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 던진 30대 초반 커리어우먼 새 회사 갈등
먹을수록 빠져드는 발효음식같은 직장 어떨까
그는 팔랑팔랑 계단을 내려와 청국장 집으로 들어왔다. 까만색 슈트를 입은 모습은 눈이 부시다. 겉옷을 벗자 민소매에 하얀 팔이 드러났다. 역시 눈이 부시다. 30대 초반의 A는 욕심 많은 커리어우먼이다. 누가 봐도 프로의 냄새가 난다.
그가 요즘 고민에 빠졌다. 새로 부임한 직장상사와 맞지 않아 충동적으로 사표를 던졌다. 우리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이다. 학교도 고향도 같지 않다. 그저 일로 만나 선후배 사이가 되었다.
직장을 그만둔, 애인도 없는 여자에게 새로운 시작은 고통
인생에서 넘어야 할 첫번째 언덕을 만난 그를 청국장 집으로 초대했다. 몸에 좋은 청국장으로 그를 위로할 생각이었다.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에는 몸이 튼튼해야 한다. 험한 인생을 헤쳐나가는 원동력은 가장 단순한 진리에 숨어있는 법이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 건강한 몸과 마음이 있는데 이겨내지 못할 시련은 없다. 그에게 청국장을 권했다.
그는 몇 숟가락 뜨지 않고 한숨을 쉰다. “면접 보는 일은 쉽지 않아요.” 그녀의 우아한 복장은 면접을 위한 것이었다. 30대 초반에 직장을 그만둔, 애인도 없는 여자에게 새로운 시작은 고통이다. 그녀는 최근 두 곳에서 오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복도 많지!) 선뜻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다.
한 곳은 신생 회사다. 들어가면 월급은 적고 할 일은 태산 같다. 하지만 그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다른 한 곳은 대기업이다. 이전의 회사에서 했던 일이 이어진다. 일은 익숙하지만 미래를 설계할 수는 없다. 그 일로 입었던 상처가 되풀이될지 모른다는 걱정이 앞선다. “어디를 선택해야 할까요?” 나에게 묻는다.
나의 충고는 “두 곳 중에 어떤 곳이 더 심장을 뛰게 해?”(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한심하다) 후배는 말이 없다. “그럼 이 청국장을 맛보고 닮은 회사를 골라봐”(이건 또 뭔가, 여전히 한심하다)
우리 전통음식인 청국장 같은 일터를 찾으면 행복하지 않을까! 청국장은 먹으면 먹을수록 애정이 솟는 음식이다. 한식의 세계화를 이야기하면서 떡볶이를 내세우는 사람들이 있지만 많은 전통음식학자들은 된장이나 청국장, 김치 같은 발효음식에 한 표 던진다. 지구상 어디에도 볼 수 없는 건강음식이기 때문이다.
콩 알갱이 씹을수록 고소하고 특유의 냄새도 나지 않아
청국장은 가을부터 다음해 봄까지 만들어 먹는 발효식품이었다. 콩으로 만드는 발효식품 중에서 가장 짧은 기간에 만든다. 청국장은 만드는 방법이 간단하다. 삶은 콩을 시루 같은 곳에 담아 40도가 넘는 곳에 2~3일 동안 두면 발효가 된다. 끈끈한 실 같은 것이 생기면 소금, 파, 마늘, 고춧가루 등을 섞어 만든다.
예부터 된장과 마찬가지로 청국장은 쌀이 주식이었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청국장은 주로 찌개로 만들어 먹었다. 이때 5분 이상 끓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청국장 안에 있는 좋은 균을 살리는 방법이란다.
우리가 만난 여의도의 청국장 집은 ‘여의도참칼국수’다. 이름에 칼국수가 있는데 무슨 청국장이냐고! 칼국수가 차림표에 있지만 이곳을 찾은 손님들은 대부분 청국장을 찾는다. 구수한 보리밥과 함께 나오는 청국장찌개가 더 매력적이다. 콩 알갱이들이 도톰하게 살아 있어 씹을수록 고소하다. 이곳의 청국장은 희한하게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주인장 구은희(50)씨는 발효과정에서 냄새가 나지 않도록 한다고 말한다.
