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줄에 흐르는 고향맛 찾아 세계 유혹 꿈

박미향 2010.06.17
조회수 7151 추천수 0
한식 전문가 도전 캐나다 동포
구수한 된장찌개와 그윽한 나물에 미래 발견
“간장 조금 된장 조금에 따라 맛 달라져 신기”

 
img_0617.jpg톡톡, 탁탁, 도마 위에서 칼질하는 소리가 요란하다. 요리 선생님은 실습하는 수강생들의 손놀림을 찬찬히 뜯어본다. “어, 누가 이렇게 잘랐지요? 더 길게 잘라야하는데.” 선생님은 한 수강생이 자른 파를 보고 호통을 친다. 한 사람이 얼굴을 붉히면서 손을 든다. “어, 선생님 제가 그랬어요. 서양요리만 만들다 보니….” 김태연(27)씨다. 그는 캐나다 동포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이민가서 20대 후반에 고국을 찾았다. 오로지 한식이 좋아서다. 
 
“어머니는 늘 집에서 떡볶이, 갈비 등 우리 음식을 만들어주셨어요.” 어머니가 심어준 한식의 유전자(디엔에이)가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그의 혈관을 타고 도는 것이다. 
  
그의 한국행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2년 전 강남의 한 요리학원을 다니기 위해 찾은 것이 처음이었다. 그곳에서 된장찌개, 전골, 나물무침 등 평범한 우리 음식을 배웠다. 그는 시골인심처럼 구수한 된장찌개와 마네의 그림처럼 그윽한 나물요리에서 자신의 미래를 보았다.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학에서 비즈니스를 전공하고 은행에서 인턴도 해봤지만 영 적성에 맞지 않았어요.”
 
“뭔가 창조적인 일”을 하고 싶었던 그에게 한식은 도전해 볼 만한 미지의 세계였다. “간장 조금 된장 조금”에 따라 맛이 확 달라지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지난해 캐나다로 돌아가서 요리학교 피아이씨에이(PICA)를 졸업했다. 한식에 대한 애정으로 칼질을 시작했지만 “기초가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지난 2월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는 케이터링 스텝으로도 활동했다. 전 세계에서 출전한 선수들이 먹을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바쁜 나날이었지만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한식에 대한 미련은 버릴 수 없었다.

결국 지난 4월 한국을 다시 찾아온 그는 지금 한국음식연구원에서 전통음식전문가과정을 밟고 있다. “한식은 외국에서도 인기가 많아요, 친구들은 저만 보면 ‘꼬리아, 불꼬기, 깔비, 비빔빱 넘버원, 넘버원’이라고 외쳐요.”
 
그는 우리 한식도 일본 초밥처럼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믿는다. 그의 꿈은 데이비드 장(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010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에 선정된 한인 요리사)처럼 세계적인 요리사가 되어 그 날개짓에 “작은 도움”이 되는 것이다. “캐나다에 돌아가면 저만의 한식집을 열 계획입니다.” 자신에 찬 그의 웃는 모습이 아름답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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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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