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들 손 덥석덥석…입도 마음도 녹인다

박미향 2009.08.19
조회수 104650 추천수 0
<초밥아가씨 사치>
여자는 맞지 않다던 아빠도 “음! 아이스크림 같군”
맛의 비결은 밥알의 개수, 402알 대 243알의 차이
 
 
Untitled-12 copy.jpg

“여자에게 초밥은 맞지 않는다니까! 몇 번 말해야 알아듣겠어!” 버럭, 아버지는 딸 사치에게 소리친다. 사치는 초밥 장인이 되는 것이 인생의 꿈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초밥집 ‘미나토’를 운영하는 초밥의 고수다. 사치가 꿈을 이루기 위해서 주방을 엿볼 때마다 소리친다. “여자는 맞지 않는다”고! 만화 <초밥아가씨 사치>의 첫 에피소드에 나오는 장면의 일부다.
 
‘저 아가씨 나한테 마음이?’라면 큰 착각
 
‘여자에게 초밥이 맞지 않는다’는 소리는 무슨 말일까?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나 초밥집에서 여자 요리사를 찾아내기는 매우 어렵다.
 
한국의 초밥왕으로 알려진 안효주씨가 운영하는 ‘스시효’(분점 포함)에서 일하는 12명의 요리사 가운데 여자는 단 1명이다. 서울 장안에 맛있다고 소문난 초밥집 A나 K, J호텔의 초밥집 S 등에는 초밥을 잡는 여자 요리사는 없다. 동네 작은 일식집들을 뒤져봐도 마찬가지다.
 
10여년 동안 일본 식문화를 연구한 김정은 배화여자대학 전통조리과 교수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Untitled-17 copy 2.jpg“일본에선 여자들은 생리 때 체온이 올라가서 날생선을 다루는 데 적당하지 않다, 화장품 향이 초밥에 밸 수 있다, 예전엔 요리사들이 모든 걸 처리해야 해 남자처럼 센 힘이 필요했다는 등등의 이유로 초밥 요리는 여자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요. 헌데 이는 과거 무사시대의 영향일 뿐 그런 생각에는 여성에 대한 편견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만화 <초밥아가씨 사치>는 그런 편견에 맞서면서 초밥의 세계로 들어가는 여성의 이야기이다.
 
첫 장을 넘기면 ‘미나토’를 찾은 사내들의 손을 사치가 덥석 잡는 장면이 나온다. 사치는 사내들에게 “기다리고 있었어요! 오늘은 신선한 재료가 많이 들어와 있어요”라고 말한다. 사내들은 “저 아가씨 나한테 마음 있는 거 아니야?”라고 속으로 생각한다. 사치의 아버지 얼굴도 구겨진다. 하지만 이어지는 사치의 한마디로 이들의 오해는 풀린다. “초밥을 맛있게 먹게 하려고 손을 녹여준 거야.” 초밥은 사람의 체온(약 36.5도씨)일 때 가장 맛있다고 한다.
 
뭉쳐있는 밥은 돌아선 애인의 마음 같이 지옥의 문
 
딸의 초밥수업을 반대했던 아버지는 결국 그녀의 고집을 꺾지 못한다. 독학으로 열심히 빚은 그녀의 초밥을 맛보고 마음을 바꾼 것이다. 도대체 어떤 맛이었길래 아버지의 마음이 바뀌었을까? 아버지는 “아이스크림이 입 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맛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만화에서 ‘미나토’의 요리사 마츠가 스승인 사치의 아버지에게 초밥을 선보이는데 그 초밥들 사이에 사치의 초밥도 넣었다. 두 사람의 초밥은 맛이 달랐다.
 
맛의 차이는 밥알의 개수에서 나온 것이었다. 마츠의 초밥은 402알, 사치가 만든 초밥은 243알. 개수가 많은 마츠의 초밥이 더 맛있거나 고급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아니다. 초밥이 아이스크림처럼 입안에서 녹으려면 초밥 안에는 공기가 넉넉하게 들어가야 한다. 초밥의 달인들은 초밥 안에 틈을 만들어 공기를 넣는다. 사치는 그것을 해낸 것이다.
 
맛있는 초밥은 인생을 천국의 땅으로 인도한다. 뾰족한 이로 매끈한 생선의 살을 뚫고 들어가면 폭신한 침대 같은 밥알들이 천사들의 나팔소리처럼 맛의 쾌감을 부른다. 반드시 포근하고 부드러운 밥이어야 한다. 생선 아래 촘촘히 뭉쳐 누워 있는 밥알들이 마치 돌아선 애인의 마음처럼 딱딱하고 무미건조하면 바로 지옥의 문으로 떨어지는 쓰라림이 몰려온다. 그래서 초밥은 밥이 중요하다.
 
