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 잡는 음식점 이름, 입맛도 잡는다

박미향 2011.01.21
조회수 41325 추천수 0
‘곧 망할 집’, 20년 간 장수…‘면사무소’엔 국수가
브레드 피트, 대장균집, 놈, 진짜루, 뭐 하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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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 망할 집이죠, 위치가 어디예요?” “곧 망할 집이죠, 예약이 되나요?” 도대체 무슨 소리지? ‘곧 망할 집’의 위치는 왜 물어보는 것일까? ‘곧 망할 집’은 인천 월미도에 있는 횟집 이름이다.
 ‘곧 망할’ 줄 알았던 이 집은 20년간 장사를 하고 있다. 이곳을 찾은 이들은 간판을 보고 배꼽부터 잡는다. 맛이 문제가 아니다. 손님들은 웃음부터 선사하는 이곳이 즐겁기만 하다. 이 포복절도, 박장대소할 이름은 사장 고운태(66)씨의 자녀가 지었다. 고씨는 “예전에 이 거리에는 ‘고쟁이부인 속 터졌네’ 같은 재미있는 이름들이 많았어요. 당시 중학생들이었던 애들이 우리도 해보자 해서 나온 이름이죠.”
 

간판 보고 빵 터져…덩달아 즐거운 입
 
 ‘곧 망할 집’처럼 이색적인 이름으로 손님의 시선을 끄는 맛집들이 있다.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위트는 다시 그곳을 찾게 하는 요인이 된다. 면발로 승부를 거는 음식점 중에 면사무소를 사용한 상호가 많다. ‘면사무소’, ‘육전면사무소’, ‘이태리면사무소’. 면사무소는 면의 행정 사무를 맡아보는 기관을 말한다. 지방에 있어야 할 면사무소들이 서울특별시에 있다니 별일이다.

 
육전면사무소(서울 강서구 염창동)의 주인 정성욱(40)씨와 동업자 김현주(40)씨는 ‘홍초불닭’과 ‘아딸떡볶이’를 운영했던 경험을 살려 지난해 7월 개업했다. 찾는 이들은 얇은 생면을 쭉쭉 젓가락으로 끌어올리며 웃는다. ‘육전’(쇠고기전)은 이 집의 다른 요리다. “시골에 가면 면사무소가 있잖아요. 푸근한 마음이 들죠. 그 마음을 가져왔어요.”

 
종로구 계동 현대사옥 옆길을 따라 3~4분 올라가면 향긋한 파스타의 쫄깃한 맛이 물씬 풍기는 ‘이태리면사무소’도 만날 수 있다. 대학생 이영진(20)씨는 맛집 블로그를 뒤지다가 ‘이태리면사무소’를 발견했다. “이름이 너무 재미있어서 찾게 되었어요.” 마포구 연남동의 국수집 ‘면사무소’는 소설가 김연수씨가 이름에 반해 자신의 칼럼에 소개까지 했다. 차림표에는 콩국수, 맑은국수, 어묵국수, 열무비빔국수 등이 빼곡히 적혀 있다.

 
빵집, ‘브레드 피트’(Bread Fit·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도 ‘면사무소’만큼 재치가 넘치는 이름으로 유명하다. 영화배우 브래드 핏(Brad Pitt)과 글자는 다르지만 발음이 비슷해서 인기를 끌고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우유크림빵’은 한입 베어 먹을 때마다 매력적인 브래드 핏이 곁에 있는 것 같다. 주인 유기헌(44)씨는 이름에 대한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고 한다. “콩글리시죠. 굳이 해석하자면 ‘맞춘 빵’이라는 뜻인데 여자 친구가 지어주고 지금은 떠났죠.” 유씨는 다니던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뒤늦게 빵의 매력에 빠졌다. 일본의 ‘도쿄제과학교’를 졸업하고 동기생들과 함께 ‘브레드 피트’를 열었다. 유씨의 세련되고 감각적인 맛이 빛나는 빵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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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은 이름 하나로 부수입…특허 낸 뒤 사용료
 
업주들이 손님의 눈길을 단박에 붙잡기 위해 이색적인 이름을 짓는 경우도 있지만 찾아오는 이들이 별난 이름을 지어주기도 한다. 서울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20분 정도 걸어가면 ‘승혜네떢볶이원조대장균’이 있다. 20년 전 허름한 가옥들이 즐비하고 초등학생과 중고등학생들이 북적였던 옥인동 거리에는 간판도 없는 소박한 떡볶이집이 있었다.

