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의 황금 ‘하몬 하몬’

박미향 2010.06.03
조회수 16600 추천수 0
스페인 하몬 마에스트로가 들려주는
 ‘이베리코 하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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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구르는 흙먼지를 따라 카메라가 움직인다.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있는 한 남자의 입술로 카메라의 시선이 고정이 된다. 그는 날카로운 칼로 식탁에 있는 단단한 고깃덩이를 베어 입으로 가져간다. 하몬이다. 카메라는 수컷 냄새가 진동하는 사내를 떠나 그의 등 뒤에 걸려 있는 고깃덩어리들로 이동한다. 하몬덩어리들이다. 하몬은 돼지의 넓적다리를 소금에 절여 장기간 숙성한 일종의 햄이다. 스페인의 전통음식이다.
 
스페인 영화 <하몽 하몽>(1994년)에서 라울의 집은 하몬 건조장이다. 라울의 등 뒤에 걸려 있는 하몬은 그의 근육질 몸매만큼 단단해 보인다. 우리 음식 족발처럼 보이기도 한다. 라울은 유혹하기로 작정한 주인공 실비아(페넬로페 크루스)에게 한마디 한다. “하몬은 사랑하는 데 좋아.”
 
하몬이 사랑의 촉매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스페인사람들이 아끼는 음식임에는 틀림없다. 스페인 거리 곳곳에는 하몬 전문점이 넘치고, 사람들은 하몬 몇 조각과 빵, 와인 한잔으로 끼니를 때운다. 스페인의 식탁에서 하몬이 빠지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김치 없는 우리 밥상과 같다.
 
 
캐비아·푸아그라와 함께 세계 미식가들 매료시켜
 
하몬은 최근에 캐비아, 푸아그라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전세계 미식가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식탁 위의 황금으로 불리는 ‘이베리코 하몬’ 덕택이다. ‘하몬 세라노’, ‘하몬 나비둘’ 등도 있지만 돼지 뒷다리로 만드는 ‘이베리코 하몬’을 제일로 친다.
 
‘이베리코 하몬’의 명성은 생산지의 환경, 돼지의 사육방식과 관련이 있다. 주요 생산지인 스페인 안달루시아 하부고 지역은 해발 600m에 위치하고 있다. 눈이 오지 않는 겨울, 덥고 습한 여름, 대서양에서 부는 바람은 돼지를 키우고 건조, 숙성시키는 데 좋은 기후조건이다. 하몬의 재료인 돼지를 키우는 방식도 독특하다. 순종 흑돼지를 15개월 동안 방목해서 키우고 도축하기 3개월 전부터는 도토리와 허브만 집중적으로 먹인다. 다른 돼지보다 불포화지방이 많아지고 마블링 상태가 좋아진다. 도축 후에 절이는 소금도 천일염을 쓴다. 2~3개월 동안 대서양의 바닷바람에 건조시킨 돼지는 36개월가량 숙성시킨다. 하몬과 비슷한 이탈리아의 발효햄인 프로슈토와는 돼지종과 숙성기간이 다르다. 이렇다 보니 ‘이베리코 하몬’은 1㎏당 30~40만원 할 정도로 고가다. 육포처럼 쫄깃하지만 치즈처럼 부드럽고 짜지 않아서 사람들의 입을 매료시킨다.
 
지난달 15일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서브원 곤지암리조트의 와인동굴레스토랑 <라그로타>에서는 ‘이베리코 하몬’ 시연회가 벌어졌다. 스페인 최대의 햄 생산회사인 신코 호타스(Cinco Jotas, 5J)의 하몬 마에스트로인 세베리아노 산체스(44)가 건강한 성인 남자의 넓적다리만한 ‘이베리코 하몬’을 가져와 자르는 시연을 했다. 30년 경력의 하몬 마에스트로인 그는 하몬을 “어떤 방식으로, 어떤 방향으로 자르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기계로 자르는 것보다 사람의 손이 닿아야 더 맛있다고 덧붙인다. ‘하몬 마에스트로’라는 직업이 생긴 이유이기도 하다. 하몬 마에스트로는 하몬 전문가인 ‘하몬 하모네로’ 중에서 최고의 장인을 이르는 말이다. 하몬 하모네로는 전통적인 하몬 숙성기술을 전수받은 이들로 손으로 하몬을 자르는 기술자들이다. 정규과정이 없고 전수기간도 길어서 스페인에서조차 그 수가 많지 않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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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께가 얇고 손가락으로 집는 순간 녹아야 좋은 것

