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알랄라 얌의 배려에 눈물이 나올 뻔

박미향 2010.12.16
조회수 12504 추천수 0
인기 요리만화 작가, 알고보니 홍대 앞 카페박사
달콤한 티라미수 나눠 먹으며 남친 얘기도 솔솔
 

박미향-리코타치즈티라미수.jpg푸드스타일리스트 ㅈ은 몇 달 전 황당한 일을 겪었다고 했다. 이른 아침 딸과 택시를 잡으려고 나선 길에 곤욕을 치렀다. 택시기사들은 전염병 환자도 아닌데 이들 모녀를 피해간 것이다. 이유는 안경이었다. “첫 손님으로 안경 낀 여자를 태우면 재수가 없다고 하네.” ㅈ의 딸은 안경을 썼다. 이 희한한 편견을 듣고 난 다음부터는 동그란 안경을 낀 처자들만 보면 ㅈ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안경 낀 여자가 첫 손님이면 재수가 없다?
 
인터넷 포털 ‘다음’에 요리만화 <코알랄라>를 연재하는 얌이(30·본명 최지아)를 만났을 때도 그랬다. 똘똘한 눈동자는 작고 동그란 안경 너머에서 빛나고 있었다. <코알랄라>는 지금 한창 인기몰이 중인 만화다. 클릭 수가 15만~35만 건을 넘고, 지난 12월 초에는 ‘애니북스’에서 단행본이 출판되기도 했다.

 
이 만화는 통통한 코알라가 ‘필 팍 꽂힌 음식’을 찾아 미친 듯이 질주하고 침이 뚝뚝 떨어지는 요리법을 소개해서 재미를 더하는 웹툰이다. 만화를 보면 작가가 먹을거리라면 사족을 못 쓰는 식신, 코알라를 닮았을 것이라고 상상하기 쉽다. 아니다. 그는 아담하고 섬세하며 싱그러운 예술가적인 풍모가 그윽한 처자였다. 그 단아한 모습에 ‘범생이’라는 딱지까지 붙어 있었다.

 
평소 그의 팬이기도 한 기자는 연재를 부탁하기 위해 그를 만났다. “작가님, 어디 가서 차 한 잔 할까요? 잘 아시는 데로 가셔요.” 그는 홍대 앞 카페박사였다. 몇 군데 그의 인도하심으로 찾아간 카페들이 닫혀 있자 얌이는 모노드라마를 연출하기 시작했다. 혼잣말로 중얼중얼 “어쩌지, 어쩌지”하면서 말이다.

 
검지를 들어 절제된 각도를 유지하면서 방향을 가리키는 동작은 한 장의 만화를 보는 듯했다. ‘타고난 예술가는 다르긴 다르구나!’ 긴 순례 끝에 도착한 파라다이스는 디저트 카페 ‘비 스위트 온’(Be Sweet On)이었다. 얌이의 단골집이다. 우리는 따끈한 커피와 티라미수를 먹었다. 으흠! 코알라가 된 느낌이었다.
  

남친 절대로 집 앞까기 배웅 허락 않는 이유
 
티라미수가 어떤 디저트냐!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디저트 케이크다. 마스카르포네치즈와 에스프레소 커피, 초콜릿이 만드는 걸작품이다. 만들기도 쉽다. 마스카르포네치즈, 달걀, 설탕, 생크림을 섞고 그 위에 스펀지 케이크나 카스텔라 혹은 비스킷을 얹고 에스프레소를 붓는다. 그 위에 재료들을 또 부은 다음 코코아가루를 뿌리면 끝이다.

 
요리만화 <절대미각 식탐정> 1권에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마스카르포네치즈 대신 유지방이 적은 리코타치즈를 넣어 만든 티라미수가 등장한다. 얌이는 집에서 비싼 마스카르포네치즈 대신 크림치즈를 쓴다고 한다. 달콤한 맛은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도록 인도했다.

