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칼 버리고 식칼로 ‘맛있는 행복’ 요리

박미향 2008.11.18
조회수 11791 추천수 0
요리사 노종헌씨
큰 병원 후계자이자 명문대 의대생이 빠진 ‘마술’
손님 먹고난 빈 접시엔 기쁨 두배 얹어서 돌아와
 
6000123034_20081111.JPG요리사 노종헌(40)씨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나파밸리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공상의 날개를 편다. ‘그 골목에는 프랑스 레스토랑이 적당하겠어. 요리는 4가지를 할까, 아니야, 10가지는 넘어야겠지.’ 자신이 운영할 레스토랑 서너 채를 짓고 허물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다. 긴 장거리 여행 중에 그가 늘 하는 ‘놀이’다. 그에게 요리는 단순한 직업이 아니다. 행복한 삶의 길을 가리켜준 이정표다.
 
행복한 미소 보고 부모님도 비로소 ‘반란’ 인정
 
그는 원래 의사가 되기로 약속돼 있었다. 큰 병원의 후계자인데다 명문대 의대생이었던 그가 하얀 가운을 입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에게 의사는 “좋지도, 재미있지도 않은” 직업이었지만 부모가 모두 의사인 집안에서 그가 할 일은 애시당초 그것 말고는 없었다.
 
미리 정해진 대로 그는 의대를 졸업한 뒤 미국 유학길을 떠났다. 병원 운영방법을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는 “내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만난 미국 친구들은 그에게 “자신의 인생을 왜 다른 이를 위해 살려고 하느냐”고 질책했다.
 
그러던 중 “학비만이라도 한번 벌어보자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한 일본 음식점 아르바이트가 그에게 새로운 인생의 길을 열어준 계기가 됐다. 그곳에서 일하면서 그는 음식 하나로 손님들을 행복에 빠뜨리는 마술 같은 광경에 쏙 빠져버렸다. “난생 처음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때가 그의 나이 29살. 20대의 삶을 온통 바친 의학을 미련없이 버리고, 그는 미국 요리학교 씨아이에이(C.I.A.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로 차를 몰았다.
 
크고 넓은 서양식 주방은 170센티미터의 키와 작은 손을 가진 동양인에게 만만한 일터는 아니었다. 더구나 “동료들은 이미 요리의 기초를 닦은 이들”이어서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2년 동안 단 하루도 6시에 시작하는 수업을 늦은 적이 없었다.
 
그의 반란은 당연히 부모의 극심한 반대 벽에 부닥쳤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 처음으로 번진 행복한 미소는 결국 부모의 성난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버지를 제 차에 모시고 숙소로 가는데 차 안에서 음식 냄새가 났나 봐요. 아버지는 냄새가 역해 괴로우셨는데, 그때 제 얼굴을 보니 웃음이 가득하더랍니다.”
 
1년만에 수석조리장…노종헌표 삼겹살찜 인기 만점
 
졸업장을 들고 한국에 돌아온 그는 워커힐호텔 주방에서 일을 시작했다. 자신이 좋아서 택한 일이니만큼 일에 푹 빠져 살았다. 1년 뒤엔 수석조리장으로 승진까지 했다. 지금 그의 명함은 `포도플라자 와인바 뱅가‘ 수석요리사 겸 요리학교 `츠지원아카데미’ 디렉터다.
 
 그가 개발한 삼겹살찜은 손님들에게 아주 인기 있는 요리 가운데 하나다. 장조림처럼 만든 이 요리는 삼겹살 특유의 부드러운 지방과 쫄깃한 맛으로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하루에 열 그릇 이상 팔리니, 하루에 최소한 열명 이상에게 행복감을 전해주는 셈이다. 
 
“접시에 나있는 숟가락 흔적만 봐도 사람들이 요리를 어떻게 먹었는지 알 수 있어요. 빈 접시가 돌아왔을 땐 정말 기쁩니다. 사람들에게 맛으로 행복감을 선사했다는 뿌듯함이 남아요.”
 
그는 병든 몸을 고쳐주는 의사 대신 행복감을 맛보게 해주는 요리사가 된 것에 스스로 만족해한다. 최근에는 ’삼겹살찜’에 ’리조또’를 붙여 새로운 요리를 만들었다. 삼겹살과 안남미로 만든 리조또가 합쳐져 전혀 새로운 맛을 만들어낸다. 부드러움 속에 탱탱한 삶의 기쁨이 숨어 있다.
 
