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은 좀 거시기하지만 맛은 달콤한 X케이크
마카롱은 ‘밀당’ 즐기는 연애꾼 작업도구로 ‘딱’

김씨의 마카롱은 그저 우아하다. 자꾸 손이 간다. ‘밀당’을 즐기는 연애꾼들의 작업도구로 딱이다.
사람과 헤어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여운이다. 한번쯤 뒤돌아보게 하는 울림은 다음 만남을 기약하는 약속이다. 영화감독과 요리사, 사진가와 그 여운을 만들기 위해 디저트 카페를 찾았다. 달콤함은 오래 기억된다. 족발과 폭탄주를 마시고 디저트 카페라니! 맥주집도 아니고 뼈다귀 해장국집도 아니고!
서양요리에서 디저트는 중요하다. 코스요리에서 30%를 차지한다고 말하는 요리사도 있다. 마지막에 먹는 디저트가 무엇이 중요할까 싶다. 하지만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은 법’이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은 법
우리가 찾아간 ‘르 쁘띠 푸’(Le Petit Four)는 프랑스식 디저트가 있는 작은 카페다. 테이블은 고작해야 6개 정도. ‘르 쁘띠 푸’는 ‘작은 오븐’이라는 뜻이다.(프랑스 이름은 외우기 너무 어렵다, 젠장!) 전주에서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제과제빵학원을 다닌 김대현(34)씨가 맛을 책임진다. 그는 프랑스의 호텔학교 ‘폴 보퀴스’(Paul Bocus)를 졸업했다.(그놈에 요리 유학! 유학 안 다녀오면 명함이라도 내밀겠는가!) 이 학교는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세계의 ‘요리 좀 한다’ 하는 이들에게는 꽤 알려진 곳이다. 그는 공학도답게 뭘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디저트도 그중 하나다. “실습을 하면서 놀라운 디저트를 많이 배웠습니다.” 그렇게 실력을 닦은 김씨는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중국집을 운영했던 매형과 프랑스에서 승부를 보려고 했다. 이문세의 노래처럼 ‘알 수 없는 인생’이다. 그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보수적인 이민정책 때문에 레스토랑을 열 수가 없었다. “중국 식당이나 아시아계 식당들이 탈세를 많이 한다는 인식이 있었어요.”
결국 2008년 한국에 돌아와서 ‘르 쁘띠 푸’를 열었다. “한달간 고요 그 자체였어요. 아무도 오지 않는 집”에서 그는 “너무 절망”했다. ‘알 수 없는 인생’이다. 그가 만든 ‘똥케이크’ 때문에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모양은 말려 올라간 똥 모양이고 꼭대기에는 아몬드 파리가 앉아 있다. 이름하여 ‘카카케이크’. 프랑스어 ‘카카’는 우리말로 ‘똥’이란 뜻이란다. 유머가 있는 디저트다. 형형색색의 황홀한 마카롱도 한몫을 했다. 맛이 궁금하시다고? 맛있다. 달콤하다. 입안에서 혀가 무너진다.

두 남자와 엮이게 해준 남자, 그는 사진 학우였다
이곳의 안내자는 요리사였다. 이런 맛을 알게 해준 그가 고마울 뿐이다. 이 두 남자를 만나게 해준 이는 사진가다. 사진가와의 인연은 10년이 넘는다. 사진가는 사진 수업을 함께 들은 학우였다. 그는 앤디 워홀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세계적인 갤러리에서 전시 의뢰가 들어올 정도로 성공했다. 그는 예술적 기가 넘치는 사진학과에서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의 성공의 발판은 영국 유학이었다.(또 유학이라고!) 그는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았다. 4년간 돈을 모아 꿈을 이뤘다. 인생을 늘 개척하는 그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마카롱은 몇년 전 한국에 상륙해 미식가들의 혀를 사로잡은 프랑스 고급 과자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제과 브랜드들조차 앞다퉈 마카롱을 내놓았을 정도다. 달걀흰자와 아몬드 가루, 설탕이 조화를 부리는 과자다. 바삭한 껍질을 깨물고 나면 보송보송한 크림이 입술을 더듬는다. 김씨의 마카롱은 그저 우아하다. 자꾸 손이 간다. ‘밀당’을 즐기는 연애꾼들의 작업도구로 딱이다. “프랑스는 지방마다 다양한 마카롱이 있어요. 저는 파리 방식대로 만듭니다.” 김씨가 말한다.
글 ·사진 박미향<한겨레> 맛 기자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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