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재운 음식, 하루 묵힌 사랑

박미향 2009.02.23
조회수 37454 추천수 0
[맛있는 만화] <심야식당>의 ‘어제의 카레’
교수님보다 많이 본 술집 그 언니가 그 속에
사람들 속 깊은 이야기가 요리처럼 만화처럼

 
 
요리만화를 볼 때마다 만화 속 음식은 과연 어떤 맛일지 궁금했다. 그 호기심을 충족시켜 볼 작정이다.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요리만화에 등장하는 음식을 전문가와 함께 직접 만들어 시식해본다.
 
한때 입버릇처럼 늙으면 술집을 할 거라는 둥, 음악카페를 할 거라는 둥 흰소리를 하고 다닌 적이 있다. 먼 미래의 일을 어찌 알겠느냐만 나이가 들면 집만큼 아늑한 휴식처를 어딘가에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무심한 듯 따뜻한,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던 곱상한 그
 
박미향-카레-메인-온라인 copy.jpg대학시절 학교 앞에는 <막>인지 <섬>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술집이 있었다. 눈에 보일 듯 말 듯한 언덕 중간에 까만 문이 덩그러니 달린 집이다. 세상을 등진 방랑자의 움막 같고 우주를 떠도는 타디스(영국 SF드라마 <닥터 후>에 등장하는 우주선)의 문짝 같다.
 
골목에 붕 떠서 방황의 바닥을 훑고 있는 문을 끽 하고 열곤 했다. 기껏해야 테이블 세 개, 손바닥 만한 부엌, 문틈 사이로 휙휙 쳐들어오는 칼바람이 휘몰아치는 보잘 것 없는 공간, 그 성냥갑 같은 곳에서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웃고 사랑을 했다니! 나이를 도통 가늠하기 어려운 언니가 주인이었고 4년 내내 교수님 얼굴보다 그 언니 얼굴을 더 많이 보고 살았다. 남학생들과 우정을 나누기가 힘들 때 언니에게 기대어 훌쩍였고 앞날이 깜깜해서 한없이 우울의 밑바닥을 기고 있을 때도 언니가 건네주는 한 잔의 술을 받았다. 곱상한 외모의 언니는 남학생들에게는 아련한 연민이 쏟아지는 누이였고, 손에 잡히지 않는 애인이었으며, 시간의 지혜를 알려주는 스승이기도 했다.
 
한참 지난 지금 간혹 그 언니가 그리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연히 서점을 찾았다가 그 언니를 만화 속에서 만났다. 만화 <심야식당>(아베 야로 저. 미우펴냄)안에 그 언니가 있었다.
 
“영업시간은 밤 12시부터 아침 7시경까지. 사람들은 ‘심야식당’이라고 부른다. 손님이 오냐고? 근데 꽤 많이 오더라니까.” 만화의 첫 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한 쪽 눈에 흉터가 있는 <심야식당>의 주인은 내 젊은 날 그 언니를 닮았다. 무심한듯하면서 따뜻한 위로자.
 
자정부터 아침까지 영업, 손님은 조폭 한물간 가수…
 
만화 <심야식당>은 41살 늦은 나이에 만화가로 데뷔한 아베 야로의 작품이다. <심야식당>은 그의 첫 작품으로 일본 만화잡지 ‘빅코믹 오리지날’에 한 달에 한번 연재하는 만화다. 밤에만 문을 여는 식당 안에서 벌어지는 손님들과 음식에 관한 이야기들로 구성돼 있다. 이 만화를 끌고 가는 화자는 주인이지만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은 이 심야식당을 찾는 조폭, 게이바 종업원, 한물간 엔카 가수 등이다. 사회의 실패자들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주인장이 만든 음식을 먹으면서 우정과 사랑을 나눈다.
 
<심야식당>은 다른 요리만화들과 다르게 복잡한 요리법이나 맛에 대한 집착이 없다. 만화 속 음식들은 누구나 쉽게 집에서 만들 수 있는 간편한 요리들이고, 그 음식을 맛보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는 마치 내 이야기인 듯하다.
 
1 copy.jpg제1권 제2야 편에 ‘어제의 카레’가 나온다. 이 편이 눈에 들어온 이유는 ‘어제’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어떤 요리사도 ‘어제’ 만든 음식을 내놓지는 않는다. 먹어서도 안 된다고 외친다. 하지만 <심야식당> 안 ‘어제의 카레’는 없어서 못 먹는 인기 메뉴다.
 
“카레가게에는 이게 없단 말이야” “곱빼기 하나” 소리가 만화 속 등장인물들의 입에서 터져 나온다. 맞다. 카레요리를 파는 세상 그 어떤 음식점에도 ‘어제의 카레’는 없다.
 
