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그것’을 뜻하는 이름의 일식 ‘주식회사’

박미향 2008.07.30
조회수 8408 추천수 0

[메뉴토크] 참복 부쯔 사시

 

서른 안팎의 네 청년들 모인 ‘맛 실험 연구소’
한 접시 8세트, 아삭 쫀득 매콤 혀끝 ‘바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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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아름다운 아가씨~~~무엇을 드릴까요?"

 

서울 강남 신사동 일식집 '우랑'의 들머리에 들어선 나에게 젊은 총각들이 외친다. 열 평이 채 안되는 '우랑'이 쩌렁쩌렁 울린다. 최성현(33), 이근수(33), 고영훈(28), 공동휘(27), 김철민(26)이 외침의 주인공들이다. 이 가운데 주방을 책임진 사람은 고씨이지만, 네 사람 모두 조리학을 전공했다. 우랑은 이 네 사람이 함께 출자해 만든 주식회사다.

 

젊다는 것은 참으로 좋다. 이들이 '우랑'의 벽마다 전등마다 젓가락 사이사이 뿌리는 풋풋한 젊음의 향내가 이곳의 맛만큼 진하게 전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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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림표에서 '참복 부쯔 사시'를 콕 집어 주문했다. 일본말로 '찢어놓은 참복 회'라는 뜻이란다. 상 위에 놓인 접시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우선 맨 밑에는 자갈처럼 자잘한 얼음 알갱이가 깔려 있다. 그 위에 노란 알배기배추가 있고, 배추 위에 참복 껍질과 회 1조각씩이 다소곳이 앉아 있다. 그 위를 파릇파릇한 파와 붉은색 소스가 덮고 있다. 야채의 아삭한 맛, 참복의 쫀득한 맛, 소스의 홀딱 깨는 매운 맛이 몇 초 사이로 이어진다. 혓바늘에 차갑고 알싸한 맛이 바르르 돋는다. 한 접시에 이런 구성의 8세트가 담겨 나온다.

 

취사병 출신으로 제대 뒤 대학 중퇴하고 요리학교로

 

요리사 고씨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가볍게 먹을 수 있는 먹을거리로 개발한 음식이라고 전했다.

 

- 소스 맛이 참 독특하네요.

= 유자와 제주에서 직접 가져오는 제주라임을 섞어요. 식초나 화학조미료는 안 써요. 붉은 색은 간무와 고춧가루를 섞어 만든 겁니다.

 

- 맨 밑에 얼음을 까는 이유는요?

= 알배기배추의 시원한 맛과 참복의 쫀득한 맛을 유지하기 위해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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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씨가 요리와 인연을 맺은 건 군대에서다. 취사병으로 해군에 입대한 것도 아닌데 그는 부엌에서 군대생활을 했다. 처음에는 너무 창피하고 싫었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이 만든 먹을거리를 동료 군인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점차 요리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제대 후 그는 학교를 중퇴하고 요리학교에 들어갔다. 요리학교를 마친 뒤 강남일대 일식집에서 일하던 그는 '우랑' 사장 최성현씨를 만나 합류했다.

 

최씨는 고씨와 함께 맛있다고 소문난 집들을 다니면서 메뉴 개발에 나섰다. 일본도 여러 번 다녀왔단다. 대구 그랜드호텔 주방장 출신인 사장 최씨는 "정성과 맛을 듬뿍 담은 대중적인 음식을 파는 집"을 구상해오다 다이닝 바(Dining Bar, 술 한 잔 하면서 저녁식사 하는 곳)에 착안했다.

 

그가 초창기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도미 3킬로그램을 우리 집에 들여놓기가 힘들었습니다. 좋은 도미는 큰 일식집으로 들어가는 편이지요. 처음엔 손님이 없어서 버리기도 많이 버렸어요." 그 고생 때문인지 최씨는 도미요리에 자신이 있다고 한다. 최씨는 "저희 집 도미는 약 4시경 잡아 놓는다"고 귀띔했다. (참고로 생선은 5~8시간 숙성을 시킨 후에 먹는 게 맛있다고 최씨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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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일식집과 연결해 올해 여러 일 벌여요”


- 음식점을 주식회사로 한 이유는?

= 올해 다른 일식 요리집과 연결해서 여러 일을 벌여요. 1호점, 2호점 등이 생겨날 거구요, 그 모든 집은 새로운 실험의 장이 될 겁니다. '우랑'을 같이 만든 식구들은 모두 요리 동네 동생들이에요. 같이 해보자는 뜻에서 모두 지분 참여를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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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어요. 젊으니깐 새로운 것, 꿈 꿔왔던 맛과 집을 만들고 싶습니다. '우랑'은 맛 연구소지요.

 

도미와 참복, 쇠고기 구이('야끼니꾸')가 이 집의 주된 요리다. '야끼니꾸'세트는 호주산 갈비살과 버터야끼, 파무침, 오뎅탕, 날치알 주먹밥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세 사람이 먹기에 충분하다. 3만5천원. 나베를 비롯한 단품 요리들은 1만~2만원대다. 고급 일식집에서 먹을 수 있는 도미머리조림은 2만2천원. 삼치를 초벌구이 하고 난 다음 양파와 마늘을 넣은 마요네즈를 발라서 다시 굽는 '삼치 마요네즈구이'도 이 집의 독특한 메뉴다.

 

파릇파릇한 20대는 물론이고, 스타일을 중시하는 30~40대까지 좋아할 만한 맛과 분위기를 갖추고 있다. '우랑'은 소의 '거시기'를 뜻하는 한자어다. (02)3442-0415
  
 글·사진 박미향 한겨레 맛전문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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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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