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대사관 사상 최연소 조리장의 웰빙식

박미향 2008.07.30
조회수 8357 추천수 0

[메뉴토크] ‘목란’의 어향동구

 

1980년 22살 요리 경력 불과 5년 만에 데뷔
일본서도 인기…직접 만든 즉석만두도 바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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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어느날 저녁 7시. 서울 명동 중국대사관(한·중 수교가 1992년에 이뤄졌으므로 당시 중국은 지금의 대만). 대사와 그의 부인, 대사관 직원 등 예닐곱 사람이 식탁에 둘러앉아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한 젊은 요리사가 조심스럽게 자신이 만든 요리를 들고 이들 앞에 나타났다. 그의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50여명의 사오십대 베테랑 요리사들을 제치고 중국대사관 사상 최연소 조리장으로 뽑힌 22살의 리옌푸(李連福·이연복)가 정식으로 데뷔하는 순간이었다.

 

중국을 대표하는 대사관의 먹을거리를 책임지는 자리에 들어갔을 당시 그의 요리 경력은 불과 5년. 대사관 쪽에서도 그의 음식 솜씨를 높이 사 파격적인 발탁을 하기는 했지만 일부에서는 여전히 미심쩍어 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날 그의 첫 음식을 맛본 이후로 그런 목소리는 자취를 감췄다. 28년이 흐른 지금 그는 서울 서대문 중국음식점 ‘목란’ 주방에서 여전히 땀을 흘리고 있다.

 

중국집이면서도 기름 적게 쓰고 느끼하지 않는 맛 특징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는 그가 첫손가락으로 내세우는 요리는 무엇일까? 그는 질문을 받자 망설임 없이 ‘어향동구’란 요리를 소개했다.

 

“동구버섯(표고버섯을 말린 것)을 물에 불리면 향이 달라져요. 향긋한 향을 가진 동구버섯을 닭뼈를 우린 육수에 넣어 불립니다. 버섯은 육수를 빨아들이지요. 익힌 새우를 다져서 동구버섯 위에 올립니다. 함께 쪄내지요. 그 위에 어향소스를 뿌려 먹습니다.”

 

어향소스는 생선향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실제론 생선은 들어가지 않는다. 마, 고추, 피망 등 야채를 볶은 것과 굴소스, 후추, 감자전분을 함께 끓여 만든 소스다.

 

이 요리를 첫손가락에 꼽은 이유가 뭘까? 그의 말이 이어졌다.

“어향동구는 채로 썬 고기 위에 어향소스를 부어 먹는 ‘어향육사’를 제가 업그레이드한 것입니다. 고기 대신 버섯과 새우를 넣었지요. 요즘 사람들은 기름지거나 살찌는 요리는 피하잖아요? 그래서 시대 흐름에 맞춰 웰빙식으로 제가 바꾼 겁니다. 저희 집 요리의 특징은 중국집이면서도 기름을 되도록 많이 쓰지 않고 느끼하지 않는 맛을 내는 것이지요.”

 

수저로 한 접시 가득 담아 맛을 보았다. 버섯 위에 올려진 새우는 마치 으깬 밥알처럼 뭉실하게 부드러웠다. 입안에 가득 집어넣으니 버섯의 덩어리감이 혀를 감싸 안고, 우유 같은 새우의 질감이 혀의 천장과 벽을 덮어버린다. 마지막을 장식한 건 어향소스에 들어간 청양고추가 내는 톡 쏘는 맛이다.

 

중국집 하면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군만두도 이 집에서 사람들이 즐겨 찾는 요리다. 이 집에선 만두를 어떻게 만들까?

 

“만두를 서비스로 주는 중국집들의 경우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미 만들어진 냉동만두를 사서 튀겨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는 만두피도 직접 만들고 만두속 역시 제 식으로 만들지요. 주문이 들어오면 그 때부터 빚기 시작해요. 속은 돼지고기가 80% 들어갑니다. 한 개 먹으면 ‘고놈 참 실하다’라는 소리가 나오지요.”

