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뿐인 사랑 녹아 행복 ‘쫀득’

박미향 2008.07.14
조회수 5711 추천수 0

[맛집순례] 오스트리아 음식점 ‘쉐프 마일리’

 

호텔 총주방장 거쳐 교수 하다 첫눈에 ‘화학작용’
국내유일 정통요리…야채 넣은 쇠고기말이 푸짐

 

 

Untitled-26 copy.jpg


오스트리아 요리사 ‘콩깎지’ 씌어


“이제 밤도 깊어 고요한데 창밖을 두드리는 소리/시간은 간곳이 없고 외로이 남아 있는 웨딩 케이크/이 밤이 지나가면 나는 가네, 원치 않는 사람에게로~.”


오래전, 한 선배가 어떤 여자의 결혼식에서 이 노래를 축가로 불렀다. 끝난 후 식장 안의 분위기는 싸늘해졌지만, 신랑의 호탕한 웃음 때문에 조용히 끝날 수 있었다. 평소 괴짜로 소문난 그 선배의 광기가 거기까지 이를 줄이야! 해프닝에 불과했지만 어쩌면 그 선배는 그 여자를 사랑했던 것은 아닐까?

 

살다 보면 종종 우스운 일이 벌어진다. 대학교 1,2학년 때 분홍빛 감정을 나에게 고백했던 아주 특이한 녀석이 있었다. 세월이 흘러 그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어릴 때 사랑이란 그저 어린아이 장난 같은 것이라 생각하고 그 녀석의 감정을 우정으로 바꾸고 지내고 있던 터였다. 결혼식이 끝난 뒤 몰려 간 피로연 장소. 갑자기 신부 친구들이 엄청난 음치이자 가사도 잘 못 외우는 나에게 노래를 시키는 것이 아닌가! 음해의 냄새가 짙었다. 나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이은하의 노래.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그대는 영원한 것/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순간 좌중은 남극이 되었다. 그 녀석을 사랑한 것도 아닌데 왜 하필 그 노래가 왜 튀어나왔을까? 지금 생각해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가사가 짧아서 일까!

 

그 녀석 결혼식에서 부른 노래, 아뿔싸! 어쩌다 연정이었는지…

 

Untitled-27 copy.jpg우리 모두는 나에게 하나밖에 없는 ‘당신’을 찾아 헤맨다. 그 ‘하나’와 이 지구에서 오랫동안 행복한 시간을 누릴 수 있을까? <쉐프 마일리>(Chef Meili)에 가면 그 비결을 알 수 있다. 주인 크리스티앙 마일링거(43)는 지구의 반을 돌아 지금 아내 이영지(43)를 만났다. 오스트리아 요리사였던 마일링거는 한국에서 2001년까지 밀레리엄 힐튼호텔 총주방장을 했고 지난해까지 대전 우송대학교 외식조리학교계열 교수를 했다.


일주일에 한번, 서울에 음식 재료를 구하기 위해 올라오면 이태원에 있던 이씨의 옷 가게를 들르곤 했다. 멋쟁이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사랑의 화학작용 때문이다. 첫눈에 반한 그는 데이트 신청을 했고 1년간 연애를 하고 2년 전 결혼을 했다. 이씨가 대기업 유럽본부에서 일한 탓에 언어 문제도 없었다. 딱 맞는 짝을 찾는 것이다. 그 사랑의 결과물이 오스트리아 음식점 <쉐프 마일리>이다.

 

병뚜껑 돌려 마시는 본국산 와인 입맛대로

 

주인의 화려한 이력에 비해 <쉐프 마일리>는 소박한 분위기이다. 천장에 걸려 있는 주인의 고향 사진 앞에서 그는 “우리 할머니가 아직까지 이곳에 살고 있어요”라고 서툰 한국말과 영어를 섞어 이야기한다. 한쪽에는 작은 바가 있는데 여기서 따르는 맥주는 시원하고 칼칼하다. 차림표에 등장하는 요리들은 죄다 오스트리아 정통 요리이다. “한국에서 오스트리아 정통 요리하는 곳은 여기밖에 없을 걸요. 독일식은 많아도” 아내 이영지씨가 미소 지으며 말한다.

 

Untitled-28 copy.jpg‘야채 넣은 쇠고기말이와 스페츨’은 양이 많고 짠 듯하지만 쫀득하니 맛있다. 괄호 안에 한국어로 ‘오스트리아 파스타’라고 적혀 있는데 아마도 주인이 한국인을 위해서 적어 놓은 듯하다. 모양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파스타 같지 않다.


이집은 오스트리아 와인이 있다. 와이너리 푀클의 츠와이겔트와 츠와이겔트 클래식, 와이너리 유로취지, 와이너리 찬토, 골저 와이너리 와인 등이다. 이 와인들은 코르크 마개가 없다. 탄산음료처럼 병뚜껑을 돌려서 마신다. 더구나 화가가 그린 모차르트의 얼굴라벨이 시선을 끈다. 주인은 와인 ‘그뤼베’와 ‘보비어’를 추천한다.


간판에 붙은 빨간색 코카콜라 로고가 눈에 띄어 물었다. “제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처음 이 집을 열 때 코카콜라 후원을 연결시켰다. 당시 돈이 모자랐다.”


커다란 덩치의 마일링거, 그 뒤에 조용히 웃고 있는 아내 이영지, 그들 사이에 한겨울 따스한 햇살 같은 사랑이 얇게 퍼진다. 그 사랑이 모든 요리에 녹는다.

 

위치: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10시
전화번호: (02)797-3820
메뉴: 요리 5천5백원~3만2천5백원(메인요리는 대부분 1만원을 넘는다)
맥주 2천5백원~8천원,  하우스 와인 7천원, 와인 2만8천원~12만5천원 부가세 별도)

 

글, 사진 박미향 한겨레 맛전문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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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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