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음식의 반란…추억과 결합시킨 맛의 역발상

박미향 2008.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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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토크] ‘김씨도마’의 도마요리들

 

식탁의 주인공으로 변신한 도마
경주 김씨 종가집 향취가 고스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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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가 싶더니 벌써 여름인가. 요즘 같으면 봄이 봄이 아니다. 초여름 날씨를 방불케 하는 며칠 전 점심 무렵에 서울 광화문에 있는 한식집 ‘김씨도마’를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우선 은은한 조명이 마음을 편하게 하는 듯하다. 식탁에는 푹신한 방석이 깔려 있고, 전통 창호지가 식탁 사이 칸막이 노릇을 한다. 조용히 얘기하기에 제법 좋은 분위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조금 더 돌려봤다. 음식점 이름값을 하려는 듯 벽에는 1m가 넘는 도마가 걸려 있고, 부엌 들머리에는 작은 도마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직접 세보고 재보니 도마 크기는 40x30㎝, 개수는 42개. 주인 김민용씨한테 무엇으로 만들었느냐고 물어보니 미송나무로 만들었다고 한다.

 

김씨의 남편이 지은 음식점 이름 ‘김씨도마’는 “김씨가 도마 위에서 맛난 요리를 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도마로 인테리어를 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 집에서는 두 가지 요리만 빼고 나머지 10여가지 요리는 모두 도마 위에 얹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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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문을 연 이 집이 주인 김씨는 충북 음성에 사는 경주 김씨 종갓집 후손이다. 이렇게 말하면 뭔가 특별한 게 있을 것 같지만, 그렇다고 별난 요리가 있는 건 아니다. 차림표를 찬찬히 뜯어봐도, 차림표에 있는 요리들을 직접 먹어 봐도 요리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거나 독특한 것들은 없다.

 

이 집의 매력은 그 반대로 간결한 맛이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평범한 것에서 특별한 매력을 뽑아내는 역발상의 성공학이다.

 

그런 평범한 요리의 깊은 맛을 표현하는 매개체가 바로 도마다. 도마는 우리의 옛 추억을 되살려주는 도구다. 그 추억의 한가운데엔 어머니의 도마 소리가 있다. 식탁 위의 도마는 그런 옛 추억을 끄집어내는 핀셋이자,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는 고리이다. 종갓집 후손이라는 주인 김씨의 이력은 이런 연상을 더욱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그래서 이번 ‘메뉴토크’는 그 대상을 메뉴 자체가 아니라 도마로 잡았다. 부엌 한구석에 있던 도마가 이 집에서는 단순한 받침대가 아닌 식탁의 주인공이다.

 

국수 빈대떡 전유어…간단하면서도 친숙한 요리법

 

이 집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도마국수’를 보자. 멸치를 우려낸 국물에 면이 나온다. 면은 밀가루와 콩가루, 달걀을 적절한 배율로 반죽한다. 써는 건 기계가 아니라 사람의 손이다, 어디에서 썰겠는가? 바로 도마다.

 

녹두로 만드는 ‘도마빈대떡’에 얹히는 각종 야채도 역시 도마 위에서 음식 재료로 재탄생한다.

 

“반죽한 녹두를 깔고 고명처럼 각종 야채를 얹습니다. 그 위에 다시 녹두를 뿌려요. 식용유를 안 씁니다. 돼지기름을 식용유 대신 사용합니다. 바삭한 맛은 거기서 나오는 것이지요. 야채는 따로 후추와 참기름만으로 간단하게 양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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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전유어’ 역시 도마 위에서 음식의 중심을 잡는다. ‘전유어(煎油魚)’란 기름을 두르고 재료를 얄팍하게 썰어 밀가루를 묻혀서 지진 우리 전통 음식을 일컫는 말이다. 이 집의 ‘도마전유어’엔 세 가지 맛이 한꺼번에 도마 위에 담겨 나온다.