 

크래커처럼 바삭한 만두피는 캐러멜색으로 노릇노릇하게 익은 게 보기에도 먹음직스럽다. 그 안의 돼지고기 속은 그의 자랑대로 기름기가 거의 없다. 보쌈용 수육 돼지고기처럼 담백한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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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만에 접고 일본 건너가 안주문화 바꿔

 

다시 그의 젊은 시절 이야기로 돌아가 대사관 조리시험을 어떻게 통과했는지 궁금했다.

“젊어서 겁 없이 덤벼든 게 의외로 잘 먹힌 것 같아요. 시험은 여섯 가지 요리와 식사 한 그릇, 디저트를 만드는 것이었죠. 재료는 마음껏 쓸 수 있었는데 이 때 아니면 언제 해보겠냐 싶어서 비싼 재료를 마구 썼지요. 외할아버지, 아버지도 중국집을 하셨는데 그 피를 물려받은 듯해요. 시험 직전에 일한 사보이호텔 주방에서 선배들에게 혼나면서 배운 것도 큰 도움이 됐죠.”

 

그 곳에서 그는 8년을 일하고 나왔다. 좋은 일자리를 왜 박차고 나왔을까?

“그 때가 1988년이었어요. 사람들이 제게 일본에 가면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했어요. 그 때 일본 경기가 좋았거든요. 당시 기본급 68만원에 여러 수당 합치면 2백만원 정도의 수입이 있었지만 그 얘기가 더 솔깃했어요.”


(1980년대 후반은 일본 경제가 호황의 절정을 달리던 때다. 그 시절 일본은 막대한 엔화 자금력으로 미국의 내로라 하는 초고층빌딩들을 먹어들어가는 등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 미국을 위협할 기세였다. 당시 우리나라도 ‘3저 호황’이라 불리는 사상최대의 호경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가 그의 인생행로를 바꿔놓은 듯하다.)

 

그가 일본에서 첫발을 내디딘 곳은 오사카 닛본바시였다. 닛본바시에 살림집을 장만한 그는 오사카에서 가장 번화하다는 신사이바시의 한 술집에서 일을 시작했다.

 

- 주점에서 무슨 요리를 했는지요?

= 제가 일한 주점에는 안주가 너무 간단한 것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솜씨를 발휘해서 새로운 중국식 안주 요리를 만들었지요. 냉채, 팔보채 같은 것들이죠. 당시 인근 지역 안주 문화를 제가 바꿨습니다. 인기 좀 끌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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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란’ 요리의 담백한 기운은 이 때 일본에서 생활하는 동안 익힌 ‘일본음식’의 영향도 있겠다 싶었다. 4년간 주점에서 일한 뒤 그는 자신의 살림집 건물 1층에 중국집을 열어 독립했다.

 

- 중국집은 성공했나요?   

= 배달 전문으로 했는데 성공적이었어요. 잘 되니깐 건물주인이 집세를 자꾸 올리는 거예요. 때마침 고베지진(1995년)이 난 뒤 건물도 휘청거리더라구요. 그래서 6년만에 접고 한국으로 다시 왔습니다. 딱 10년간 일본에 있었던 셈이죠.

 

서른 살에 일본으로 가 마흔이 돼서 돌아온 그는 서울 강남에 ‘목란’이란 중국집을 차렸다.

 

-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돌아와보니 어떻던가요?

= 그 사이 중국집 맛 문화가 많이 변했더군요. 전통 중국요리보다 퓨전요리가 유행하고 있었어요. 저도 부랴부랴 호텔에서 일하는 후배들을 불러 마요네즈 새우요리, 크림 새우요리 같은 것을 배웠지요. 그 때부터 튀김요리를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건강에 좋은 튀김요리는 어떤 것일까 고민했죠.

 

그러다 4년 전 그는 강남을 떠나 강북으로 왔다. 이번에도 이사짐을 싸게 만든 건 겁 없이 오르는 ‘집세’였다고 한다.

 

박미향 한겨레 맛전문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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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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