 
얌이에게는 남자친구가 있다. 독립적인 얌이는 절대로 남자친구가 집 문 앞까지 배웅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전철역에서 헤어진다. “그도 갈 길이 멀어요.” 이유는 단순하지만 배려의 마음이 숨어 있다. 그의 마음은 ‘비 스위트 온’의 티라미수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길고 예쁜 초콜릿 바가 케이크 위에 대각선으로 놓여 있었는데 자기 쪽을 향하고 있는 부분만 깔끔하게 먹어치웠다. 나머지는 내 몫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따스해서 눈물이 나올 뻔했다. 그와 1월에는 진한 프랑스 음식을 먹으러 가기로 약속했다. (‘비 스위트 온’/서울 마포구 서교동/02-323-2370/3800~8900원) 
 

※ 취재 뒷이야기
 
맛있는 티라미수를 먹고 우리는 즐겁게 헤어졌다. 얌이는 연재를 약속했다. 하지만 몇 주 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힘들겠어요. 지금 하고 있는 작업과 병행하기가....” 결국 연재계획은 무산되었다. 다음 기회를 노려볼 생각이다.
 

글·사진 박미향 <한겨레> 맛기자mh@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첨부
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이메일 : mh@hani.co.kr       트위터 : psolsol      

최신글

엮인글 :
http://kkini.hani.co.kr/6157/002/trackback
List of Articles

특별한 날 호화로운 케이크도 한번쯤

  • 박미향
  • | 2010.12.23

이명원 '파티시에'편집장의 추천 케이크집 5선 크리스마스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케이크다. 가족들이 입을 모아 ‘호’ 하고 촛불을 끄면 성탄의 즐거움은 배가 된다. 월간 <파티시에> 편집장이자 제과·제빵 관련 책 <홈베이킹 시크릿>, <리얼 초콜릿> 등을 기획·출판한 이명원씨가 첫사랑처럼 달콤하고 ‘핫한’ 케이크집을 추천한다. 패션5(Passion5) 특별한 날을 위해 케이크를 살...

신부님의 와인 '미사주'성탄절에 딱!

  • 박미향
  • | 2010.12.23

경산 주조공장 시음기…낮은 도수에 가벼운 맛 케이블 채널 티브이엔의 시트콤 <생초리>처럼 조용한 마을 평사리(경북 경산시 진량읍)에서는 특이한 와인이 생산되고 있다. 열정적인 애호가라도 구할 수 없는 와인이다. ‘미사주’다. 이름 그대로 미사주는 천주교에서 미사의 일부인 성찬전례(빵과 포도주로 실재하는 예수의 몸과피를 몸 안에 모시는 것)에 사용하는 와인이다. 붉은 ...

설국의 자연밥상, 도시의 혀를 무참하게 하다

  • 박미향
  • | 2010.12.16

무주 안성면 장영란씨 겨울밥상 손님-주인이 따로 없이 누구나 오면 주방보조 호두밥 잣비지…, 그들 삶도 자연을 꼭 닮았다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덮인 지난 9일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을 찾았다. 도시의 눈은 낭만을 챙기기도 전에 흙탕물로 변했지만 한적한 안성면은 고요한 ‘눈의 나라’였다. “오시느라 고생했어요.” 큰 밀짚모자를 눌러쓴 앳된 김정현(21)씨가 안성우...

코알랄라 얌의 배려에 눈물이 나올 뻔

  • 박미향
  • | 2010.12.16

인기 요리만화 작가, 알고보니 홍대 앞 카페박사 달콤한 티라미수 나눠 먹으며 남친 얘기도 솔솔   푸드스타일리스트 ㅈ은 몇 달 전 황당한 일을 겪었다고 했다. 이른 아침 딸과 택시를 잡으려고 나선 길에 곤욕을 치렀다. 택시기사들은 전염병 환자도 아닌데 이들 모녀를 피해간 것이다. 이유는 안경이었다. “첫 손님으로 안경 낀 여자를 태우면 재수가 없다고 하네.” ㅈ의...

