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요리프로 스타 셰프 요리는 맛있을까

박미향 2011.03.17
조회수 22840 추천수 0

누들로드 이욱정 피디의 르 코르동 블뢰 생존기<5>
요리학교서 잘못하면 “ㅇㅇ처럼 요리하니?” 조롱
0.01% 대박-99.99% 고난 갈림길은 영상의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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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코르동 블뢰’ 근처에는 강의가 없을 때 몇시간이고 박혀 있는 나의 아지트가 있다. 본드 스트리트(Bond Street)의 워터스톤 서점이다. 무엇보다 그곳에는 요리 관련 서적이 많아 즐겁다. 서점 한쪽 전부가 수천 권의 요리책들로 메워져 있다. 몇 달째 드나들고 있지만 아직 절반도 훑어보지 못했을 정도로 많다.
 

 

영국이 세계적인 요리사 군단 보유할 수 있었던 이유
 

우리와 달리 영국에서는 요리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경우가 많다. 가장 눈에 잘 띄는 서점 진열대에는 언제나 ‘스타 셰프’들의 신간 요리책들이 놓여 있다. 이들 유명 셰프들의 북 사인회가 열리면 아이돌 스타 팬미팅에 버금가는 인파가 몰린다. (실제로 책을 산 사람들 중에 과연 몇명이 요리책에 나오는 레시피를 따라 직접 만들어봤는지는 심히 의심스럽지만, 솔직히.) 요리책은 거대한 스타 마케팅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스타 셰프의 레스토랑에는 언제나 손님들이 북적대고, 슈퍼마켓에는 스타 셰프 사진과 이름이 큼지막하게 박힌 치즈, 햄, 파스타 소스 같은 각종 식재료가 넘쳐난다. 주방용품점에 가보면 프라이팬, 냄비, 도마까지 스타 셰프의 브랜드 제품이 불티나게 팔린다. <인사이트 아시아-누들로드>에 출연했던 켄 홈의 웍(wok·중국식 프라이팬)은 영국에서만 백만 개가 넘게 팔렸을 정도다.

 

재미난 점은 고든 램지, 제이미 올리버, 나이젤라 로슨, 릭 스타인, 켄 홈, 레몽 블랑 등 세계적으로 이름난 스타 셰프는 거의 모두 영국인이거나 영국에서 활동하는 셰프라는 점이다. 이렇게 프랑스나 이탈리아가 아닌 영국이 세계적인 스타 셰프 군단을 보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영국에 훌륭한 요리사가 더 많아서일까? 설마 그건 아닐 테고.

내가 찾아낸 이유는 단 한가지! 텔레비전 요리 프로그램을 세계에서 가장 잘 만들기 때문이다. 비비시(BBC)를 필두로 영국의 메이저 채널에서 제작한 요리 프로그램들은 방송쟁이의 눈으로 봤을 때도 그 다양함과 완성도가 빼어나다. 요리 프로그램이 재미있으니 시청률도 높고 그럴수록 스타 셰프의 주가는 더 올라간다. 티브이 없이는 스타 셰프도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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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미 올리버다

 

 

연기 잘하고 입담 좋은 ‘연예인’으로 비쳐
 

이런 호화찬란한 스타 셰프 군단에서도 가장 잘 나가는 이가 있다. 바로 그 유명한 제이미 올리버다. 스무살도 채 되기 전에 우연히 비비시 프로듀서의 눈에 띄어 요리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친근한 이미지와 캐주얼한 쿠킹 스타일로 초대형 히트를 친다. 서른 살이 갓 넘은 지금 그는 연간 수백억원을 벌어들이는 슈퍼스타 요리사이자 사업가가 되었다. 출연하는 프로그램마다 블록버스터가 되고 벌이는 사업마다 대박인 이 행운아는 한마디로, 요리계의 베컴이자 스티브 잡스다.

 

그런데 이런 천하의 제이미 올리버가 ‘르 코르동 블뢰’ 교실에서는 (심하게 표현하자면) 조롱의 대상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재료를 정확히 계량하지 않고 대충 손에 집히는 대로 집어넣었다 치면(내가 잘하는 짓이다) 선생님은 바로 혼을 낸다. “너, 지금 제이미 올리버 식으로 요리하는 거니?” 누군가가 완성된 음식을 접시에 제멋대로 프레젠테이션(요리를 그릇에 모양새 있게 담는 작업)을 했다고 치면 “제이미 올리버가 여기 또 있네”, 또 누군가가 주변정리를 깔끔하게 하지 않고 대충 어질러 놓은 채 요리를 하고 있으면(이것 역시 내 이야기다) “제이미 올리버 비디오에서 배웠니?”라고 비꼰다.