서른 살 이전에 그는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즐거움과 만족감을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지금의 요리사 길을 선택한 뒤 그는 매일매일을 감사하면서 사는 ‘자신’을 찾았다. 노종헌표 요리에는 화려한 명성이나 기득권을 버리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만들어냄으로써 삶의 행복을 찾은 이가 빚어내는 당당하고도 겸손한 맛이 있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 news BOX st. ##### -->
노종헌 요리사의 색다른 레시피 ‘삼겹살찜’과 ‘리소또’
 
 

6000123040_20081111fdd.jpg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삼겹살이 이탈리아 쌀 요리 리조또와 만났다. 리조또는 우리네 죽을 닮았지만 맛은 볶음밥처럼 쫀득하다. 두 나라의 먹을거리를 합쳐 색다른 맛을 만들어낸 요리사 노종헌씨의 인기메뉴 ‘삼겹살찜과 리조또’를 집에서 해먹어보자.
   
 삼겹살찜

재료: 삼겹살 반근, 고추, 파, 마늘 적당량, 간장 육수
 
1) 돼지고기 삼겹살을 가로 세로 15cm 크기로 썬다.
2) 팬에 노릇하게 굽는다.
3) 고추, 파, 마늘을 볶은 후 육수와 간장을 넣는다.
4) 구운 삼겹살을 준비한 간장 육수에 넣어 약 4시간 동안 끓여낸다. 

리조또
재료:자스민 쌀(혹은 일반 쌀) 반컵, 다시물 200~250㏄, 샬럿(Shallot)이나 양파 다진 것 1큰술 , 마늘 다진 것 1/2작은술, 버터 1작은술, 팔마산 치즈(Parmasan cheese )  약간, 파슬리 다진 것(Parsley chop) 약간, 소금 약간, 고추냉이 약간(튜브용)
 
다시물 만드는 법:물에 다시마를 넣고 10분 정도 끓이다가 끓어오를 때 다시마를 뺀다. 물이 끓으면 온도를 낮추고 거기에 가츠오부시를 넣고 끓이다 가츠오부시가 가라앉으면 고운 체에 물을 걸러낸다.

1) 두꺼운 팬에 버터를 넣고 버터가 녹을 때쯤 샬럿(양파)을 넣고 3분간 볶는다.
2) 마늘을 넣고 향이 날 때까지 2분간 더 볶는다.
3) 쌀을 넣고 마늘이나 샬럿(양파)이 타지 않게 3~5분간 볶는다.
4) 다시물 중 1/2을 넣고 끓이면서 가끔씩 저어준다.
5) 다시물이 거의 없어지면 나머지 다시물 1/2을 넣어준 후 끓인다.
6) 약간의 버터 치즈, 파슬리, 고추냉이로 마무리한다.
 
 리조또 위에 삼겹살찜을 얹는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요리 노종헌
 

##### news BOX fin. ##### -->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첨부
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이메일 : mh@hani.co.kr       트위터 : psolsol      

최신글

엮인글 :
http://kkini.hani.co.kr/5457/c92/trackback
List of Articles

사랑은 타이밍, 와인도 타이밍

  • 박미향
  • | 2009.02.12

로보(LOVO) 취향따라 와인·칵테일 맛볼 수 있어 젊은층에 ‘딱’ ‘듣는 즐거움’ 선사할 뮤지션의 라이브 공연 예정 사랑은 영원한 인생사 주제다. 세계적인 화가나 소설가, 음악가 등 창조의 세계에서 발을 딛고 있는 그 누구라도 사랑은 자신의 시간 속에서 놓칠 수 없는 훌륭한 재료다. 그 독특한 재료를 사용해서 지구에 없는 것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눈물과 감동을 선사...

내 첫사랑은 어떤 맛이었나

  • 박미향
  • | 2009.02.05

[식욕과 성욕사이] 인간과 닮은 와인 와인 한 병을 후딱 해치우고 버스에 오른 어느날, 진풍경을 만났다. 뒷자리에서 뼈 없는 연체동물처럼 흔들흔들 거릴 때 무심코 버스 안을 둘러보았는데 온통 와인들이었다. 엇! 의자에 사람대신 와인이 앉아 있네! 어라~ 내가 우주인에게 납치라도 되었나! 밖을 내다보니 샤르도네, 까베르네 쇼비뇽, 산지오베제(포도품종) 등 각종 포도주들이...

쿵더쿵 덩더쿵 그 소리의 뜻은?

  • 박미향
  • | 2009.01.22

삶이 희로애락과 함께하는 떡 솔직히 ‘떡’이라는 말에 성적인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은 불과 몇년 전이었다. 한 술자리에서였다. 폭탄주가 몇 바퀴 돌고 술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낯빛이 울긋불긋해졌을 때 한 사람이 툭 던지듯 말했다. “자 다들 가장 기억에 남는 X친 이야기 좀 해봐.” ‘엥? 떡 만들어본 경험을 이야기하라고?’ 내가 “먹는 떡 말이야?” 하...

