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양식’의 진정한 원조

예종석 2008.09.24
조회수 5287 추천수 0

[예종석의 맛있는 집]  도쿄 렌가테이(煉瓦亭)

 

 

118354293341_20070705.jpg일본의 음식 분류에는 ‘양식’이라고 하는 장르가 있다. 여기서 양식이란 서양 요리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는 서양 음식이지만 일본에 가서 현지화된 음식을 뜻한다. 흔히 일본의 3대 양식이라고 하는 돈가스와 카레라이스, 고로케를 비롯해 함박스테이크, 오므라이스, 하야시라이스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음식은 본고장에는 없거나 있더라도 아주 다른 모습으로 있는 음식들이다. 1868년의 메이지 유신을 계기로 일본에는 다양한 서양 음식 재료와 조리법이 들어왔고 그것이 일본 고유의 조리법과 접목되어 양식이라는 새로운 스타일의 음식을 만들어낸 것이다.

 

메이지 시대 초기에 귀족의 음식으로 서양 요리를 숭배하기 시작한 일본인들이 메이지 중기의 흡수, 동화 과정을 거쳐 말기에는 일양(日洋) 절충 요리를 만들었고 다이쇼(1912~1926), 쇼와(1926~1989) 시대에는 이를 서민의 음식으로 보급하기에 이른 것이다. 일본 사람들의 절충 능력은 대단한 데가 있어서 나중에는 돈가스와 카레를 합해 가스카레까지 만들어낼 정도다. 1898년에 출간된 <일본 요리법 대전>에는 이미 가쓰레쓰(커틀렛)와 비프스테이크, 프라이, 고로케, 카레라이스 등이 일본 요리로 당당히 올라 있다.

 

일본과 가까이 있고 같은 젓가락 문화권에 속하는 우리나라나 중국이-시기적으로는 좀 차이가 있지만-서양 음식을 보고도 생활 속에 받아들이지 않은 것과 비교해 볼 때, 외래 문화를 쉽게 받아들이는 일본인들의 기질은 상당히 흥미로운 데가 있다. 이에 대해 이시게 나오미치는 그의 저서 <식사의 문명론>에서 “일본의 전통적인 요리 기술은 육류와 기름을 쓰지 않았는데, 그 공백을 메우고자 양식과 중국 요리가 일본의 식생활에 도입되었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식탁을 국적 없는 식탁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덧붙여 <돈가스의 탄생>의 저자 오카다 데쓰는 “일본인이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잡식성이 강한데다 음식에 대한 주체성이 없기 때문에, 전 세계의 음식을 흡수하고 동화해서 향유하는 기술이 생긴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yeah.jpg그런 배경을 가진 양식을 1895년부터 110여년째 도쿄 한복판에서 팔고 있는 집이 ‘렌가테이’이다. 렌가테이는 1대 주인인 기타 겐지로가 돈가스의 전신인 가쓰레쓰를 처음으로 고안해서 팔기 시작한 이래 함박스테이크, 카레라이스, 오므라이스, 하야시라이스 등의 메뉴를 더해 오늘에 이른, 양식의 진정한 원조 레스토랑이다. 말하자면 근대 일본 음식의 발달사를 송두리째 맛볼 수 있는 식당인 셈이다. 연륜과 명성에 걸맞게 음식도 골고루 맛있다. 포크 가쓰레쓰가 1250엔이며 라이스 종류는 1400엔 정도다. 긴자의 미쓰코시 백화점 건너편 뒷골목에 있으며 일요일은 쉰다. 전화번호는 03-3561-3882이다.

 

예종석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첨부
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이메일 : mh@hani.co.kr       트위터 : psolsol      

최신글

엮인글 :
http://kkini.hani.co.kr/6234/8d0/trackback
List of Articles

천천히 더 천천히 와인도 내 걸음도 

  • 손용석
  • | 2009.03.23

토스카나 양조장 ② 넘실거리는 포도밭과 광장에서 즐기는 ‘망중한’ 차로는 못가는 오르비에토 곳곳엔 여유가 넘쳐 토스카나 여행의 매력은 마을 순례에 있다. 토스카나 마을은 저마다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포도밭이 즐비한 시골이지만 눈과 입이 심심하지가 않다. 운수 나쁜 날은 광장서 소매치기 당할 수도 먼저 토스카나 와인의 대명사인 키안티와 키안티 클라...

공기 밟듯 산책하라, 촉촉한 와인처럼 

  • 손용석
  • | 2009.01.16

와인칼럼니스트 손용석씨가 지난 5년 동안 와인으로 유명한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유명 와이너리(와인 양조장)들을 둘러보고 갖가지 와인들을 시음한 경험들을 몇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토스카나 양조장 ① 애호가의 ‘로망’…한 모금에 수백년 역사 ‘음~’ 포도밭 정원 삼아 우아한 식사 곁들이면 ‘아~’ 와인 양조장 순례엔 성경 대신 양조장이 표기된 지도가 필요하다. 성배 ...

