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직업이 된 이상황·배혜정씨 부부
대학강의 접고 ‘와인바’로 전업…한국·프랑스 가정식 요리 접목도

“타닌(떫은 맛)이 강하고 진한 색깔의 레드와인을 찾는군. 알코올 도수도 높은 것을 좋아하네? 그렇다면 우아함과는 좀 거리가 멀고 실천력이 강한 사람일 거야. 그와 비즈니스할 때는 결론을 빨리 내주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와인전문가 이상황(50)씨는 마시는 포도주만 보고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챈다. 마치 ‘당신이 어제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주면 당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는 말처럼.
안경 너머에 눈매가 날카로운 이씨는 원래 포도주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대기업에 다녔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러다 1984년 파리 출장에서 와인을 처음으로 접했다. 파리에서 우연히 프랑스 와인을 처음 마셨는데 “아, 이게 진짜 레드와인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단다. 그때부터 시작된 그의 와인사랑은 5년 동안 국외 근무를 하는 동안 더욱 깊어졌다. 세계 여러 나라의 와인을 경험할 기회가 자연스럽게 생겼다. 그러면서 그의 혀는 점차 붉은포도주에 민감해졌다.
그러다 직장인들이라면 한 번은 꿈꿔보는 일-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것-을 저지르고 말았다. 5년 모은 돈으로 유학길에 나섰다.
“애초엔 전공인 건축을 공부하러 떠났죠. 그러나 그곳에서 만난 것은 건축만이 아니었습니다.” 7년간 프랑스 그레노블 건축학교를 다니면서 그의 몸속에 새롭게 주입된 디엔에이(DNA)는 와인이었다. 와인의 종주국인 프랑스 파리에는 싸고 맛있는 와인들이 널려 있었다. “유학생 신분이라서 비싼 것은 마실 수가 없었지만 정말 다양한 와인들을 경험했습니다.” ‘마시는 취미’의 수준이 점점 깊어갔다. “와인의 모든 것이 매력적이었습니다. 긴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탐구적인 면이 있는데다, 과학적인 근거도 알아야 했죠. 사람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당시 그의 곁에는 갓 결혼한 부인 배혜정(47)씨가 있었다. 미술사를 전공한 배씨는 파리에서 서양미술사 석사 논문을 마치기로 결심한 터였다. 하지만 배씨도 남편처럼 자신만의 즐거운 취미에 푹 빠져들었다. 동네 프랑스 아줌마가 알려주는 향긋한 프랑스 요리의 세계다. “프랑스 사람들은 점심도 집에 와서 먹을 때가 많습니다. 큰아이 친구들의 엄마들과 친구가 되면서 요리에 눈을 떴어요.”
배씨는 동네 아줌마들의 요리법을 베껴서 만들어 먹고, 요리책으로 독학을 시작했다. 지역 요리학교에도 다녔다. “타르트를 가르쳐준 콜린나나 멧돼지 요리를 알려준 오딜을 잊을 수가 없어요.” 외국생활을 많이 한 부친을 따라 어릴 적부터 다양한 세상 음식들을 먹어본 탓에 입맛이 남달랐던 배씨는 당시 배운 프랑스 가정식 요리와 한국식 음식을 결합시켰다. “프랑스 사람들은 디저트에 설탕을 많이 넣어요. 우리 입맛에는 너무 달더라고요. 제가 만든 디저트는 설탕을 조금밖에 넣지 않습니다.”
1998년 한국에 돌아온 이들 부부에게 건축학과 교수자리와 미술사 강의는 이제 매력적이지 않았다. 대신 이씨는 우리나라 최초의 와인동호회 ‘비나모르’의 2대 시솝을 맡으면서 와인 관련 행사에 들이는 시간이 많아졌다. “와인 전문가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인생에서 와인이 차지하는 영역이 넓어지지 시작했습니다.” 건축설계 회사를 차렸지만 그는 집 짓는 일만으로 바쁘지 않았다. 그의 성격도 달라졌다. 큰 도화지에 조용히 건물을 짓던 그가 사람들을 만나 활발하게 이야기하는 외향적인 사람으로 변했다. 배씨는 프랑스에서 배운 요리들을 동네 아줌마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2004년 10월 이들 부부는 결단을 내렸다. 자신들만의 와인바 ‘베레종’을 연 것. 이씨는 건축회사 일은 물론 대학 강의마저 접었다. 부인 배씨는 처음엔 “취미는 그저 취미일 뿐”이라며 전업을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새로운 일에 행복해하는 남편을 보고는 곧 마음을 접었다.