 
아이들의 단골집이었던 이 집은 언제부터인가 ‘대장균집’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못살고 어려웠던 시절 아이들은 떡볶이를 먹으며 대장균이 바글거린다고 놀렸다. 쫀득한 밀가루 떡과 튀김을 푸짐하게 얹어주는 주인할머니 최대규(71)씨의 넉넉한 인심은 아이들의 놀림도 그저 즐거운 일이었다. 2001년 지금의 자리인 연립주택 지하로 이사한 후에는 ‘승혜네’를 붙이고 골목에 작은 간판도 달았다. ‘승혜’는 최씨의 손녀 이름이다. 올해 15살이 되었다.

 
간판에는 ‘대장균’이라는 글자가 살짝 떨어져 나가 있다. 장난꾸러기 동네 꼬마들의 짓이다. 달걀, 김밥, 떡볶이, 튀김이 한가득 들어간 ‘떡볶이 정식’이 2000원이다. 인근의 경복고 2학년생들은 “8교시는 이 집을 찾는 거예요. 싸고 맛있어서 좋아요. 이모(최씨) 최고!”를 외친다. 서울 성신여대 앞 ‘놈’의 원래 이름은 ‘놈 파스타’였다. 요리하는 놈, 사진 찍는 놈, 운동하는 놈이 만나 연 집이라 붙인 이름이다. 주인 류창현(38)씨는 이렇게 말했다. “언제부턴가 손님들이 ‘놈’이라고만 부르는 거예요. 그 이름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죠.”

 
잘 지은 이름은 부수입도 올린다. 중국집 ‘진짜루’(서울 도봉구 미아동)는 10년 전에 작명을 하고 특허도 받았다. 주인 문혜숙 씨는 “남편과 대화하는 중에 ‘진짜’, ‘진짜’라고 말하다가 ‘루’를 붙이게 되었다”고 말한다. 사용료를 받고 이름을 빌려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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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에 곰탕 파는 ‘나물과 곰’, 아하! 그 집
 
음식점 창업에서 작명은 중요하다. 에프시(FC)창업코리아 강병오 소장은 단골이 생기기 전까지 이름은 시각과 지각을 통해 구매 충동을 일으킨다고 한다. 처음 봤을 때 무엇을 판매하는 곳인지, 본 후에는 쉽게 기억되는 이름이어야 한다고 했다. 시장이 클수록 이름과의 궁합이 중요하다. 시장이 작은 고급 레스토랑이나 외국 음식을 파는 집은 어려운 외래어를 사용해도 마니아층이 있어서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삼겹살구이처럼 대중적인 음식에 어려운 이름을 붙이면 실패할 확률이 크다. 강 소장은 작명의 몇 가지 원칙에 대해 설명했다. 첫째가 차별화다. 한동안 ‘원조’가 유행했던 이유다. 둘째는 이름의 리듬감이다. 맥주전문점 ‘쪼끼쪼끼’가 대표적인 사례다. 셋째는 고객의 눈높이와 맞는 이름이어야 한다.

 
홍대 주변에서 ‘나물 먹는 곰’, ‘어머니와 고등어’, ‘며느리밥풀꽃’, ‘다락’ 등을 운영하는 ‘컴퍼니 F’의 대표 김진한 사장도 이런 원칙들을 잘 지켰다. ‘나물 먹는 곰’은 비빔밥과 곰탕이 주요리인 집이다. ‘미스터 곰’, ‘곰여사’, ‘곰 할머니의 외출’ 등 다양한 후보군들이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비빔밥의 재료인 나물과 곰탕의 ‘곰’이 만나 재미있고 인상 깊은 이름이 탄생했다. ‘어머니와 고등어’는 주방을 책임지는 김씨의 어머니와 고등어를 부각시킨 이름이다. 가수 김창완의 노래를 빌려왔지만 음식점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114전화번호안내서비스를 제공하는 케이티시에스(KTCS)의 2008년 집계를 보면, ‘웃긴 상호’는 정말 많다. ‘니가사’(부산), ‘샤론술통’, ‘춤추는 찜닭 피리부는 똥집’, ‘탄다 디비라’, ‘아디닭스’, ‘닭쳐라’, ‘몽고반점’, ‘거시기 곰장어’, ‘막창 신랑과 아나고 신부의 첫날밤’(이상 대구), ‘태풍은 불어도 철가방은 간다’(순천), ‘죽부인 죽쑤는 날’(여수), ‘저 돼지예요’(충남), ‘콩부인두부났네’, ‘홍범이엄마밥줘유’, ‘야심찬맥반석아구찜엔뚝배기분식에허준냉면’, ‘돼지능지처참’, ‘놀랄만두하군’(충북) 등이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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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이메일 : mh@hani.co.kr       트위터 : psol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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