 

-세 가지 맛이 어떤 건가요?

=소의 안창살과 채 썬 호박, 상어 돔배기를 소금과 참기름만으로 간을 하고 밀가루와 달걀을 입어 익힙니다. 돔배기전은 다른 집에서는 보기 힘들지요. 쇠고기는 고기를 얇게 저민 것이라서 채 씹기도 전에 넘어갑니다. 돔배기전은 광어전이나 민어전처럼 텁텁하면서 담백하지요. 호박전은 이 두 전이 모두 느끼할 수 있는데, 그것을 상큼한 야채의 맛으로 입안을 깔끔하게 합니다.

 

돔배기는 원래 상어의 껍질을 벗기고 도톰하게 포을 뜬 것을 양념에 5시간 정도 재워두었다가 구은 것을 말하는데, 경상도 사람들은 바다에 잡은 상어를 그저 돔배기 고기라고 부른다. ‘김씨도마’의 돔배기전도 경상도 영천 어촌에서 잡은 상어고기를 전으로 만든 것이다. 인도양에서 잡은 어린 상어에서는 스쿠알렌을 축출해서 건강보조식품을 만들고 철갑상어의 알젓은 비싼 식재료인 캐비어가 된다. 경상도에서는 구이로도 먹고 제사상에 올린다.

 

아이엠에프 때 바깥세상으로…“착하게 사는 게 젊음 지키는 비결”

 

얼굴이 고운 그는 자신의 나이를 밝히기를 꺼렸다. 얼굴로 어림잡아 보아 마흔 두어살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 보다 훨씬 많단다.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 궁금했다. 비법을 공개해달라고 꼬치꼬치 물었더니 “착하게 살면 그렇게” 된단다.

 

그래서 다소 좀 엉뚱한 질문을 해봤다. 어떻게 착하게 살아왔느냐고.

 
untitled-4_copy_2.jpg그의 ‘착한 삶’ 이력은 이렇다. 원래 그는 요리사가 아니었다. 애 키우고 남편 챙기는 전업주부였다. 아이엠에프 때문에 이 일을 시작했지만 15살부터 종갓집에서 배운 어머니의 착한 손맛대로 음식을 만들었다. 전업주부 시절 온갖 조미료에 중독 된 남편의 입맛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던 그 방식을 지금도 그대로 지키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손에서 나오는 요리는 모두 순하다. 짧은 시간 혀를 자극해서 식욕을 채우는 데 급급해 하지 않는다. 한참을 들여다보아야 그 색감과 태양빛, 얼굴 표정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정물화 같은 은은함이라고 할까.

 

참! 술꾼들을 위한 멋진 막걸리도 발견했다. 문화재 58호로 등록된 진천 막걸리다. 첫 맛은 달짝지근하고, 목을 타고 넘어가면 가슴이 후끈 달아오른다.

 

11살 때, 학교에서 선생님께 야단맞고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터벅터벅 걸을 때면 어린 마음에도 ‘우울’이라는 것이 심장 깊숙이 파고들었다. 하지만 집이 가까워지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얼굴에는 웃음이 번졌었다. 오로지 어머니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그 시간이면 커다란 도마 위에서 나비가 춤을 추듯 식칼을 놀리며 요리를 하셨다. 툭탁툭탁. 식탁 너머 들리는 도마 위 칼질하는 소리는 어머니의 음성처럼 들렸다. ‘김씨도마’의 도마를 만났을 때 그 기쁨이 맛으로 전해졌다. (02)738-9288

 

*사족: 이 집에 가면 의외로 일본인 손님들이 많이 눈에 띈다. 현해탄 너머까지 입소문이 난건가? 그냥 속으로만 궁금해 하지 말고, 주인한테 한 번 직접 물어보시라. 단번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답변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 박미향 한겨레 맛전문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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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이메일 : mh@hani.co.kr       트위터 : psol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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