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것도 프랑스에서

박미향 2010.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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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눌러앉아 배우라고 강권했던 닭요리 맛
퍼마신 다음날 비행기서 “욱! 욱! 데인저러스”
 
 

img_02.jpg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것도 프랑스에서, 그것도 땅 위도 아니고 구름 위에서! 한달  전이다. 프랑스 보졸레 지방 출장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리옹에서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벌어진 일이다. 전날 우리 일행은 ‘퍼 마셨다. 무릇 사람은 ‘마지막’에 열정을 쏟아붓기 마련이다. 연인은 이별하는 마지막 밤에 뿜어낼 수 있는 모든 땀을 쏟아내고, 사진가는 마지막 슈팅에 필름을 아끼지 않는다
 

술꾼의 자존심, 구조요청은 하지 않았다
 
너무 조용해서 까치발 걸음도 송구한 보졸레 시골의 마지막 밤, ㅊ에게 한 잔, 2명의 ㅇ에게 한 잔씩, ㄱ에게 한 잔, 넘치는 붉은 술잔 사이로 손바닥만한 별들이 떨어졌다. 다음날이 문제였다. 술꾼들은 안다. 위장의 3분의 2를 알코올로 채운 다음날은 미동도 없이 조용히 앉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프랑스 비행기는 아담하고 폭이 좁았다. 술잔처럼 출렁거렸다. 위장에서 튀어나갈 때만 노리고 있는 ‘그것들’이 기회를 잡았다.

 
비행기의 흔들림이 기폭제가 되었다. 유일한 희망은 화장실이었다. 입을 틀어막고 광저우 스타디움을 달리듯 전속력으로 돌진했다. 어여쁜 프랑스 승무원이 완강히 붙잡는 것이 아닌가! 자리로 돌아가라고! 이때 이상한 말이 튀어나왔다. “욱! 욱! 욱! 데인저러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위험’을 감지한 승무원은 화장실을 열어주었다. 비행기는 서서히 착륙을 하고 있었다. 쿨쿨 자고 있었던 ㅊ과 ㅇ에게 구조요청은 할 수 없었다. 술꾼의 자존심이다.

 
한국에 돌아와 프랑스에서 통역을 맡았던 이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에 모였다. 나의 무용담은 좌중을 압도했다. 어머니의 인사가 겨우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었다. “내 딸은 프랑스에서 잘 지내요?” 딸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어머니는 닭볶음탕을 우리에게 내주었다. 그리움이 잔뜩 묻어 있었다. 짜고 맵고 인공조미료 향이 났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됐십니데이, 지는 한국이 좋아예”
 
img_03.jpg닭요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히 좋아하는 음식이다. 조선시대 장계향 선생이 쓴 최초의 한글조리서 <음식디미방>에는 다양한 닭요리들이 등장한다. 영계를 찜으로 요리한등 이름도 생소한 닭요리들이 여러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제사에는 닭을 쪼개서 구운 ‘봉적’을 올리기도 했다. 닭은 먹을거리가 넉넉하지 않던 시절에 참으로 유용한 식재료였다. ㅇ과 ㄱ은 모두 요리와 관계된 일을 한다. 자연스럽게 프랑스에서 맛본 닭요리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삿갓버섯 소스를 곁들인 닭고기’ 버터를 넣고 닭고기를 굽다가 삿갓버섯, 양파, 으깬 통마늘, 화이트와인을 넣어 졸이는 요리다. 마지막에 걸쭉한 크림을 뿌려 먹는다. 레몬즙도 살짝 얹는다. 시큼한 레몬 한 방울이 화룡점정이다.

 

 
당시 ㅊ과 2명의 ㅇ은 이 요리를 해준 멋진 프랑스인 프레데리크 발레트를 훔쳐보면서 함께 갔던 요리사 ㄱ에게 한국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강권했다. 눌러앉아 그와 백년해로하면서 요리를 배우라고! 세계적인 요리사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농담을 던졌더랬다. 경상도 사투리를 세게 쓰는 ㄱ은 “됐십니데이, 지는 한국이 좋아예.”

그날 밤, 서울 하늘에는 별이 보이지 않았지만 프랑스의 그날 밤처럼 흥겨웠다.
 

글·사진 박미향 <한겨레> 맛기자mh@hani.co.kr
 
 

 
요리사 프레데릭 발레뜨의 ‘삿갓버섯 소스를 곁들인 닭고기’ 만드는 법
 

img_01.jpg

재료 (4인분)|
닭 허벅지살 4 덩어리, 버터100 g, 양파1개, 삿갓버섯 10개, 껍질째 익힌 통마늘 2쪽, 부케 가르니(향신료 식물묶음) 한 다발, 드라이 화이트 와인 20밀리리터, 크림1 리터, 레몬, 소금, 후추

조리법| 뜨겁게 달군 큰 프라이팬에 버터를 넣고 닭고기를 넣는다. 충분하게 소금 간을 하고, 후추를 뿌린다. 얇게 썬 양파와 4등분한 삿갓버섯, 으깬 통마늘, 부케 가르니를 넣는다. 고기가 노릇하게 잘 구워질 때까지 익힌다. (양면을 각 6분씩). 드라이 화이트 와인을 넣어 묽게 만든다. 졸인 후 크림을 넣는다. 25~30분 더 조리하고 나서 고기를 꺼낸다. 접시에 보기 좋게 고기를 담고 소스를 바른다.
소스를 고운 체로 걸러 레몬을 조금 첨가해도 좋다.  
 
글·사진 박미향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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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이메일 : mh@hani.co.kr       트위터 : psol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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