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에서 궁중요리까지 숨은듯 만듯

박미향 2008.10.03
조회수 20221 추천수 0

[맛집순례] 가회동 맛집

 

고즈넉한 한옥 풍취 따라 눈맛 먼저 '은은'

최근 서구풍 커피집과 레스토랑까지 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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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면 걷기조차 힘든 삼청동의 화려함 때문에 요즘 서울의 멋쟁이들은 오히려 가회동을 찾는다. 삼청동 옆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가회동은 북촌 한옥마을과 창덕궁을 끼고 있다. 그런 이유로 과거 고관대작과 왕실 종친들이 많이 살았다. 이곳은 한옥이 주는 고즈넉한 풍취와 우리가 잊고 지냈던 '옛날'의 은은한 향기가 있다.

 

주말이면 골목마다 디에스아르 카메라를 든 청년들과 손을 꼭 잡은 연인들이 환한 미소로 거리를 메운다. '가회동 맛집'이라고 하면 행정동인 가회동을 중심으로 법정동인 가회동, 계동, 재동, 화서동까지 아우른다. 노란 은행잎이 뚝뚝 떨어지면 가회동 맛 순례를 나서보자.

 

‘대표 스타’ 맛집 <오 키친>…‘대장금’ 맛 이은 <궁연>

 

Untitled-2 copy.jpg가회동 길을 따라 걷다보면 언뜻 음식점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몇 발자국만 걸어도 첩첩히 겹쳐져 있는 맛집을 만나는 삼청동이나 신사동 가로수길과는 사뭇 다르다. '이곳 사람들은 어디서 먹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기도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가격부터 천차만별인 맛난 곳이 배고픈 뚜벅이들을 유혹한다. 

 

가격이 2천원인 떡볶이집부터 고관대작이나 갈 뻔한 궁중요리집까지 그 색과 향이 여러 가지다. 최근 몇 년 사이 뉴욕풍의 커피집과 우아한 이탈리아 레스토랑까지 가세해서 맛뿐만 아니라 눈도 황홀지경이다.

 

가회동 대표 스타 맛집은 <오 키친>이다. 이미 한국의 미식가들 사이에서 너무 유명한 푸드아티스트 오정미씨와 요리사 스스무 요나구니씨가 자신의 제자들과 만든 집이다. 

 

일본인 요리사 스스무 요나구니씨는 20대 초반에 일본을 떠나 영국, 뉴욕, 이탈리아 등지에서 요리 경력을 쌓은 인물이다. 그가 부린 마술 같은 맛이 이 곳에 있다. (02-744-6420)

 

'한국 대장금'이라고 불렸던 황혜성 선생의 맛을 이은 한정식집도 있다. <궁연>은 황혜성 선생의 큰 딸 한복려 선생이 만든 집이다. '궁궐잔치'란 뜻의 <궁연>은 조선시대 궁궐 음식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점심식사는 3만~3만5천원(4~5가지 요리와 식사)이고 저녁 식사는 5만~13만원(7~8가지 요리와 식사)이다. (02-3673-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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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음식점을 내세우는 <달개비>나 서울전통 종가음식을 하는 탤런트 이정섭씨가 운영하는 <종가>도 이 동네 한정식집의 대표 주자다. 서울 전통 한식은 다른 지역보다 가지 수가 적고 양도 적단다.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리는' 음식이 아니다. 


<쪼아 떡볶이>, 고사리손들 긴 줄…일본라멘집 <북촌>, 우리식 입맛 맞게

 

이렇게 유명하고 거창한 맛집만 있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과 엄마들이 긴 줄을 선 떡볶이 집이 있다. 한 접시 2천원인 <쪼아 떡볶이>는 야채나 달걀, 쫄면 등이 들어가는 여느 떡볶이 집과 다르다. 오직 떡과 떡이 가장 사랑하는 어묵만이 빨간 소스 안에 춤춘다. 붉은 소스에 짓눌려서 떡의 고유한 맛을 잃어버리는 요즘 떡볶이와 달라 좋다. 주인장만의 비법으로 만든 소스가 맛의 비결이다. 그 맛이 '정직'한 아이들의 혀를 사로잡았다.


