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 준의 일본 음식이야기
도쿄 고급 주택가 라면집의 오미융합황제면
조달 숙성 조리에 하루씩, 3일 전 예약 필수
작년 말 한국에서는 유명 요리사 에드워드 권이 2011년 대통령 업무 보고 자리에서 “떡볶이에 송이버섯과 고급 한우를 넣으면 10만 원짜리 떡볶이도 만들 수 있다”고 말해 ‘10만 원 떡볶이’가 인터넷 인기 검색어가 된 적이 있습니다. 지금 일본에서는 한 그릇에 1만 엔(한화로 약 13만 5000)짜리 라면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호텔의 고급 바 같은 카운터에 단 8개의 좌석만
보통 라면 하면 한국에서는 인스턴트 라면만을 떠올리지만, 일본에서는 라면 가게 주인이 직접 만든 수프와 생면으로 만든 ‘생(生)라면’이 대표적입니다. 서민들의 든든한 한 끼 식사로, 일본인들에게 사랑 받는 라면 한 그릇의 가격은 대부분 600~800엔 내외입니다. 값비싼 재료를 사용한 고급라면이라도 1500엔~2000엔 정도인 것이 보통입니다. 게다가 최근 몇 년간 일본은 엔고 현상과 디플레이션으로 경기가 침체되어 있는 상황에서 1만 엔짜리 라면이 등장하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이 파격적인 가격의 라면을 선보여 주목을 받은 곳은 도쿄의 고급 주택가인 메구로에 위치한 후지마키 게키조라는 라면집입니다. 고급 주택을 개조한 후지마키 게키조는 호텔의 고급 바를 연상시키는 세련된 카운터에 단 8개의 좌석만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라면집으로서는 최초로 완전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이미 2년 전부터 3000엔짜리 라면을 선보이면서 주목을 받아 온 곳입니다.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이미 2000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는 후지마키 게키조는 2011년부터는 그동안 시범적으로 판매해오던 1만엔 라면 오미융합황제면을 전면에 내세워 판매하고 있습니다.
주방장은 고급 중국요리와 태국 황실요리 전문가
이곳의 사장 겸 주방장인 후지마키는 고급 중국 요리와 태국의 황실 요리 전문가입니다. 그는 서민의 맛이라는 라면의 세계에 ‘고급’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싶어서 이와 같은 구상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태국의 매콤한 전통 해물 수프인 똠양꿍을 베이스로 만든 오미융합황제면은 3일 전에 예약해야 맛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재료 조달에 하루, 재료의 준비와 숙성에 하루, 조리에 하루가 걸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기존 일본 라면의 단순한 수프 맛과는 달리 단맛, 쓴맛, 매운맛, 짠맛, 신맛 (5가지 맛)을 모두 느끼면서 신선한 태국 새우와 오징어, 그리고 파와 신선한 밑 재료에서 나오는 맛과 향을 함께 맛 볼 수 있는 요리가 오미융합황제면입니다.
마치 그림을 그려 놓은 듯, 검정, 빨강, 흰색의 맑은 기름이 물에 풀어놓은 물감처럼 사뿐히 떠 있는 수프. 적당히 굵으면서 혀의 촉감을 한껏 자극하는 촉촉하고 쫄깃한 면.
그리고 맨 위에 올라간 꽃 장식은 라면이라기보다는 고급 퓨전 요리를 연상시킵니다. 젓가락을 대기가 아까울 정도입니다. 맛은 신선한 태국 새우와 오징어에서 나오는 맑은 해산물의 풍미에, 매운 듯 하면서도 맵지 않는, 그러나 먹다 보면 몸에서는 땀이 나게 하는 맑은 매운맛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일본 라면의 맛도, 태국 똠양꿍의 맛도 아닌 전혀 새로운 고급스러운 맛을 느끼게 해줍니다.
고급 재료 전혀 쓰지 않는데도 값 비싼 건 “기술료”
하지만 오미융합황제면은 예상과는 달리 신선한 재료만을 사용했을 뿐 값비싼 고급 재료는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1만 엔이라는 라면의 가격은 재료의 가격이 아니라 자신의 기술료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후지마키.
그의 소망은 자신의 라면가게 회원권이 호텔의 회원권과 맞바꾸어질 수 있는 날이 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는 라면이라는 요리의 다양한 가능성을 넓히고 자신의 음식을 사랑하는 고객과 후배 요리사들을 위해 1만 엔 라면을 만들어 판매하는 데 도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라면 역시 떡볶이와 마찬가지로 서민들이 먹으면서 시작된 음식입니다. 라면의 기원에 대해서는 19세기 말 요코하마의 중국 노동자들이 먹던 중국식 면 요리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며, 따라서 지금도 라면을 중국 국수라는 뜻의 ‘지나 소바’ 혹은 ‘중화 소바’라고 부르는 곳이 많습니다.
글 세이준, 사진 박미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