주인장은 속으로 ‘카레는 대단하다. 남이 먹는 것을 보면 왠지 먹고 싶어지니까’라고 생각한다. 저자인 아베 야로는 자신의 인생 경험을 만화 속 이야기에 많이 녹였다고 말했다. 인기절정 ‘어제의 카레’ 맛에 대한 궁금증이 호기심의 불을 지폈다. 주인장의 말대로 만들어 먹기로 결정했다.
 
‘어제의 카레’는 주인장 말에 의하면 ‘시중에 파는 카레 국물에 야채가 좀 많이 들어간 집카레’이고 냉장고에서 하룻밤 재워두는 카레라고 한다. 냉장고에서 약간 굳은 카레를 따뜻한 밥에 얹혀 녹여가며 먹는 맛이 그만이라고 적혀있다.
 
주인장 말대로 채소가 많이 들어간 카레를 만들고 쇠고기와 돼지고기도 들어간 카레도 만들었다. 왜 돼지고기와 쇠고기를? 카레만큼 들어가는 재료를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마음껏 고를 수 있는 음식도 없지만 쇠고기나 돼지고기가 실제 카레요리에서 빠지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만드는 김에 함께 끓였다. 사람에 따라서는 버섯이나 사과는 넣는 이도 있다.
 
쇠고기는 우둔살, 돼지고기는 안심을 골랐다. 지방이 적은 부위를 골라야 덜 느끼하다.
 
환갑의 아저씨와 21살의 그는 ‘어제’를 먹으며 눈이 맞았다
 
뚝딱뚝딱 만든 카레를 하루 동안 냉장고에 재워뒀다가 밥과 함께 먹었다. 냉장고에 재워두기 전에 따뜻한 카레와 뜨끈한 밥을 비벼 먹고 그 맛을 적어두었다. 어떻게 다를까?
 
얌얌!! 음야음야!! 처음 느낀 소감은 따뜻한 카레를 먹었을 때 느꼈던 느끼한 온기가 사라지고 쿨한 담백함이 밥알들 사이에서 있었다.
 
쇠고기카레는 아기의 피부를 꼭 깨무는 것 같은 쫄깃함으로 시작해서 몽실몽실함으로 끝났다. 돼지고기카레는 쇠고기카레처럼 고기 맛이 강하게 다가오지는 않지만 복잡한 육질의 맛이 남아있었다. 이 두 가지는 구운 고기 때문에 채소카레보다 짠 듯한 느낌을 주었다.
 
채소카레는 맹구처럼 어리바리한 심심함으로 시작해서 은은하고 우아한 맛으로 끝을 장식했다. 하루 동안 재워두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만화 속 주장처럼 채소가 많은 카레가 제격일 듯하다. 반드시 따뜻한 밥과 함께 먹어야 맛있다. 시간을 아끼는 사람들에게 좋은 음식이다.
 
만화 속 ‘어제의 카레’ 편의 주인공들은 61살의 진씨와 21살의 에리카였다. ‘어제의 카레’를 홀딱 먹어치운 에리카의 먹성 때문에 두 사람은 만났고 매일 밤 ‘어제의 카레’를 같이 먹으면서 눈이 맞았다. ‘어제의 카레’처럼 하루 묵은 다음날 새벽에 두 사람은 ‘사랑을 완성’(?)했다. “카레처럼 하루 재워두니 더 맛있군”이라는 조금은 야한 대사로 만화는 끝난다. 어제의 카레든 내일의 카레든 음식 속에 숨어있는 것은 화려한 미식의 세계의 아니라 사람들의 속 깊은 이야기다. 그 옛날 그 언니를 만나 그 옛날 카레를 먹어보고 싶다.
 
현재 한국에 두 권이 출간되었다. 한 권당 약 14~15가지 음식과 에피소드가 등장하다. 2008년 11월 한국에서 출간해서 현재 3쇄를 찍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곧 3권이 출간될 예정이다.
 
◈ 만드는 법

1. 당근, 감자, 양파, 파프리카를 다듬어서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재료양은 취향대로)
2 copy.jpg
 

2. 한 입 크기로 자른 쇠고기, 돼지고기와 다듬은 채소들을 잘 볶는다. 올리브유나 식용유 혹은 버터를 사용한다. 볶을 때 소금 간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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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익은 식재료들을 한 솥에 넣고 멸치로 우린 물을 부어 살짝 익히다가 카레가루를 푼물을 넣어 끓인다.
 
4. 걸쭉해지면 식혔다가 냉장고에 보관한다.

 글·사진 박미향 <한겨레> 맛담당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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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이메일 : mh@hani.co.kr       트위터 : psol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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