대형식당에서 즐기는 딤섬

  • 예종석
  • | 2008.09.24

[예종석의 맛있는 집] 홍콩 ‘제이드 가든’ 홍콩(香港)은 음식의 천국이다. 홍콩은 1842년에 난징조약(南京條約)을 맺은 뒤부터 영국의 식민지가 되어 1997년 중국에 반환될 때까지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그 긴 155년의 세월을 통해 홍콩에 흘러들어간 서구 문명은 기존의 중국 문화와 혼합되어 독특한 홍콩의 문화를 만들었다. 홍콩에는 세계의 음식이 다 있다. 세계에서 인...

한상 떡 벌어지는 진짜 한정식

  • 예종석
  • | 2008.09.24

[예종석의 맛있는 집] 전남 순천 대원식당 순천은 참으로 아름다운 고장이다. 세계 5대 연안습지로 꼽히는 순천만은 70만평에 이르는 갈대밭과 개펄로 나그네들을 압도한다. 이른 새벽의 대대포구에는 일찍이 작가 김승옥이 무진기행에서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같이 빙 둘러싼다”고 했던 물안개가 무성한 갈대밭 위로 아른거린다. 그곳은 문자 그대로 안개나루(霧津)다. 먼동이...

일본 ‘양식’의 진정한 원조

  • 예종석
  • | 2008.09.24

[예종석의 맛있는 집] 도쿄 렌가테이(煉瓦亭) 일본의 음식 분류에는 ‘양식’이라고 하는 장르가 있다. 여기서 양식이란 서양 요리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는 서양 음식이지만 일본에 가서 현지화된 음식을 뜻한다. 흔히 일본의 3대 양식이라고 하는 돈가스와 카레라이스, 고로케를 비롯해 함박스테이크, 오므라이스, 하야시라이스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음식은 본고장에...

해산물 파스타, 시칠리아의 그 맛

  • 예종석
  • | 2008.09.24

[예종석의 맛있는 집] 서울 대치동의 그란구스또 이탈리아에는 “이탤리언 요리는 없고 향토 요리뿐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음식의 지역별 특성이 강하다. 로마 제국이 분열한 뒤 이탈리아는 여러 나라에게 점령되었고, 그 영향은 각 지역의 특성과 맞물려서 지방마다 고유의 음식이 발달하게 되었다. 이탈리아 음식은 지역별로 세분화되어 있지만 크게는 남부와 북부로 나눌...

쇠고기로 조리한 최고의 스키야키

  • 예종석
  • | 2008.09.16

[예종석의 맛있는 집] 도쿄 ‘닌교초 이마한’ 음식에 관심이 좀 있는 일본사람들은 메이지유신(1868년)을 흔히 ‘요리유신’이라고 표현한다. 7세기 덴무(천무)의 ‘살생과 육식을 금지하는 칙서’ 이후 무려 1200년 동안 지켜온 육식금지의 율법을 메이지 ‘천황’이 유신선포와 함께 하루아침에 해금해 버렸기 때문이다. 육식 해금은 당시의 일본인들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인 사건...

봉평메밀냉면, 등심보다 한수 위

  • 예종석
  • | 2008.09.16

[예종석의 맛있는 집] 서울 도곡동 벽제갈비 일본에 소바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냉면이 있다. 냉면이 요즘은 여름음식으로 알려졌지만 동국세시기에는 겨울철 시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지금도 연세 높으신 실향민들 중에는 옛날 이북에서 추운 겨울밤에 덜덜 떨며 얼음이 둥둥 뜨는 동치미에 말아먹던 냉면 맛을 잊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 그런 냉면의 본고장인 평양엘 얼마...

127년 역사, 일본 소바의 으뜸

  • 예종석
  • | 2008.08.19

[예종석의 맛있는 집] 도쿄의 ‘간다야부 소바’ 일본사람들은 면을 참 좋아한다. 하루 한 끼 정도는 면으로 해결하며 길거리에는 메밀국수(소바)나 가락국수(우동), 라면을 파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특히 전철역 근처에는 면 종류를 파는 간이식당들이 흔해서 출퇴근길에 서서 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광경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다양한 면류 중에서도 소바는 그 기원이나 ...

흑돼지 샤브샤브, 비법을 전수받다

  • 예종석
  • | 2008.08.11

[예종석의 맛있는 집] 서울 북창동 ‘꺼멍도새기’ 일본열도 남단 규슈의 남쪽 끝에 자리잡은 가고시마는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하지만 돼지고기로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 온후한 기후와 풍부한 고구마 사료를 먹인 흑돼지는 육질이 부드럽고 담백해서 환상의 흑돼지라고 일컬어질 정도다. 특히 이곳 흑돼지는 일본 대표요리의 하나인 샤브샤브 재료로 사랑받고 있다. 샤브샤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