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에서 궁중요리까지 숨은듯 만듯

박미향 2008.10.03
조회수 19562 추천수 0

[맛집순례] 가회동 맛집

 

고즈넉한 한옥 풍취 따라 눈맛 먼저 '은은'

최근 서구풍 커피집과 레스토랑까지 가세

 

 

Untitled-4 copy.jpg


주말이면 걷기조차 힘든 삼청동의 화려함 때문에 요즘 서울의 멋쟁이들은 오히려 가회동을 찾는다. 삼청동 옆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가회동은 북촌 한옥마을과 창덕궁을 끼고 있다. 그런 이유로 과거 고관대작과 왕실 종친들이 많이 살았다. 이곳은 한옥이 주는 고즈넉한 풍취와 우리가 잊고 지냈던 '옛날'의 은은한 향기가 있다.

 

주말이면 골목마다 디에스아르 카메라를 든 청년들과 손을 꼭 잡은 연인들이 환한 미소로 거리를 메운다. '가회동 맛집'이라고 하면 행정동인 가회동을 중심으로 법정동인 가회동, 계동, 재동, 화서동까지 아우른다. 노란 은행잎이 뚝뚝 떨어지면 가회동 맛 순례를 나서보자.

 

‘대표 스타’ 맛집 <오 키친>…‘대장금’ 맛 이은 <궁연>

 

Untitled-2 copy.jpg가회동 길을 따라 걷다보면 언뜻 음식점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몇 발자국만 걸어도 첩첩히 겹쳐져 있는 맛집을 만나는 삼청동이나 신사동 가로수길과는 사뭇 다르다. '이곳 사람들은 어디서 먹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기도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가격부터 천차만별인 맛난 곳이 배고픈 뚜벅이들을 유혹한다. 

 

가격이 2천원인 떡볶이집부터 고관대작이나 갈 뻔한 궁중요리집까지 그 색과 향이 여러 가지다. 최근 몇 년 사이 뉴욕풍의 커피집과 우아한 이탈리아 레스토랑까지 가세해서 맛뿐만 아니라 눈도 황홀지경이다.

 

가회동 대표 스타 맛집은 <오 키친>이다. 이미 한국의 미식가들 사이에서 너무 유명한 푸드아티스트 오정미씨와 요리사 스스무 요나구니씨가 자신의 제자들과 만든 집이다. 

 

일본인 요리사 스스무 요나구니씨는 20대 초반에 일본을 떠나 영국, 뉴욕, 이탈리아 등지에서 요리 경력을 쌓은 인물이다. 그가 부린 마술 같은 맛이 이 곳에 있다. (02-744-6420)

 

'한국 대장금'이라고 불렸던 황혜성 선생의 맛을 이은 한정식집도 있다. <궁연>은 황혜성 선생의 큰 딸 한복려 선생이 만든 집이다. '궁궐잔치'란 뜻의 <궁연>은 조선시대 궁궐 음식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점심식사는 3만~3만5천원(4~5가지 요리와 식사)이고 저녁 식사는 5만~13만원(7~8가지 요리와 식사)이다. (02-3673-1104)

 

Untitled-5 copy.jpg


자연음식점을 내세우는 <달개비>나 서울전통 종가음식을 하는 탤런트 이정섭씨가 운영하는 <종가>도 이 동네 한정식집의 대표 주자다. 서울 전통 한식은 다른 지역보다 가지 수가 적고 양도 적단다.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리는' 음식이 아니다. 


<쪼아 떡볶이>, 고사리손들 긴 줄…일본라멘집 <북촌>, 우리식 입맛 맞게

 

이렇게 유명하고 거창한 맛집만 있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과 엄마들이 긴 줄을 선 떡볶이 집이 있다. 한 접시 2천원인 <쪼아 떡볶이>는 야채나 달걀, 쫄면 등이 들어가는 여느 떡볶이 집과 다르다. 오직 떡과 떡이 가장 사랑하는 어묵만이 빨간 소스 안에 춤춘다. 붉은 소스에 짓눌려서 떡의 고유한 맛을 잃어버리는 요즘 떡볶이와 달라 좋다. 주인장만의 비법으로 만든 소스가 맛의 비결이다. 그 맛이 '정직'한 아이들의 혀를 사로잡았다.


삼청동에서 솥밥집 <라마마>를 운영했던 재일동포 장정은씨의 <북촌>도 가벼운 마음으로 맛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우리식 입맛에 맞게 바꾼 일본라멘과 돈가스 등이 쫄깃하고 탄력이 있다. 소유라멘(차림표에는 일본 생라면이라고 적혀있다)은 맛난 기름띠가 동글동글 엮여있고 그 사이에 솟아오르는 면은 제대로 숙성되어 탄력과 끈기가 있다. "일본 친구가 면을 만들어서 판매를 하는데 그것을 씁니다. 모 백화점에 지하 식품 코너에 들어갑니다"고 주인 장씨는 말한다. 라멘에 올라간 차슈는 주인 장씨가 직접 양념하고 굽고 찐 것이다. 탱탱한 맛이 아기 볼 같다. "고기 부위가 중요하다며" 자신감 있게 말한다. 대부분의 음식이 1만원을 넘지 않는다. (02-741-0270)

Untitled-1 copy.jpg

102821_5611_5.jpg


듣기만 해도 신기한 메뉴 <소원>…기다린 값하는 <나뭇꾼과 꼬치>

 

2006년부터 이곳에는 고급스럽고 아기자기한 인테리어로 무장한 맛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주로 고급 음식점에서 하는 '발렛 파킹'(주차대행)이 있는 집도 늘었다. 삼청동 맛집처럼 변할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우려의 소리가 동네 주민들 사이에서 튀어 나온다. 

