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의 와인 '미사주'성탄절에 딱!

박미향 2010.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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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 주조공장 시음기…낮은 도수에 가벼운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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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채널 티브이엔의 시트콤 <생초리>처럼 조용한 마을 평사리(경북 경산시 진량읍)에서는 특이한 와인이 생산되고 있다. 열정적인 애호가라도 구할 수 없는 와인이다. ‘미사주’다. 이름 그대로 미사주는 천주교에서 미사의 일부인 성찬전례(빵과 포도주로 실재하는 예수의 몸과피를 몸 안에 모시는 것)에 사용하는 와인이다. 붉은 와인은 신부들의 손을 거쳐 ‘성혈’(예수의 피)이 된다. 미사주를 만드는 ㈜롯데주류비지(BG) 경산공장은 일명 ‘마주앙 공장’이다. 국산 와인 ‘마주앙’이 생산되는 곳이다. 공장이 설립된 지 40년이 넘었다.


마주앙 공장에서 만드는 미사주는 특별하다. 섬세한 공정을 거쳐 생산된다. 교회의 엄격한 전례 규정을 따르기 때문이다. ‘미사 때 사용하는 포도주는 포도 열매로 생산된 순 자연술이어야 하며 다른 것이 전혀 섞이지 않는 순 포도주여야 한다. 포도주는 완전한 상태로 보존되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포도주가 시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금까지 경북 왜관에 있는 베네딕도수도회의 수사들이 품질관리를 하고 있다. 까다로운 품질검사를 통과한 미사주만 주교회의의 인증 라벨을 붙일 수 있다.


와인 애호가들은 미사주의 포도 품종이 궁금하다. 카베르네 소비뇽, 리슬링, 피노누아 등 도대체 어떤 품종으로 이런 성스러운 와인을 만드는 것일까? 미사주의 품종들은 낯설다. 백포도주 미사주를 만드는 품종은 세이벨(Seibel)이다. 프랑스가 원산지로 일본 와인업자들이 개량했다. 적포도주는 ‘엠비에이’(머스캣 베일리 에이·Muscat Baily A)라는 품종을 쓴다. 이 품종은 ‘베일 에이’와 ‘머스캣 함부르크’를 접붙인 포도다. 경북 청하·의성, 경남 밀양 등지에서 재배한다.
 

포도 껍질 벗겨 담고 돌려따는 뚜껑 달아
 
전체 면적이 1500여평인 마주앙 공장의 지하 저장고로 내려가면 싸늘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 온다. 구불구불 이어진 저장고에는 커다란 스테인리스 숙성통들이 있다. 반짝반짝 윤기가 난다. 30㎘, 60㎘, 150㎘ 세 종류다. 세로로 세운 형태가 아니라 옆으로 눕힌 ‘호라이즌 타입’이다. 나영우 생산팀장은 “‘호라이즌 타입’은 와인의 산화 방지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나 팀장은 숙성통의 꼭지를 돌려 작은 잔에 와인을 채웠다. 서늘한 기운은 몇 모금 마신 미사주로 사라져 버렸다. 미사주는 알코올 도수가 낮고 타닌이 거의 없다. 보디감은 물만큼이나 가볍다. 술꾼들에게 그저 숭늉 같은 수준이지만 성탄의 경건함이 혈관을 타고 흐른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미사주는 포도의 껍질을 벗겨 만든다고 한다. 보통 와인은 껍질째 분쇄해 압착하는 방식을 많이 사용한다. 마주앙 공장에서도 이런 방식을 이용했지만 껍질을 벗겼더니 품질이 더 좋아졌다고 한다. 붉은색을 내기 위해서는 껍질을 벗긴 포도알을 압착하기 전 30분간 60도에서 끓여 붉은 주스를 만든다. 이 주스는 압착 과정에 첨가된다. 효모는 독일산 건조효모다. 김명구 경산공장 관리팀장은 “야생효모에만 의존하면 식초가 되기 쉽고 오염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코르크마개 대신 신대륙 와인처럼 간편한 스크루마개를 사용하는 점도 재미있다.


지금 출하되고 있는 미사주는 2008년산이 많다. 2년여간 숙성하는 셈이다. 1970년대 1개당 1800원 하던 출고가는 현재 3744원이다. 한때 백포도주의 인기가 더 높았던 적이 있었다. 미사 집전 중에 실수로 적포도주를 쏟으면 미사복의 얼룩이 잘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사주는 신부들에게는 대단히 성스러운 것이다. 남겨서는 안 된다. 몇 년 전 명동성당의 한 막내 신부는 여러 교구의 신부들이 모여 드린 미사에서 미사주가 남자 몽땅 마시고 잠깐 쓰러지기까지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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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거의 없는 직접 생산, 국내선 30여년째
 
일부 교구에서는 미사주를 따로 생산하기도 한다. 청주교구는 영동에서 생산되는 포도로 미사주를 만들고 마산교구는 인근에 있는 한 수녀회에서 만든 포도주를 사용한다. 서울 강북구 송중동에 있는 성바오로수도회는  마리오(Mario Mecenero) 수사가 1964년부터 한국에서 만든 와인을 미사주로 사용해왔다. 마리오 수사가 만든 와인은 그의 고향인 이탈리아를 담고 있다. 그가 와인을 만들게 된 계기가 재미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사람들이 밥상에서 소주 한잔하듯 식사를 할 때 꼭 와인을 한잔씩 합니다. 처음 와서 한국에 없어서 걱정했어요.” 그해 우연히 방문한 한 수녀원에서 작은 포도밭을 발견했다. “수녀원의 낡은 건물을 3일 동안 고쳐주고 포도를 얻어 왔어요.” 포도 200㎏을 가져왔고 줄기와 포도송이를 분리하는 기계와 압축기계를 직접 제작해 와인을 만들었다. 고향인 이탈리아 비첸차의 부모님이 하던 방식대로 껍질째 발효를 시켰다.

 “한국 포도의 특성상 설탕을 아주 조금 넣어요. 1주일 정도 두면 40도 정도에서 끓기 시작하고 껍질이 뜨죠. 남은 물을 다른 통에 옮기기를 여러 번 반복해 만들었어요.” 그의 와인은 한국에서 살기 위한 생존 도구였다. 마리오 수사는 1병당 2500원에 미사주를 판다. 2009년에는 2000원이었다고 한다. 친구들이나 성바오로수도회와 관련 단체에는 무료로 주기도 한다. 그는 1960년대 낯선 한국 땅에서 염소를 구해 치즈를 만들기도 했다. 소시지는 지금까지도 직접 만들어 먹는다. “농부였던 아버지께 다 배운 것”이라고 말하면서 웃는다. 생존 전략이었다.


현재 미사주를 직접 생산하는 나라는 극소수로 알려져 있다. 한국천주교회도 1970년대 이전에는 이탈리아나 프랑스 등지에서 미사주를 수입했다. 수입 과정도 복잡하고 물량도 불규칙한데다 값도 비쌌다. 한국천주교회 주교회의는 1976년 당시 동양맥주주식회사가 국산 와인 생산에 성공하자 그 이듬해부터 의기투합해서 미사주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교황청의 승인도 받아냈다. 매년 포도 수확이 끝나면 대구대교구 진량성당에서 신자들과 포도 축복 미사를 올린다. 마을 주민들과 농부들, 천주교 관계자들이 여는 한바탕 축제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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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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