“와인에 대한 막연한 지향점은 있었지만 어떤 ‘순간’이 오자 거짓 없이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제가 인생을 사는 데 바람직한 모습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고, 순간순간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ailto:mh@hani.co.kr
##### news BOX st. ##### -->
##### news BOX fin. ##### -->
대학강의 접고 ‘와인바’로 전업…한국·프랑스 가정식 요리 접목도

“타닌(떫은 맛)이 강하고 진한 색깔의 레드와인을 찾는군. 알코올 도수도 높은 것을 좋아하네? 그렇다면 우아함과는 좀 거리가 멀고 실천력이 강한 사람일 거야. 그와 비즈니스할 때는 결론을 빨리 내주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와인전문가 이상황(50)씨는 마시는 포도주만 보고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챈다. 마치 ‘당신이 어제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주면 당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는 말처럼.
안경 너머에 눈매가 날카로운 이씨는 원래 포도주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대기업에 다녔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러다 1984년 파리 출장에서 와인을 처음으로 접했다. 파리에서 우연히 프랑스 와인을 처음 마셨는데 “아, 이게 진짜 레드와인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단다. 그때부터 시작된 그의 와인사랑은 5년 동안 국외 근무를 하는 동안 더욱 깊어졌다. 세계 여러 나라의 와인을 경험할 기회가 자연스럽게 생겼다. 그러면서 그의 혀는 점차 붉은포도주에 민감해졌다.
그러다 직장인들이라면 한 번은 꿈꿔보는 일-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것-을 저지르고 말았다. 5년 모은 돈으로 유학길에 나섰다.
“애초엔 전공인 건축을 공부하러 떠났죠. 그러나 그곳에서 만난 것은 건축만이 아니었습니다.” 7년간 프랑스 그레노블 건축학교를 다니면서 그의 몸속에 새롭게 주입된 디엔에이(DNA)는 와인이었다. 와인의 종주국인 프랑스 파리에는 싸고 맛있는 와인들이 널려 있었다. “유학생 신분이라서 비싼 것은 마실 수가 없었지만 정말 다양한 와인들을 경험했습니다.” ‘마시는 취미’의 수준이 점점 깊어갔다. “와인의 모든 것이 매력적이었습니다. 긴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탐구적인 면이 있는데다, 과학적인 근거도 알아야 했죠. 사람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당시 그의 곁에는 갓 결혼한 부인 배혜정(47)씨가 있었다. 미술사를 전공한 배씨는 파리에서 서양미술사 석사 논문을 마치기로 결심한 터였다. 하지만 배씨도 남편처럼 자신만의 즐거운 취미에 푹 빠져들었다. 동네 프랑스 아줌마가 알려주는 향긋한 프랑스 요리의 세계다. “프랑스 사람들은 점심도 집에 와서 먹을 때가 많습니다. 큰아이 친구들의 엄마들과 친구가 되면서 요리에 눈을 떴어요.”
배씨는 동네 아줌마들의 요리법을 베껴서 만들어 먹고, 요리책으로 독학을 시작했다. 지역 요리학교에도 다녔다. “타르트를 가르쳐준 콜린나나 멧돼지 요리를 알려준 오딜을 잊을 수가 없어요.” 외국생활을 많이 한 부친을 따라 어릴 적부터 다양한 세상 음식들을 먹어본 탓에 입맛이 남달랐던 배씨는 당시 배운 프랑스 가정식 요리와 한국식 음식을 결합시켰다. “프랑스 사람들은 디저트에 설탕을 많이 넣어요. 우리 입맛에는 너무 달더라고요. 제가 만든 디저트는 설탕을 조금밖에 넣지 않습니다.”
1998년 한국에 돌아온 이들 부부에게 건축학과 교수자리와 미술사 강의는 이제 매력적이지 않았다. 대신 이씨는 우리나라 최초의 와인동호회 ‘비나모르’의 2대 시솝을 맡으면서 와인 관련 행사에 들이는 시간이 많아졌다. “와인 전문가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인생에서 와인이 차지하는 영역이 넓어지지 시작했습니다.” 건축설계 회사를 차렸지만 그는 집 짓는 일만으로 바쁘지 않았다. 그의 성격도 달라졌다. 큰 도화지에 조용히 건물을 짓던 그가 사람들을 만나 활발하게 이야기하는 외향적인 사람으로 변했다. 배씨는 프랑스에서 배운 요리들을 동네 아줌마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2004년 10월 이들 부부는 결단을 내렸다. 자신들만의 와인바 ‘베레종’을 연 것. 이씨는 건축회사 일은 물론 대학 강의마저 접었다. 부인 배씨는 처음엔 “취미는 그저 취미일 뿐”이라며 전업을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새로운 일에 행복해하는 남편을 보고는 곧 마음을 접었다.
“와인에 대한 막연한 지향점은 있었지만 어떤 ‘순간’이 오자 거짓 없이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제가 인생을 사는 데 바람직한 모습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고, 순간순간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ailto:mh@hani.co.kr
##### news BOX st.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