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년 역사, 일본 소바의 으뜸

예종석 2008.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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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종석의 맛있는 집] 도쿄의 ‘간다야부 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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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람들은 면을 참 좋아한다. 하루 한 끼 정도는 면으로 해결하며 길거리에는 메밀국수(소바)나 가락국수(우동), 라면을 파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특히 전철역 근처에는 면 종류를 파는 간이식당들이 흔해서 출퇴근길에 서서 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광경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다양한 면류 중에서도 소바는 그 기원이나 전통 면에서 볼 때 일본을 대표할 만한 음식이다. 1643년에 간행된 일본 최초의 요리책, <요리물어>(料理物語)에 그 제조법이 기술되어 있을 정도니 그 역사가 상당함을 알 수 있다. 도쿄를 중심으로 한 관동 사람들은 소바를 즐겨먹고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관서 사람들은 우동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지금은 지역 구분이 힘들 정도다. 일본인들은 소바가 행운을 가져 온다고 믿어서 연말연시에 가족이 함께 이를 먹기도 한다. 몇 해 전에는 ‘소바 한 그릇’이라는 제목의 텔레비전 드라마가 일본열도를 눈물바다로 만든 적도 있었다. 섣달 그믐날에 가난한 세 모자가 소바 한 그릇을 나눠먹는다는 슬픈 이야기였는데 가난하던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켜 일본인들의 눈물샘을 자극한 드라마였다.


소바라는 단어는 면류의 총칭으로도 쓰인다. 예를 들어 라면을 ‘주카소바’(중화소바)라고 하는 것이 그 예다. 일본사람들의 소바 애착은 유별난 데가 있는데 ‘소바연구가’라는 직업이 다 있고, 그들의 연구업적이 상당한 걸 보면 그 애정의 깊이를 알 수 있다.

 

도쿄에만 해도 꼭 소개하고 싶은 소바집이 여럿 있지만 그 중에서 첫손에 꼽고 싶은 집이 ‘간다야부 소바’다. 간다야부 소바는 일본 전역에 수없이 흩어져 있는 ‘야부계’(藪系) 소바집들의 총본산이다. 야부소바는 메밀의 속살로만 만들어서 하얀 빛깔을 띠는 사라시나 소바와는 달리 껍질과 함께 갈아서 연두색을 띠는 소바를 말한다. 말하자면 우리의 막국수 같은 메밀면인데, 투박하지만 메밀향이 강해서 많은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는 면이다. 간다 야부소바가 문을 연 것이 1880년이니 그 역사가 자그마치 127년에 이른다. 간다야부 소바와 함께 도쿄의 삼대 야부소바로 불리는 나미키 야부소바나 이케노하타 야부소바가 모두 이 집의 자손들이 가지를 쳐 나간 것이다. 간다야부 소바는 일본 국내산 최고급 메밀가루만을 고집하며, 반죽도 창업 이래 메밀가루 9 대 소맥분 1의 비율을 지켜 왔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은 소바는 후루룩 소리를 내며 먹는 것이 격식이라는 점이다.

  

도쿄도의 역사적 건축물로 지정되어 있는 고색창연한 식당에서 대발 위에 얹어주는 세이로 소바(630엔)를 쓰유(양념장)에 밑부분만 살짝 담갔다 후루룩 소리를 내 가며 향을 음미 해 보는 것도 일본 여행에 낭만을 더해 줄 것이다. 면을 다 먹고 나서는 남은 양념장에 소바유를 부어서 마시는 맛도 일품이다. 물론 뜨거운 국물에 말아주는 가께소바(630엔)나 덴뿌라소바(1575엔)도 훌륭하다. 전화번호는 03-3251-0287이며, 영업시간은 낮 11시30분부터 저녁 7시30분까지다. 지하철 이와지초역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다.

 

예종석 /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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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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