 

‘르 코르동 블뢰’의 프로 요리사들과 학생들의 눈에 비친 제이미 올리버 같은 ‘스타’들은 제대로 된 요리를 할 줄 아는 ‘셰프’라기보다는 연기 잘하고 입담 좋은 ‘연예인’이다. 나도 요리공부를 하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텔리 셰프’(telly chef·우리 반 영국 친구들은 스타 셰프들을 이렇게 부른다)들이 방송에서 선보이는 레시피와 조리 방식이 이전과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티브이 셰프와 보통 셰프 사이 결정적인 차이
 

먼저 티브이 셰프들이 요리하는 스타일을 보면 많은 경우 필요 이상으로 빠르다. 식재료를 얼마나 정확한 크기로 보기 좋게 잘라냈냐보다는 얼마나 빨리 잘라냈느냐가 관건이 된다. 시청자들은 요리사가 번개같은 스피드로 당근을 잘게 썰 때 짜릿한 쾌감을 느낀다. 나중에 요리에 올라간 당근채가 좀 들쭉날쭉해도 그건 어차피 카메라에 잘 잡히지 않는다. 화면에서 중요한 것은 스피드다.

 

스타 셰프들은 카메라 앞에서 요리를 할 때, 밀가루든 버터든 꼼꼼히 계량한 다음 넣는 법이 없다. 그냥 시원스럽게 대강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넣어 버린다. 제이미는 속좁게 계량컵의 눈금을 읽느라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가끔 묘기 프로그램에 보면, 한번 쥐면 밥알 수가 정확히 300개씩 나오는 장인들도 있긴 하지만 현실 세계 대다수 요리사들은 제이미 같은 ‘신의 손’을 갖고 있지 못하다.

또 티브이 셰프들은 요리 중간에 간을 보고 재료를 더 첨가하거나 수정하는 법이 없다. 실제 요리사들은 레스토랑에서 조리할 때 끊임없이 맛을 보면서 크고 작은 수정을 계속한다. 하지만 티브이 프로그램의 요리사들은 이런 중간 과정들은 가뿐하게 건너뛴다. 왜 그럴까. 티브이에서 이런 작은 반복과 수정 동작들은 왠지 ‘없어 보이는’ 액션이기도 하고 참을 수 없이 지루해 보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티브이 셰프와 보통 셰프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실제 요리사들이 만든 음식은 수많은 손님들의 적나라한 최종 심사를 거쳐야 하지만 요리 프로그램의 경우는 스타 셰프 혼자만 그 맛을 평가한다. 수많은 프로그램을 보았지만 정말 단 한명의 스타 셰프도 자기 요리를 맛보고 “이거 별로입니다”라고 말한 경우는 없었다. 가끔씩 다른 출연자나 진행자가 맛을 보기는 하지만 카메라가 돌아가는데 ‘스타님’의 면전에서 “이거, 왜 이리 짜지요”, “무슨 맛이 이래”라고 솔직하게 실토할 만큼 배짱이 두둑한 사람 역시 본 적이 없다.

 

설사 그랬더라도 그런 ‘눈치 없는’ 인터뷰는(내가 담당 피디라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마 편집에서 사정없이 날아갈 것이다. 확실히 스타 셰프는 다른 요리사들이 갖지 못한 엔터테이너로서의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프로들도 인정하는 실력을 갖춘 ‘진짜’들도 있다. 하지만 입담과 연기력이 아닌 순수한 요리 그 자체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능력을 지닌 진정한 셰프들은 티브이 밖에 훨씬 더 많다.     
 

깨끗이 비운 접시가 주방으로 돌아왔을 때 느끼는 보람

 

0.01%의 행운을 거머쥔 제이미 같은 천상의 별이 아닌 99.99% 땅 위의 요리사가 걸어야 하는 길은 고생길이다. 뜨거운 주방에서 하루 10시간 넘게 제때 밥 한끼 챙겨 먹지 못한 채 버텨야 한다. 그렇다고 떼돈을 벌기도 어렵고 휴가 한번 마음 놓고 떠나기도 힘들다. 손님들이 맛있게 먹고 깨끗이 비운 접시가 주방으로 돌아왔을 때 느끼는 작은 보람에서 큰 행복을 찾는 자만이 끝까지 갈 수 있는 어려운 길이다.

제이미 올리버의 요리책이 <해리 포터>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신문에 실렸던 날, 하루 종일 우리들은 어찌하여 그런 ‘엉성한 레시피’에 사람들이 열광할까 고민했다. 평균적인 요리사의 연봉으로 도대체 몇 백년을 일해야 제이미의 한달 수입을 벌 수 있을까 계산하다 괜히 맥이 풀리는 날이었다.

학교 끝나고 돌아오는 늦은 밤, 어두운 빌딩 뒤쪽, 저녁 타임을 막 끝낸 셰프 한 사람이 벽에 기대어 쉬고 있었다. 담배 연기 사이로 보이는 그의 등이 지쳐 보였고 마음이 왠지 짠해졌다.
 

글 KBS피디(www.kbs.co.kr/cook), 사진제공 이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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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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