작가가 초밥집 주인 장남…만화 속의 초밥 실제로 맛볼 수 있어
 
Untitled-14 copy.jpg이어지는 사치의 초밥 모험은 진지하면서 따뜻하고 재미있으면서 감동을 준다. 유쾌하고 통쾌하다. <미스터 초밥왕>과는 다른 종류의 즐거움을 준다. 언젠가 그녀가 만든 멋진 초밥을 먹고 싶어진다. 세상에 ‘누구에게는 맞지 않는 요리’란 없다. 맛은 추억이고 우리 삶을 이어주는 윤활유이며 넉넉한 어머니의 품이다.
 
<초밥아가씨 사치>는 일본 쌍엽사(雙葉社)의 월간 잡지 <만화대중>에 2004년 12월호부터 연재된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대원씨아이(주)에서 5권이 나와 있다.
 
작가 무라카미 시게오는 상어 지느러미의 산지로 알려진 항구도시 게센누마 시(氣仙沼市)가 고향이다. 그의 고향이 만화의 배경이다. 그는 게센누마시의 한 초밥집 주인의 장남이다. 자신이 초밥집 장남인 것을 안 편집장의 초밥 만화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도쿄를 배경으로 하는 초밥집 이야기를 구상했지만 초밥을 배우기 위해 고향에 내려가 아버지와 지내면서 작가는 마음을 바꿨다.
 
“도쿄는 초밥의 최대 소비지이지만 생산자와 소비지가 깊숙이 결부된”그의 고향이 만화 배경으론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작가는 만화에 등장하는 초밥들은 게센누마시로 오면 모두 맛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만화는 일본에서도 부정기적으로 연재가 되어 1년에 단행본 한권이 나오기도 힘들다. 아쉬운 점이다. 만화에 등장하는 초밥은 아니지만 2가지 간단한 초밥 요리를 소개한다.
 
지라시초밥은 일본 관서지방 요리다. 관동지방에서는 생선을 얹은 초밥을, 관서지방에서는 생선을 밥 사이에 섞거나 뿌려 먹는 초밥을 먹었다.
 
글·사진 박미향 <한겨레> 맛담당 기자 mh@hani.co.kr
요리 김정은 배화여자대학 전통조리과 교수
 
◈ 햇우엉 지라시초밥
 
Untitled-15 copy.jpg

재료 l
쌀 4컵, 우엉 180g, 소고기(불고기용) 100g, 참기름 1.5큰술, 그린빈스(껍질콩) 8줄기, 초생강 2큰술

조미액(A) - 설탕 3큰술, 간장 3큰술
달걀소보로(B) - 달걀 6개, 설탕 1큰술, 소금 1작은술
단촛물(C) - 식초 4큰술, 설탕 3큰술, 소금 1.5작은술
 
만드는 법
1. 우엉은 필러로 껍질을 벗겨 3cm 길이로 채 썰어 물에 담가두고 소고기는 5mm 두께로 채 썬다.
2. 팬에 참기름, 소고기를 넣고 볶다가 우엉을 넣고 조미액(A)의 재료를 넣어 국물이 졸아들 때까지 볶는다.
3. 달걀소보로(B)의 재료를 모두 섞은 뒤 중탕으로 소보로를 만든다.
4. 단촛물 재료를 모두 섞고 그린빈스는 끓는 물에 데쳐 어슷하게 썬다.
5. 밥에 단촛물을 섞고 ②를 섞은 뒤 달걀소보로, 그린빈스, 초 생강을 뿌려낸다.
 
◈ 참치초밥
 
Untitled-13 copy.jpg

재료 l
 참치(냉동) 1토막, 소금 1/2작은술, 고추냉이 적당량, 갓 지은 밥 2공기, 간장 약간, 단촛물(A) - 식초 1/2컵, 다시마 사방 5cm 1장, 설탕 75g, 미림 1/2큰술, 소금 1.5큰술

 
만드는 법
1. 단촛물(A)의 재료를 냄비에 모두 넣고 끓여 식힌다.
2. 참치는 소금을 살짝 뿌린 뒤 뜨겁게 달군 팬에 겉만 익도록 사방을 돌려가며 지져낸 뒤 5mm 두께로 썬다.
3. 갓 지은 밥에 ①의 단촛물을 섞은 뒤 손으로 쥐어 빚은 뒤 고추냉이와 참치를 얹는다.
4. 그릇에 ③의 초밥을 담고 간장을 곁들여 낸다.
 
박미향 기자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첨부
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이메일 : mh@hani.co.kr       트위터 : psolsol      

최신글

엮인글 :
http://kkini.hani.co.kr/5139/8c9/trackback
List of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