프랑스 유학길 와인과 요리에 푹~

  • 박미향
  • | 2008.12.31

취미가 직업이 된 이상황·배혜정씨 부부 대학강의 접고 ‘와인바’로 전업…한국·프랑스 가정식 요리 접목도 “타닌(떫은 맛)이 강하고 진한 색깔의 레드와인을 찾는군. 알코올 도수도 높은 것을 좋아하네? 그렇다면 우아함과는 좀 거리가 멀고 실천력이 강한 사람일 거야. 그와 비즈니스할 때는 결론을 빨리 내주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와인전문가 이상황(50)씨는 마시는 포도주만...

파트너 입맛 맞춰 정 버무려 ‘비즈니스 김장’

  • 박미향
  • | 2008.12.10

송년회에 딱! ② 마음까지 녹여 파트너십 ‘쫀득쫀득’하게 제과회사의 한 해 초콜릿 농사는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판매량에 달려 있다고 한다. 비즈니스계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법칙 가운데 ‘파레토 법칙’(Pareto‘s law)이라는 게 있다. 흔히 ‘2:8 법칙’이라고 불린다. 한 기업의 매출 80%를 20% VIP고객이 올린다는 비즈니스 이론이다. 그런가 하면 롱테일법칙이란 것...

수술칼 버리고 식칼로 ‘맛있는 행복’ 요리

  • 박미향
  • | 2008.11.18

요리사 노종헌씨 큰 병원 후계자이자 명문대 의대생이 빠진 ‘마술’ 손님 먹고난 빈 접시엔 기쁨 두배 얹어서 돌아와 요리사 노종헌(40)씨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나파밸리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공상의 날개를 편다. ‘그 골목에는 프랑스 레스토랑이 적당하겠어. 요리는 4가지를 할까, 아니야, 10가지는 넘어야겠지.’ 자신이 운영할 레스토랑 서너 채를 짓고 허물다 보면 어느새...

음표 대신 콩나물 선택, ‘뻔’한 음식 ‘펀’하게

  • 박미향
  • | 2008.09.26

[메뉴토크] 민스키친 콩나물 냉채·오겹살 보쌈 등 ‘변주’ 독특 장보기 따라 차림표 날마다 조금씩 달라 극작가 이만희씨는 연극 &lt;불 좀 꺼주세요&gt;로 유명해지기 전에 한 고등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쳤다. 1980년대 그 시절의 고등학교는 (지금도 그렇겠지만) '조는 놈', '장난치는 놈', 심지어 '빨간 책 보는 놈', '도시락 까먹는 놈'까지 여러 종류의 학생들이...

영화처럼 사랑을 마셨고 가게를 낳았다

  • 박미향
  • | 2008.09.22

사이드웨이 고독 중독에 빠졌던 프 방랑객 ‘연정 중독’ 프랑스 와인 중 국내 낯선 개성 강한 것들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가고 싶을 때가 있다. 세상살이 소소한 것들에 연연하지 않고 봇짐 하나 달랑 메고 외롭고 쓸쓸한 검객이 되어 발가락 사이로 모래바람 팍팍 묻히면서 떠돌고 싶을 때가 있다. <신용문객잔>(중국 무협영화)의 무림고수가 한없이 부럽고 <셰인>(서부영...

착착 감기는 음악 한잔, 라이브로 어때요?

  • 박미향
  • | 2008.08.27

방배동 서래마을 <피노> 인기그룹 출신이 주인장…와인은 되레 소품 이서진 김정은 데이트한 곳…이승철도 들러 문득 길을 걷다 음악이 듣고 싶을 때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엠피쓰리도 없고, 거리의 레코드가게도 조용하다면? 두리번거리면서 공중전화를 찾는다. 핸드폰이 발명된 이후 백 만년만큼이나 긴 시간동안 지갑에 내팽겨쳐져 있었던 전화카드를 커내서 전화를 건다. 어...

찌고 볶고 삶은 것과 날것 다 섞인 ‘미지의 동굴’

  • 박미향
  • | 2008.07.30

[메뉴토크] ‘새우 앤 고기 부리또’ 군대에서 그토록 간절했던 음식 “그래 이거야!” 디자인 전공자 답게 ‘디지털 유목민’ 인테리어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노랑머리 외국인이 들어선다. 바에 앉아 커다란 부리토를 주문한다. 20대 처자들이 조잘조잘 자신이 다녀온 여행지에 대해 수다를 떤다. 서초동 맥시코 캐주얼 음식점 '도스 타코스'는 낯선 곳에서 온 이들과 어디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