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대한 연민’ 소스로 착한 파이

박미향 2008.07.30
조회수 5850 추천수 0

[맛집순례] 인디고

 

소금만으로 간을 해서 채소 자체의 맛이 ‘아삭’
부가세도 봉사료도 없고 와인값도 밥값도 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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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 어두운 곳보다는 밝은 곳을 향할 때가 있다. 우는 아이보다는 웃는 아이를, 아픈 과거를 가진 이보다는 기쁜 일만 있는 이를 찾을 때가 있다. 인생의 기운도 전염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빛을 찾아 셔터를 누르는 사진가도 때가 되면 어두운 곳에서 한 컷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나이가 들고 삶을 겪을수록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연민이 있는 이가 좋아진다. 규범으로 사람을 단죄하지 않고 악인에게도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 줄 안다. 주변의 작은 어둠에도 정성을 기울인다.

 

화려한 이태원 거리를 조금 벗어나 녹사평역에서 후암동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언덕에 있는 <인디고>(indigo)가 바로 그런 곳이다.

 

2년 전, 주인 조연수(46)씨는 이태원 거리의 음식이 너무 비싸 그 곳을 찾지 못하는 외국인 친구들을 위해서 무작정 이 집을 열었다. 그는 요리도 잘 알지 못한다. 레시피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완성했고, 인연이 닿았을 뿐 누군지 잘 모르는 영국인 요리사 블라다를 모셨다. 그래서 이곳은 세계 각국의 요리들이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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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이 부담스러운 외국인들을 위해 문열어…세계 각국 요리 즐비

 

그 중에서 ‘베제테리안 셰퍼드 파이’(Vegetarian Shepard's Pie)가 눈에 띈다. 셰퍼드 파이는 각종 고기와 야채를 삶아 펼치고 그 위에 으깬 감자와 치즈를 얹어 먹는 요리다. 조씨는 고기를 없애고 채식을 하는 이들을 위해 이 요리를 만들었다. 부드러운 감자가 생채기 난 위를 다독인다. 오직 소금으로만 간을 해서 채소 자체의 맛이 느껴진다.

 

든든한 고기 음식을 먹고 싶다면 ‘인디고 미트 파이’(indigo meat pie)도 맛있다. 밀가루를 반죽해 만든 도우 안에 쫄깃한 쇠고기가 있다. 쇠고기를 가는 대신 우리네 장조림처럼 길쭉하게 잘랐다. 독특한 향신료가 들어간 소스는 별스런 맛이다.

 

이곳은 부가세도 봉사료도 없다. 와인 값도 밥값도 착한 편이다. 낯선 땅에 도착해 버스 타는 것조차 모르는 이방인들에게 조씨는 친절을 베푼다. 그는 하얀 피부만큼 뽀얀 마음씨를 가졌다. 그의 손맛 또한 뽀얗다.  (02)749-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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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못 다한 이야기

 

윗층엔 남편이 하는 맥주집

 

<인디고>가 있는 건물 위에는 맥주집이 있다. 이 집은 조씨의 남편 강신우(46)씨가 맡아서 운영한다. 그는 지난날 그림이나 가구를 수입해서 파는 일을 했었다. <인디고>안에 아름다운 벽 그림과 오래된 느낌의 가구들은 그가 고른 것이다. 눈썰미가 좋다. 아내 조씨는 ‘요리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남편 강씨는 만든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한다. 두 사람은 천생연분인 듯하다.

 

요즘 조씨는 한창 ‘만드는 것’에 빠져 있다. 책이나 그림으로만 본 세계 요리를 자신의 손으로 뚝딱 만들어 눈앞에 펼치는 순간 환희를 느낀단다. “우리 집은 퓨전이다. 모든 음식은 제 나라를 벗어나면 다른 나라의 문화가 얹어져서 조금 다른 요리가 된다고 생각한다.” 힘주어 말한다.

 

3월이면 아랍세계의 요리도 맛 볼 수 있다. 두바이에서 스리랑카 요리사를 초청했단다. ‘인디고 블루’란 색에서 따온 간판만큼 청명하고 푸른 의지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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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한겨레 맛전문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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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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