한남오거리, 줄자같은 혀를 가진 그녀에게 딱!

  • 박미향
  • | 2010.12.09

200m 거리에 10평 남짓 레스토랑들 ‘빼곡’ 무지개빛 향기와 엣지, 알뜰한 미식가 유혹   김 대리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크리스마스 데이트 장소를 고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여자 친구는 까다로운 미식가다. 가격 대비 음식의 질을 꼼꼼하게 따지는 알뜰한 여자다. 거창한 레스토랑도 싫어하고 정성 없는 밥을 파는 집도 경멸한다. 음식에 관해서는 줄자처럼 정확한 ...

클래식에 정통한 교양있는 육우는 억울하다

  • 박미향
  • | 2010.12.09

먹이도 똑같고 거세까지 했는데 한우와 차별 입에 살살 녹는 맛 보며 큰 눈망울 아른아른 육우는 억울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식탁에서 홀대받기 시작했다.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 논란이 일면서 마치 식용으로 사육된 얼룩소(홀스타인종)는 먹을거리가 못 된다는 잘못된 편견이 생겼다. 육우는 얼룩소 중에서 거세한 수소를 말한다. 태어날 때부터 먹을거리로 운명 지어진 놈이다....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것도 프랑스에서

  • 박미향
  • | 2010.12.02

아예 눌러앉아 배우라고 강권했던 닭요리 맛 퍼마신 다음날 비행기서 “욱! 욱! 데인저러스”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것도 프랑스에서, 그것도 땅 위도 아니고 구름 위에서! 한달 전이다. 프랑스 보졸레 지방 출장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리옹에서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벌어진 일이다. 전날 우리 일행은 ‘퍼 마셨다. 무릇 사람은 ‘마지막’에 열정을 쏟아...

남자들은 괴성 지르고 여자들은 입 다물었다

  • 박미향
  • | 2010.11.25

여친도 그런 사람들 만나더니 추천 음식도…  양 대창 곱창, 지글거리는 불판 상반된 풍경    “음음! 맛있네”, “양이랑 대창 좋아해서 자주 다녔는데 이 집 정말 맛있다.” 시끌벅적한 곱창집 한 귀퉁이에서 터지는 탄성이다. 남자 후배 ㅇ과 남자 선배 ㅊ은 감탄사를 질러댔다. 맛에 매료되어 이들이 괴성을 터뜨릴 때 여자 후배 ㄱ과 ㅁ은 아무 말도 없다. 맛있다는...

밥자리 궁합, 웃음 궁합, 수다 궁합

  • 박미향
  • | 2010.11.18

이 유머로도 좀체 ‘빵’ 터지지 않으면 퀴즈 하나  “남자 좀…” 디저트는 ‘결혼과 사랑’으로 마무리    #에피소드 1 : 수습기자인 ㅇ은 늦은 밤 ‘그날의 임무’를 완수하고 회사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때 선배로부터 호출이 왔다. (삐삐가 있던) 그 시절, 선배의 호출은 하느님의 명령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택시 안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ㅇ은 카폰이 눈...

알알이 영근 햇사랑에 풋정 달뜨는 보졸레 누보

  • 박미향
  • | 2010.11.12

낮에는 포도 따고 별 뜨면 술 마시다보면 마술이… 깔끔하고 깊이 있는 맛 비결, “진실은 와인 잔에”   산과 들이 온통 노랗다. 치자물을 들인 광목으로 대지를 꽁꽁 싼 것처럼 노란색 물결이다. 와인 산지로 유명한 프랑스 보졸레 지역의 11월은 노란색으로 시작한다. 대지는 한 해 동안 잘 익은 포도송이를 사람들에게 내주고 바삭거리는 노란 잎들만 남아 흙냄새를 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