후배가 청국장을 먹고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아직도 모른다. 청국장이 도움이 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그저 건강한 밥 한 끼 먹이는 것이 선배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오전 9시~오후 9시/매주 토요일은 쉰다/청국장 정식 8천원/02-782-5343)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먹을수록 빠져드는 발효음식같은 직장 어떨까
그는 팔랑팔랑 계단을 내려와 청국장 집으로 들어왔다. 까만색 슈트를 입은 모습은 눈이 부시다. 겉옷을 벗자 민소매에 하얀 팔이 드러났다. 역시 눈이 부시다. 30대 초반의 A는 욕심 많은 커리어우먼이다. 누가 봐도 프로의 냄새가 난다.
그가 요즘 고민에 빠졌다. 새로 부임한 직장상사와 맞지 않아 충동적으로 사표를 던졌다. 우리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이다. 학교도 고향도 같지 않다. 그저 일로 만나 선후배 사이가 되었다.
직장을 그만둔, 애인도 없는 여자에게 새로운 시작은 고통

그는 몇 숟가락 뜨지 않고 한숨을 쉰다. “면접 보는 일은 쉽지 않아요.” 그녀의 우아한 복장은 면접을 위한 것이었다. 30대 초반에 직장을 그만둔, 애인도 없는 여자에게 새로운 시작은 고통이다. 그녀는 최근 두 곳에서 오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복도 많지!) 선뜻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다.
한 곳은 신생 회사다. 들어가면 월급은 적고 할 일은 태산 같다. 하지만 그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다른 한 곳은 대기업이다. 이전의 회사에서 했던 일이 이어진다. 일은 익숙하지만 미래를 설계할 수는 없다. 그 일로 입었던 상처가 되풀이될지 모른다는 걱정이 앞선다. “어디를 선택해야 할까요?” 나에게 묻는다.
나의 충고는 “두 곳 중에 어떤 곳이 더 심장을 뛰게 해?”(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한심하다) 후배는 말이 없다. “그럼 이 청국장을 맛보고 닮은 회사를 골라봐”(이건 또 뭔가, 여전히 한심하다)
우리 전통음식인 청국장 같은 일터를 찾으면 행복하지 않을까! 청국장은 먹으면 먹을수록 애정이 솟는 음식이다. 한식의 세계화를 이야기하면서 떡볶이를 내세우는 사람들이 있지만 많은 전통음식학자들은 된장이나 청국장, 김치 같은 발효음식에 한 표 던진다. 지구상 어디에도 볼 수 없는 건강음식이기 때문이다.
콩 알갱이 씹을수록 고소하고 특유의 냄새도 나지 않아
청국장은 가을부터 다음해 봄까지 만들어 먹는 발효식품이었다. 콩으로 만드는 발효식품 중에서 가장 짧은 기간에 만든다. 청국장은 만드는 방법이 간단하다. 삶은 콩을 시루 같은 곳에 담아 40도가 넘는 곳에 2~3일 동안 두면 발효가 된다. 끈끈한 실 같은 것이 생기면 소금, 파, 마늘, 고춧가루 등을 섞어 만든다.
예부터 된장과 마찬가지로 청국장은 쌀이 주식이었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청국장은 주로 찌개로 만들어 먹었다. 이때 5분 이상 끓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청국장 안에 있는 좋은 균을 살리는 방법이란다.
우리가 만난 여의도의 청국장 집은 ‘여의도참칼국수’다. 이름에 칼국수가 있는데 무슨 청국장이냐고! 칼국수가 차림표에 있지만 이곳을 찾은 손님들은 대부분 청국장을 찾는다. 구수한 보리밥과 함께 나오는 청국장찌개가 더 매력적이다. 콩 알갱이들이 도톰하게 살아 있어 씹을수록 고소하다. 이곳의 청국장은 희한하게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주인장 구은희(50)씨는 발효과정에서 냄새가 나지 않도록 한다고 말한다.
후배가 청국장을 먹고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아직도 모른다. 청국장이 도움이 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그저 건강한 밥 한 끼 먹이는 것이 선배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오전 9시~오후 9시/매주 토요일은 쉰다/청국장 정식 8천원/02-782-5343)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