 

화려한 외모의 <가회헌>은 광화문 사거리의 유명한 레스토랑 <나무와 벽돌>의 주인 윤영주씨가 만든 곳이다. 맛도 그곳과 같다. <나무와 벽돌>이 '빵'으로 시작해서 '파스타, 스테이크'로 그 영역을 확장한 것처럼 이곳 1층에도 빵을 파는 베이커리가 있다. 오후 5시부터 새벽 2시까지는 와인바로 변신한다. 우아한 여인네들이 석양을 등지고 깔깔거리는 소리를 안주 삼아 잔을 부딪친다. (02-747-1592)

 

옆집 <애프터 더 레인>에는 타이 요리가 있고 그 앞집 <투고>에서는 달콤한 와플과 고소한 커피향이 발길을 붙잡는다. 최근 새롭게 단장해서 마치 뉴욕 소호거리 한 모퉁이에 앉아 있는 느낌이다. 우리나라 고유 브랜드 '테라로사'의 커피들이다. (02-720-5001)

 

골목골목 빠짐없이 발품 파는 이라면 옆 골목의 <소원>을 발견할 수 있다. <소원>은 스팸밥과 인절미토스트, 콩가루아이스크림 등 생각만 해도 신기한 음식들이 주인을 기다린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판매하는 수입인테리어 용품들을 구경해도 좋다. 가격은 4,5천원에서 1만원 정도다. (02-722-3252)

 

박미향-가회동아가씨-1-네이 copy.jpg


가회동 거리를 조금 비껴서 가서 화동 정독도서관 앞으로 가면 맞은편에도 맛 골목이 형성되어 있다. 일본에서 흔히 보는 것처럼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나뭇꾼과 꼬치>는 잘 생긴 주인아저씨의 "쓩쓩 휴지를 뽑으시오"라는 노래 소리가 반갑게 맞는 곳이다. 가격은 2천원, 두툼한 닭 꼬치가 익혀 나오면 소스가 발라지고 구어진다. 마지막에 주인이 준비한 작은 떡 조각을 맨 위에 꽂으면 꼬치요리가 완성이다. 5분 넘게 줄을 선 기대감이 맛을 더한다. 도톰한 닭의 살코기 맛이 좋다. 바로 옆집 <천진포자>에서는 중국요리사 왕환원씨와 싱훼이친씨가 작은 부엌에서 만두를 빚는다. 깨끗한 부엌과 오래된 나무 테이블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한다. 해가 떨어진 이 골목에 연인들이 기웃거린다. 이 땅 '식신'들이 오래된 듯 새로운 듯 가회동을 별처럼 떠돈다.

 

글·사진 박미향 <한겨레> 맛전문기자 mh@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첨부
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이메일 : mh@hani.co.kr       트위터 : psolsol      

최신글

엮인글 :
http://kkini.hani.co.kr/5432/c1d/trackback
List of Articles

은은한 그대 눈동자 불빛 삼아 맛있는 사랑을

  • 박미향
  • | 2008.12.19

송년회에 딱! ③ 아담하고 등 낮아 서로의 얼굴만 가슴에 ‘쏙’ 시간은 멈추고 소리마저 숨죽여 ‘곁’을 시샘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여자 친구와 함께 발레 ‘호두까기인형’을 본다는 후배가 있었다. 매년 같은 내용의 발레가 무대에 올랐지만 그의 곁은 언제나 다른 여인네들로 채워졌다. 그가 바람둥이냐고?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그는 순정남이다. 적은 월급에도 ...

껍질-빵-과일·아이스크림 궁합 ‘사각사각’

  • 박미향
  • | 2008.10.20

[맛집순례] 와플집 &lt;상&gt; 강북 벨기에가 원조, 한국 어묵같은 ‘거리의 주전부리’ 데이트족·여성 단골…커피와 함께 ‘수다’향 진동 가회동에 있는 와플집인 &lt;장명숙 갤러리 카페&gt; 바삭바삭한 껍질을 씹어 먹고 나면 그 안에 포근한 빵들이 내 안에 들어오고 토핑재료로 과일이나 아이스크림이 등장하면 그 궁합을 따져보는 큰 재미가 있는 요리. 와플(...

