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착 감기는 음악 한잔, 라이브로 어때요?

박미향 2008.08.27
조회수 7968 추천수 0
방배동 서래마을 <피노>
 
인기그룹 출신이 주인장…와인은 되레 소품
이서진 김정은 데이트한 곳…이승철도 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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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길을 걷다 음악이 듣고 싶을 때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엠피쓰리도 없고, 거리의 레코드가게도 조용하다면? 
 
두리번거리면서 공중전화를 찾는다. 핸드폰이 발명된 이후 백 만년만큼이나 긴 시간동안 지갑에 내팽겨쳐져 있었던 전화카드를 커내서 전화를 건다. 어디에? 내 핸드폰에.
 
컬러링이 들린다. "길을 지나는 어떤 낯선 이의 모습 속에도/바람을 타고 쓸쓸히 춤추는 저 낙엽 위에도/뺨을 스치는 어느 저녁의 그 공기 속에도/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에 네가 있어/그래/어떤가요." 남성 그룹 넬의 '기억을 걷는 시간'이다. 종종 하는 짓이다. 툭툭 돈 떨어지는 소리만큼이나 내 귀와 가슴은 음악이 주는 감동 때문에 쿵쾅거린다. 그런 이유로 컬러링은 항상 그맘때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을 골라놓는다. 넬의 노래를 안 지는 얼마 안됐지만 들을수록 중독성이 있다. 서태지가 음반제작에 참여해서 더욱 화제가 되었던 뮤지션이다. 
 
홀딱 빠져 일주일에 수십 만~수백 만원씩 먹다 아예 술집 차려
 
89108_2527_2.jpg음악의 중독성은 한번 빠지면 꽤 깊다. 감성을 마구 휘젓는다. 죽을 만큼 슬프게 만들기도 하고 갑자기 여행가방을 챙기게도 한다.
 
방배동 서래마을에 있는 와인집 <피노>는 그 음악의 중독성 때문에 발걸음을 하는 곳이다. 이 집에서 와인은 그저 소품이다. 주인 이두헌(44)씨는 "이곳은 음악이 70%, 와인은 30%다"라고 말한다. 그도 그럴 법한 것이 주인 이씨의 과거 이력을 보면 금세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씨는 십여년 전 청춘들의 가슴에 불을 확 지른 노래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을 부른 80년대 인기그룹 '다섯 손가락'의 멤버이다.
 
음악쟁이가 와인에 빠진 사연이 궁금하다. "일주일에 수십 만원, 수백 만원씩 먹었다. 먹을수록 신기한 것이 모든 와인은 그 맛이 다 다르더라. 그 매력에 홀딱 빠졌다"고 사연을 말한다. 1993년 한국에서 음악활동을 잠시 접고 미국 버클리음악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던 그는 2000년 귀국해서 뮤지컬 등 다양한 음악 활동을 했다.
 
"할아버지가 이북에서 양조장을 하셨다. 그래서인지 술을 좋아하는 편인데 주로 독주를 마셨다. 몸이 축나더라. 술은 여전히 좋고." 그런 이유로 알코올 도수가 독주보다 조금 낮은 와인을 알게 되었단다. 
 
와인을 심각하게 많이(?) 즐기다보니 차라리 와인집을 여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피노>의 와인은 바로 그 주인장의 입맛대로 구성되어 있다.
 
가격은 5만원부터…두 달에 한 번씩 새 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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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와인은 보르도와 부르고뉴, 론 지역을 구분해서 준비되어 있지만 다른 곳은 나라별로 준비되어 있다. 구대륙, 신대륙 와인이 골고루 차림표에 올라 있다. 두 달에 한 번씩 와인 목록은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가격은 5만원부터다. 소비자가격 4만원인 칠레와인 에스쿠호 로호가 6만원이다.
 
하지만 달콤한 와인 한 줄기보다 더 달짝지근한 음악 한 소절이 있다. '연주'가 있는 집들은 어떤 먹을거리집이든 '노래비'를 받는다. 적게는 몇 천원이지만 많게는 몇 만원이 넘기도 한다. 한 잔의 와인을 마시면서 공연비를 내는 것이다. 
 
이곳의 연주프로그램은 주인 이씨가 짠다. 매주 화요일 오후 9시와 10시는 이씨가 연주를 하고 다른 날들은 재즈뮤지션, 클래식 연주자들 등이 노래한다.
 
공연무대 밖 어둑한 곳곳의 테이블을 눈여겨보면 텔레비전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인사들이 종종 눈에 띄기도 한다. 이승철 같은 가수들이나 배우들이다. 한때 이서진과 김정은이 이곳에서 데이트를 해서 유명해지기도 했다.
 
묵직한 풀 바디에 붉다 못해 검은 빛이 도는 와인을 내 앞에 끌어당겨 입술을 적신다. 몇 모금 목젖을 타고 쪼르륵 내장으로 흘러 들어가면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이 비를 맞아 해갈되는 것처럼 기쁘다. 고개가 45도로 기울어지고 오른쪽 손이 턱을 받친다. 몽롱해지는 공기를 따라 저만치 무대 위에서 주인 이씨의 연주소리가 나를 찾아온다. 반갑다. 와인 향에 춤추고 음악 색에 어깨가 들썩인다. 
 
<피노>를 나서는 길에 살짝 비틀거리는 어깨를 곧추세우고 다시 공중전화를 찾는다. "그대 어떤가요, 그대 당신도 나와 같나요." 넬이 집으로 인도한다.
 
글·사진 박미향 <한겨레> 맛전문기자 mh@hani.co.kr
 

 
◈ 주인장이 추천하는 와인
 
Perrin & Fils VACQUEYRAS Les Christin(뻬랭 에 피스 바께이 라스 레 크리스탱) 2006년산 (소비자가 5만2천원, 신동와인, 프랑스):주인 이씨가 좋아하는 이유는 "첫맛은 맑고 그 안에 부케(와인의 발효와 숙성과정에서 생기는 독특한 향)가 뛰어나며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 더 좋아진다. 브로고뉴 와인답지 않게 짙다"는 것이란다. 이 와인은 일반적인 와인들과 달리 산화방지제인 이산화항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유기농와인이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 와인목록

   프랑스 보르도 13가지 5만원~28만원
   보로고뉴와 론 12가지 9만원~12만5천원
   이탈리아 16가지  11만원~15만원
   아메리카 13가지  11만5천원~14만원
   칠레 16가지 8만원~25만원
   오스트리아 8가지 7만5천원~5만원
   스페인 7가지 6만원~18만원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 6가지 55만원 135천원
   스파클링 와인 6만원~ 31만원
   화이트 와인 11가지 5만5천원~8만5천원,
   (부가세별도 금액임)
   
   글·사진 박미향 <한겨레> 맛전문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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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이메일 : mh@hani.co.kr       트위터 : psol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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