 주로 찾는 흰곰팡이치즈는 바게트, 사과와 잘 어울린다. 삭힌 홍어 향이 나는 세척외피연성치즈는 초급자가 즐기기엔 다소 부담스럽다. 후추만 뿌려 먹어도 새로운 맛을 경험할 수 있는 치즈다. 군고구마나 삶은 고기와 잘 어울린다. 우리네 홍어삼합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경성치즈류는 피자, 샐러드를 포함한 각종 서양요리에 많이 쓴다. 푸른곰팡이치즈는 꿀이나 잼과 먹으면 맛있다.

어떤 치즈든 소량으로 사서 자주 먹는 게 좋다.


간단하게 해 먹을 수 있는 치즈 요리 한 가지를 소개한다면?


치즈를 녹여 먹는 퐁뒤가 간편하고 실용적이다. 녹이는 치즈로는 경성류가 적당하나, 남은 치즈가 많다면 종류에 상관없이 한꺼번에 넣어 녹여 먹어도 좋다. 빵조각, 버섯, 떡, 감자, 무화과 등 취향에 따라 뭐든 담가 먹어도 맛이 좋다. 스위스 알프스 산악지대 사람들은 눈이 많이 내리면 먹을거리가 부족해 딱딱하게 굳은 치즈를 녹여 먹었다. 퐁뒤의 유래다.


반경성치즈.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반경성치즈.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세척외피연성치즈.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세척외피연성치즈.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쥐는 치즈를 정말 좋아하나?


예부터 서양에서 치즈를 보관하는 장소는 창고나 그늘진 부엌이었다. 쥐가 자주 출몰하는 데다. 잡식성인 쥐는 치즈뿐만 아니라 특별히 못 먹는 음식이 없다. 후각이 발달한 쥐는 치즈 냄새도 귀신같이 맡는다. 그런 이유로 많은 동물학자는 쥐가 치즈를 특별히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개도 치즈를 잘 먹는다.


그럼 보관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은가?


생치즈는 유통기간을 확인하고 뜯자마자 바로 먹는 게 좋다. 다른 치즈는 조각 케이크처럼 잘라 밀폐 용기에 담아 냉장고 채소 칸에 둔다. 적당한 보관온도가 7~15도 정도인데 채소 칸이 그 온도다. 푸른곰팡이치즈는 다른 치즈와 한 통에 보관하면 안 된다.


푸른곰팡이치즈.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푸른곰팡이치즈.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경성치즈.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경성치즈.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치즈가 한때 신분과 부의 상징이었다고?


15세기 프랑스에서는 치즈가 그 사람의 신분을 드러냈다. 귀족계급은 최소 6개월 이상 숙성시킨 치즈를 먹었다. 빈민은 생치즈를 주로 식탁에 올렸다. 스위스에서는 화폐로도 사용됐다. 향신료나 와인 등을 살 때 치즈를 돈처럼 지급했다. 숙성기간이 긴 치즈를 많이 가진 이는 사회적 지위가 높았다.


영화 <라따뚜이>에 구멍 숭숭 난 치즈가 나온다.


치즈라고 다 ‘치즈 아이’(cheese eye)라 불리는 구멍이 뚫리는 건 아니다. 스위스 치즈 에멘탈이 대표적이다. 이산화탄소를 방출하는 숙성균이 원인이다. 이산화탄소 자리가 구멍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치즈와 맞는 술은?


치즈엔 생산국, 생산지역이 표시돼 있다. 그곳과 같은 지역의 와인을 고르는 게 좋다. 디저트와인 등 단맛이 강한 술은 풍성한 짠맛의 경성치즈와 어울린다. 최근 한국도 경기, 충청도, 전북 등을 중심으로 치즈 생산 농가가 늘었다. 같은 지역 전통주가 어울릴 수 있다. 탄산막걸리는 흰곰팡이연성치즈와 어울린다.

먹을 때 바디감을 염두에 두면 좋다. 치즈에서 바디감이란 향과 맛의 농도를 말한다. 숙성기간이 짧으면 맛이 가벼워 바디감이 약한 셈이다. 이 기준으로 술을 고르면 된다. 묵직한 에일류 맥주는 숙성기간이 긴 것이 잘 맞다. 작은 치즈 조각을 초콜릿 녹이듯 공을 들여 먹고 입안에 남은 여운을 씻어내듯 술을 마셔라.


한국 치즈도 마트 등에서 많이 보이던데?


지난해 기준 전국 치즈 농가는 100여곳이라고 한다. 주로 소젖을 재료로 한 생치즈를 만든다. 한국 치즈의 역사는 ‘임실치즈’의 대부 지정환(본명 디디에 세스테벤스) 신부가 1964년 전북 임실에 부임해 농민들에게 제조법을 가르치면서다. 최근 우유 소비량이 줄면서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고 보관, 유통이 쉬운 치즈에 관심 두는 농가들이 늘고 있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참고 <치즈>, <500치즈>, <올어바웃 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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