떡볶이에서 궁중요리까지 숨은듯 만듯

  • 박미향
  • | 2008.10.03

[맛집순례] 가회동 맛집 고즈넉한 한옥 풍취 따라 눈맛 먼저 '은은' 최근 서구풍 커피집과 레스토랑까지 가세 주말이면 걷기조차 힘든 삼청동의 화려함 때문에 요즘 서울의 멋쟁이들은 오히려 가회동을 찾는다. 삼청동 옆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가회동은 북촌 한옥마을과 창덕궁을 끼고 있다. 그런 이유로 과거 고관대작과 왕실 종친들이 많이 살았다. 이곳은 한옥이 주는 ...

‘밑이 구려’ 미꾸리, 몸보신 ‘가을의 전설’

  • 박미향
  • | 2008.09.12

[맛집순례] 추어탕집 ‘겨울잠’ 자기 전 도톰한 살, 고단백 덩어리 뽀글뽀글 방귀대장, 알고 보면 창자호흡 탓 이 세상에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과 때를 가리지 않고 뿜어 나오는 방귀는 사람들 눈을 속일 수 없다고 한다. 그 중에서 방귀는 중요한 만남의 자리를 웃음꽃 피는 즐거운 곳으로 만들기도 하고 찬바람 부는 시베리아 벌판으로도 만든다. 기대를 담뿍 안은...

울릉도 가면 꼭 맛봐야할 건 회? 나물!

  • 박미향
  • | 2008.09.05

[맛집순례] 울릉도 맛집 쇠고기맛 나는 삼나물, 그보다 더 비싼 참고비 바다바람 덕에 천연 무공해…약소는 예약필수   배가 포구에 들어서자마자 짠내가 코털을 건드린다. 동해바다 봉긋 솟은 섬, 울릉도. 온갖 팔딱팔딱 뛰는 생선들이 섬을 찾은 이들의 혀를 유혹할 것 같지만 이 섬에 최고로 맛난 것은 나물이다. 육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나물들이 지천에 널려있다. "울...

추억의 유혹, 빙수도 ‘요리’다

  • 박미향
  • | 2008.08.06

[맛집순례] 빙수집 제과기능장 운영 빙과점의 3색 맛 ‘얼얼’ 초콜릿‘명장’ 손맛 초코빙수 달콤쌉싸름 "팥 넣고 푹 끓인다/설탕은 은근한 불 서서히 졸인다 졸인다/빙수용 위생 얼음 냉동실 안에 꽁꽁 단단히 얼린다 얼린다/빙수야 팥빙수야 사랑해 사랑해." 가수 윤종신의&lt;팥빙수&gt; 노랫말 가운데 일부다. 노래를 들을 때마다 경쾌한 리듬이 입 안으로 쏙 들어오고...

일본 맛 여행 요것만은 알고 가자

  • 박미향
  • | 2008.07.30

[맛집 순례] 관광청 가이드북·미식가 블로그·맛 지도는 필수 그냥 갔다면 ‘식당 만유인력 법칙’인 ‘줄’을 보라 맛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보는 것'보다 '먹는 것'을 위해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맛집 여행객들이다. 특히 미식의 천국, 일본으로 향하는 이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일본은 구루메(미식가) 블로그만 해도 수만 개에 이른다. 최근 &lt;일본에 ...

간단하나 간단찮은 ‘맛의 단편소설집’

  • 박미향
  • | 2008.07.30

[맛집순례] 신사동 가로수길 샌드위치집들 끼니 거르고 카드놀이 빠진 백작 위한 음식 ‘대충 떼우는’걸로 생각하면 만만찮은 오산 &lt;찰리와 초콜릿 공장&gt;의 작가 로알드 달의 책 &lt;맛&gt;의 겉장을 열면 11개의 재미난 이야기들이 있다. 섬세한 와인의 맛을 이용해 사욕을 취하려는 파렴치한에 관한 이야기나 바람난 빅스빅 부인의 털외투에 관한 얘기 등 ...

라면vs라멘, 후딱 후루룩 쩝!?

  • 박미향
  • | 2008.07.30

[맛집순례] 서울의 일본 라멘집들 한국은 '떼우기'지만 일본은 국가대표 요리 ‘일본맛’ 그대로 속속 서울 상륙…체인점도 한 선배가 밥상 앞에서 흰소리를 한다. 인간의 본능 중에 성욕과 식욕은 닮은 구석이 많아서, 이불 속에서 사랑을 나누는 시간은 식사를 즐기는 시간과 비례한다고. 그 선배는 천천히 숟가락을 뜨면서 이미 후딱 밥공기를 비워버린 옆자리 동료에게 ...

강변 포장마차, 댄스홀 춤 선생 같은 첫맛

  • 박미향
  • | 2008.07.30

[맛집순례] 후쿠오카 두 명물 술 안 팔아 흔들리는 건 등뿐…없으면 꼬치구이집 번화가엔 새콤달콤 수채화같은 초밥, 녹차와 궁합 일상의 파편을 봇짐에 싸서 낯선 여행지로 향할 때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장쾌한 풍경, 아기자기한 장식품, 일탈적인 사랑…. 아마도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색다른 맛에 대한 기대는 비슷하리라. 맛은 그 땅의 역사와 여행지의 이야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