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유학길 와인과 요리에 푹~

박미향 2008.12.31
조회수 10606 추천수 0
취미가 직업이 된 이상황·배혜정씨 부부
대학강의 접고 ‘와인바’로 전업…한국·프랑스 가정식 요리 접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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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닌(떫은 맛)이 강하고 진한 색깔의 레드와인을 찾는군. 알코올 도수도 높은 것을 좋아하네? 그렇다면 우아함과는 좀 거리가 멀고 실천력이 강한 사람일 거야. 그와 비즈니스할 때는 결론을 빨리 내주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와인전문가 이상황(50)씨는 마시는 포도주만 보고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챈다. 마치 ‘당신이 어제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주면 당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는 말처럼.
 
안경 너머에 눈매가 날카로운 이씨는 원래 포도주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대기업에 다녔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러다 1984년 파리 출장에서 와인을 처음으로 접했다. 파리에서 우연히 프랑스 와인을 처음 마셨는데 “아, 이게 진짜 레드와인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단다. 그때부터 시작된 그의 와인사랑은 5년 동안 국외 근무를 하는 동안 더욱 깊어졌다. 세계 여러 나라의 와인을 경험할 기회가 자연스럽게 생겼다. 그러면서 그의 혀는 점차 붉은포도주에 민감해졌다.
 
그러다 직장인들이라면 한 번은 꿈꿔보는 일-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것-을 저지르고 말았다. 5년 모은 돈으로 유학길에 나섰다.
 
“애초엔 전공인 건축을 공부하러 떠났죠. 그러나 그곳에서 만난 것은 건축만이 아니었습니다.” 7년간 프랑스 그레노블 건축학교를 다니면서 그의 몸속에 새롭게 주입된 디엔에이(DNA)는 와인이었다. 와인의 종주국인 프랑스 파리에는 싸고 맛있는 와인들이 널려 있었다. “유학생 신분이라서 비싼 것은 마실 수가 없었지만 정말 다양한 와인들을 경험했습니다.” ‘마시는 취미’의 수준이 점점 깊어갔다. “와인의 모든 것이 매력적이었습니다. 긴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탐구적인 면이 있는데다, 과학적인 근거도 알아야 했죠. 사람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당시 그의 곁에는 갓 결혼한 부인 배혜정(47)씨가 있었다. 미술사를 전공한 배씨는 파리에서 서양미술사 석사 논문을 마치기로 결심한 터였다. 하지만 배씨도 남편처럼 자신만의 즐거운 취미에 푹 빠져들었다. 동네 프랑스 아줌마가 알려주는 향긋한 프랑스 요리의 세계다. “프랑스 사람들은 점심도 집에 와서 먹을 때가 많습니다.  큰아이 친구들의 엄마들과 친구가 되면서 요리에 눈을 떴어요.”
 
배씨는 동네 아줌마들의 요리법을 베껴서 만들어 먹고, 요리책으로 독학을 시작했다. 지역 요리학교에도 다녔다. “타르트를 가르쳐준 콜린나나 멧돼지 요리를 알려준 오딜을 잊을 수가 없어요.” 외국생활을 많이 한 부친을 따라 어릴 적부터 다양한 세상 음식들을 먹어본 탓에 입맛이 남달랐던 배씨는 당시 배운 프랑스 가정식 요리와 한국식 음식을 결합시켰다. “프랑스 사람들은 디저트에 설탕을 많이 넣어요. 우리 입맛에는 너무 달더라고요. 제가 만든 디저트는 설탕을 조금밖에 넣지 않습니다.”
 