 
세베리아노 산체스의 생생한 하몬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는 자른 하몬의 두께가 얇으면 얇을수록 좋다고 말한다. 그가 자른 하몬은 글자가 비칠 정도로 얇다. 자르는 모습은 신기하기만 하다. 길이가 다른 세 가지 칼이 등장한다. 가장 짧은 칼로 뒷다리의 한 부분을 ‘퍽’ 하고 찌른다. 뼈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번에는 조금 더 긴 칼을 ‘휘릭’ 들어 뒷다리의 옆을 두껍게 자르기 시작한다. 그 부위는 딱딱하고 맛이 없어 먹을 수 없다고 말한다. 횟집에서나 볼 법한 가늘고 긴 칼로 ‘쓰싹쓰싹’ 칼질을 시작한다. 아주 얇게 자른다. 정성스럽게 자르는 모습은 30년 장충동 족발집에서나 볼 수 있는 세월의 감동이 느껴진다. 하몬 한 조각을 사람들에게 권한다. “향을 먼저 맡아보세요. 하몬의 흰 부분(지방)을 손가락을 집어보세요.”
 
img_03.jpg하몬 특유의 향이 나야 하고, 지방은 손가락으로 잡는 순간 손가락의 온도 때문에 녹아야 좋은 하몬이라고 그가 설명한다.
 
그의 노련한 솜씨는 하몬 다리 하나당 800개 이상의 조각을 만든다. 1시간 이상 걸린다. “하루 저녁에 다리 3개까지는” 잘라봤다는 그는 요리를 해서 먹는 것보다 하몬 자체의 맛을 즐기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남은 하몬은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먹기 전 1시간 전에 꺼내 냉기를 없애고 먹으라는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그는 지금 전세계를 돌면서 알랭 뒤카스(프랑스요리의 1인자로 알려진 스타 셰프) 같은 스타요리사들을 만나 하몬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이날 저녁식탁에는 하몬과 궁합이 잘 맞는 와인 ‘코돈 니그로’(Cordon Negro)가 등장했다. 스페인 스파클링 와인인 카바(CAVA)와인이다. 카바는 1986년부터 스페인의 스파클링 와인을 통칭해서 부르는 이름이다. 풍부한 사과향과 달지 않은 상큼한 맛이 매력이다. 쫄깃한 하몽과는 더없이 잘 어울리는 와인이라고 라그로타의 소믈리에 김희전씨가 추천했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 하몬엔 화이트 와인이 제격
 
‘하몬을 먹으면 와인이 당기고 와인을 마시면 하몬이 당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하몬과 와인은 궁합이 잘 맞는다. 하지만 수천 가지 와인 중에 어떤 와인을 하몬과 마셔야 할지 난감할 때가 있다. 그랜드 인터콘티넨탈 호텔의 소믈리에 엄경자씨가 몇 가지 와인을 추천하고 그 이유를 알려준다.
 
하몬과 같이 소금 성분이 많이 함유된 음식에는 산도가 풍부한 화이트 와인이 적당하다. 레드 와인은 폴리페놀 성분과 소금이 상승작용을 일으켜서 쓴맛이 더 강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드 와인 마니아라면 과일향이 풍부하고 산도가 적절한 와인도 즐겨 볼 만하다.
 
◎ 드라이 피노 셰리 티오 페페(Dry Fino Sherry Tio Pepe)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은 셰리주(주정강화 와인)로 유명하다. 일반적으로 단맛이 강하다고 알려진 셰리주 중에서 티오 페페는 드라이하다.(단맛이 상대적으로 적다) 차갑게 마시는 티오 페페는 하몬과 잘 어울린다.
 
◎ 마르케스 데 리스칼 루에다(Marques de Riscal Rueda)
스페인 루에다 지역에서 생산하는 화이트 와인. 베르데호(Verdejo) 포도 품종을 사용한다. 산도가 풍부한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으로 미네랄 향과 신선한 과일의 맛이 돋보인다.
 
◎ 보데가스 무가(Bodegas Muga)
스페인 리오하 지역의 레드 와인. 템프라니요(Tempranillo) 품종을 사용한다. 잘 익은 과일 향과 스파이시 향 등 다양한 향들이 매력적인 와인이다. 부드러운 타닌으로 마시고 난 다음에도 긴 여운을 남긴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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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이메일 : mh@hani.co.kr       트위터 : psol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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