삼청동에서 솥밥집 <라마마>를 운영했던 재일동포 장정은씨의 <북촌>도 가벼운 마음으로 맛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우리식 입맛에 맞게 바꾼 일본라멘과 돈가스 등이 쫄깃하고 탄력이 있다. 소유라멘(차림표에는 일본 생라면이라고 적혀있다)은 맛난 기름띠가 동글동글 엮여있고 그 사이에 솟아오르는 면은 제대로 숙성되어 탄력과 끈기가 있다. "일본 친구가 면을 만들어서 판매를 하는데 그것을 씁니다. 모 백화점에 지하 식품 코너에 들어갑니다"고 주인 장씨는 말한다. 라멘에 올라간 차슈는 주인 장씨가 직접 양념하고 굽고 찐 것이다. 탱탱한 맛이 아기 볼 같다. "고기 부위가 중요하다며" 자신감 있게 말한다. 대부분의 음식이 1만원을 넘지 않는다. (02-741-0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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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만 해도 신기한 메뉴 <소원>…기다린 값하는 <나뭇꾼과 꼬치>

 

2006년부터 이곳에는 고급스럽고 아기자기한 인테리어로 무장한 맛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주로 고급 음식점에서 하는 '발렛 파킹'(주차대행)이 있는 집도 늘었다. 삼청동 맛집처럼 변할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우려의 소리가 동네 주민들 사이에서 튀어 나온다. 

 

화려한 외모의 <가회헌>은 광화문 사거리의 유명한 레스토랑 <나무와 벽돌>의 주인 윤영주씨가 만든 곳이다. 맛도 그곳과 같다. <나무와 벽돌>이 '빵'으로 시작해서 '파스타, 스테이크'로 그 영역을 확장한 것처럼 이곳 1층에도 빵을 파는 베이커리가 있다. 오후 5시부터 새벽 2시까지는 와인바로 변신한다. 우아한 여인네들이 석양을 등지고 깔깔거리는 소리를 안주 삼아 잔을 부딪친다. (02-747-1592)

 

옆집 <애프터 더 레인>에는 타이 요리가 있고 그 앞집 <투고>에서는 달콤한 와플과 고소한 커피향이 발길을 붙잡는다. 최근 새롭게 단장해서 마치 뉴욕 소호거리 한 모퉁이에 앉아 있는 느낌이다. 우리나라 고유 브랜드 '테라로사'의 커피들이다. (02-720-5001)

 

골목골목 빠짐없이 발품 파는 이라면 옆 골목의 <소원>을 발견할 수 있다. <소원>은 스팸밥과 인절미토스트, 콩가루아이스크림 등 생각만 해도 신기한 음식들이 주인을 기다린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판매하는 수입인테리어 용품들을 구경해도 좋다. 가격은 4,5천원에서 1만원 정도다. (02-722-3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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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회동 거리를 조금 비껴서 가서 화동 정독도서관 앞으로 가면 맞은편에도 맛 골목이 형성되어 있다. 일본에서 흔히 보는 것처럼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나뭇꾼과 꼬치>는 잘 생긴 주인아저씨의 "쓩쓩 휴지를 뽑으시오"라는 노래 소리가 반갑게 맞는 곳이다. 가격은 2천원, 두툼한 닭 꼬치가 익혀 나오면 소스가 발라지고 구어진다. 마지막에 주인이 준비한 작은 떡 조각을 맨 위에 꽂으면 꼬치요리가 완성이다. 5분 넘게 줄을 선 기대감이 맛을 더한다. 도톰한 닭의 살코기 맛이 좋다. 바로 옆집 <천진포자>에서는 중국요리사 왕환원씨와 싱훼이친씨가 작은 부엌에서 만두를 빚는다. 깨끗한 부엌과 오래된 나무 테이블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한다. 해가 떨어진 이 골목에 연인들이 기웃거린다. 이 땅 '식신'들이 오래된 듯 새로운 듯 가회동을 별처럼 떠돈다.

 

글·사진 박미향 <한겨레> 맛전문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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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이메일 : mh@hani.co.kr       트위터 : psol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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