1998년 한국에 돌아온 이들 부부에게 건축학과 교수자리와 미술사 강의는 이제 매력적이지 않았다. 대신 이씨는 우리나라 최초의 와인동호회 ‘비나모르’의 2대 시솝을 맡으면서 와인 관련 행사에 들이는 시간이 많아졌다. “와인 전문가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인생에서 와인이 차지하는 영역이 넓어지지 시작했습니다.” 건축설계 회사를 차렸지만 그는 집 짓는 일만으로 바쁘지 않았다. 그의 성격도 달라졌다. 큰 도화지에 조용히 건물을 짓던 그가 사람들을 만나 활발하게 이야기하는 외향적인 사람으로 변했다. 배씨는 프랑스에서 배운 요리들을 동네 아줌마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2004년 10월 이들 부부는 결단을 내렸다. 자신들만의 와인바 ‘베레종’을 연 것. 이씨는 건축회사 일은 물론 대학 강의마저 접었다. 부인 배씨는 처음엔 “취미는 그저 취미일 뿐”이라며 전업을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새로운 일에 행복해하는 남편을 보고는 곧 마음을 접었다.
 
“와인에 대한 막연한 지향점은 있었지만 어떤 ‘순간’이 오자 거짓 없이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제가 인생을 사는 데 바람직한 모습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고, 순간순간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ailto: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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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황씨 부부가 추천한 와인과 요리
 
이씨 부부가 가정에서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레드와인 1종과 이에 잘 어울리는 육류 요리를 추천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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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인
도멘 훌로 부르고뉴 피노누아 (Domaine Roulot, Bourgogne Pinot Noir 2005)
도멘 훌로는 프랑스 부르고뉴 뫼르소마을에 있는 와이너리다. 고급 화이트와인으로 유명하지만 비싸지 않은 지역단위 레드와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와인은 탄닌이 그리 많지 않아 텁텁한 맛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다. 마개를 딴 직후에는 약간 뻣뻣하고 윤기가 없게 느껴지지만 10~15분만 지나면 무게감이 살아나고 부드럽게 혀에 달라붙는 ‘피노누아’ 품종의 맛이 살아난다. 푹 끓여서 육질이 부드러워진 스튜계통의 음식과 잘 어울린다. 할인마트에는 없고 와인숍에서 구할 수 있다. 5만~6만원선.
 
* 요리
파스타가 들어간 쇠고기 스튜(Marmite de boeuf aux Pates)
 
재료 (3-4인 기준)
쇠고기 700그램 (갈비나 사태), 파스타(알파벳 파스타 또는 마카로니 파스타) 80그램, 토마토 600그램(큐브형태로 잘라 놓은 캔 제품도 괜찮음), 이탈리아 파슬리 2-3줄기, 양파(중간크기) 2개, 당근 1개, 마늘 2개, 올리브유 3큰술, 쇠고기 부용(Bouillon·육수) 2.5리터, 바질잎3-4장, 소금, 후추 약간
 
만드는 방법
1. 쇠고기는 한입에 먹기 좋은 크기로 네모나게 썰어놓는다.

2. 토마토는 껍질을 벗겨 4등분해서 씨를 제거하고, 큐브로 썰어놓는다.
3. 양파는 채 썰고 파슬리는 다지고 마늘은 얇게 썰어놓는다. 당근은 동그랗게 썬 뒤 다시 2등분해서 가장자리를 돌려 깎는다.
4. 바닥이 두꺼운 냄비를 달군 다음 올리브유를 두르고 고기를 넣어 노릇하게 굽는다. 

5. 고기를 꺼내고 같은 냄비에 양파를 넣고 3분 정도 익힌 다음 마늘과 토마토를 넣고 볶는다. 토마토가 익으면 쇠고기 부용을 넣고, 먼저 구운 쇠고기도 첨가한다. 바질잎(마른 바질가루도 괜찮음)을 채 썰어 넣고 당근도 넣은 뒤 소금, 후추로 간한다. 약한 불로 줄이고 뚜껑을 덮고 조린다.
6. 45분 후 간을 확인하고 파스타를 한꺼번에 넣고 15분 동안 더 조린다.
7. 마지막으로 간을 확인하고 파슬리 다진 것을 넣어준다. 스튜를 접시에 담고 마지막으로 스튜 위에 파슬리 다진 잎을 살짝 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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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이메일 : mh@hani.co.kr       트위터 : psol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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