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콕콕 박힌 눈동자로 “누나 맛 어때요”

박미향 2011.03.31
조회수 13733 추천수 0

서울 시내 이 잡듯이 뒤져 레스토랑 터 잡아
프랑스 전통 오리다리, 겉은 바삭 속은 탱탱

 

 

 

img_001.jpg
루이쌍끄팻덕

 

 

밤 10시. 레스토랑에는 손님들이 가득하다. 불판이 훤히 보이는 주방은 소란스럽다. 요리사들이 지글지글 볶고 굽는 모습이 <사랑의 레시피>다. “아! 지금은 바빠서 조금 한가해지면 올게요.” 프렌치 레스토랑 ‘루이쌍끄’의 오너 셰프 이유석(31)씨가 한마디 남기고 사라진다.

 

이씨를 처음 안 건 지난해 여름이었다. ‘맛의 세계’를 여행하다 보면 요리사들을 만나게 된다. 다이아몬드보다 더 빛나는 눈동자를 잊을 수 없었다. 당시 그는 자신의 레스토랑을 열기 위해 서울시내를 이 잡듯 뒤지면서 터를 알아보고 있었다. 김삿갓이 2000년대 서울에 왕림한 것처럼 발품을 팔았다. “레스토랑 자리, 이유석 셰프한테 물어봐요.” 부동산업자들이 오죽하면 이랬을까.
 

 

스무살부터 현장에서 구르며 오로지 요리만
 

11시가 넘어서야 그를 겨우 만날 수 있었다. 그에게 레스토랑을 열고 가장 힘든 점이 뭐냐고 물었다. 대답은 뜻밖이었다. ‘요리’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어떤 아르바이트생은 연락도 없이 나오지 않고 문자로 알바비 보내달라고 계좌번호만 보내는 거예요.” 종업원 고용은 레스토랑 업주가 가장 골치 아파하는 문제다. “미국인들이 시비를 걸어 혼난 적도 있었어요.” 루이쌍끄의 이름 앞에는 ‘개스트로 펍’(gastro pub)이 붙는다. ‘개스트로 펍’은 펍 같은 가벼운 분위기에 ‘파인 다이닝’(fine dining·코스요리에 와인리스트까지 갖춘 정찬) 개념을 접목한 레스토랑이다.

 

“펍은 시끄럽고 떠들썩해야 하는데, 여긴 너무 조용해. 맥주 종류도 너무 적어.” 미국인들은 루이쌍끄에서 이렇게 불만을 터뜨렸다. 레스토랑의 성격은 주인장이 정하는 법. 이씨는 “처음엔 맥주가 10가지였는데 찾는 이가 적어서 뺐다”고 말했다. 이후 ‘프렌치’를 붙였다. ‘프렌치’를 단 이유는 그의 요리 대부분이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막내 요리사로 일하면서 배운 것들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만 레스토랑 16곳을 돌며 요리를 익혔다.

 

그는 유명한 요리학교를 졸업하지도, 세계적인 호텔에서 경력을 쌓지도 않았다. 스무살부터 그야말로 ‘현장’에서 구르며 실력을 닦았다. “요리사는 주방을 지켜야 합니다. 오로지 실력으로만 얘기하려고 합니다.” 그의 요리 철학이다. 그가 빚은 맛은 열정이 오장육부를 달구는 맛이다. 그의 곁에는 프랑스에서 요리를 공부한 여자친구 김모아(29)씨가 있다. 마치 숟가락 몇 개 놓고 살림살이를 시작한 앳된 신혼부부처럼 두 사람의 사랑은 살갑고 풋풋하다. 사랑은 ‘요리를 타고’ 전해진다.
 

 

겉멋은 버리고 한 접시에 딱 3가지만
 

그의 ‘팻덕’은 장인의 수공예품 같다. 와인을 이용한 프랑스 서남부 시골 스타일의 오리다리 요리라고 한다. 껍질은 포크를 들이밀수록 바삭함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사진가 민병헌의 뽀득뽀득한 한 장의 사진이 주는 묵직함 같다. 껍질 속의 살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짙은 와인색 껍질을 벗자 결이 촘촘히 줄 서 있는 오리다리 살이 인사한다. 탱탱하면서 쭉쭉 늘어지는 홍시처럼 부드럽다. 한껏 취해 몽롱해지는 찰나, 감자퓌레와 버섯볶음이 접시 위에서 빤히 쳐다보고 있다.

 

이씨의 요리는 한 접시에 3가지만 올라가는 것이 특징. 요란한 장식도 현란한 포장도 없다. 팻덕은 24시간 오리다리를 염장한 뒤 낮은 온도의 기름에 넣고 1시간50분 정도 익힌다. 기름에 재워두었다 식탁에 낼 때 15분 정도 오븐에 굽는다. 마치 양념치킨의 소스를 바르듯 그만의 소스를 바르면서 굽는다.

“누나, 맛이 어때요?” 보석처럼 빛나는 눈동자로 물어본다. 세상에 가장 빛나는 맛이 있다면 열정이 콕콕 박힌 음식이다. 그의 맛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귀중한 자산, 열정이 보인다.(‘루이쌍끄’ 02-547-1259)

글·사진 박미향  mh@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태그
첨부
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이메일 : mh@hani.co.kr       트위터 : psolsol      

최신글

엮인글 :
http://kkini.hani.co.kr/8751/9a2/trackback
List of Articles

은빛바다 그 밑에 금테 두른 요놈들

  • 박미향
  • | 2011.04.13

 충남 서천, 제철 주꾸미 ‘소라방잡이’ 어선 동승기 주꾸미어선 대광호의 선장 김진권씨(사진왼쪽)과 광호씨 서쪽 바다의 봄은 희뿌연 새벽안개를 뚫고 출항하는 주꾸미어선에서 시작한다. 주꾸미는 지금이 한창이다. 산란기를 맞아 알이 꽉 찬 암컷들이 잡힌다. 충남 서천군 서면 홍원항은 새벽길을 나서는 어선들로 분주하다. 지난 3일 아침 6시, 주꾸미어선 대광호의 ...

식재료로만 생각했던 그와 후루룩 쭉쭉

  • ekamoon
  • | 2011.04.07

 이런 탐라국에서 내 미모에 반한 놈이 개라니  그가 이끈 음식점이 내 이름과 같은 ‘미향’, 허!      “길을 걸었지/ 누군가 옆에 있다고/ 느꼈을 때/ 나는 알아버렸네/ 이미 그대 떠난 후라는 걸…마음은 얼고 나는 그곳에서 서서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지.”  제주도 서귀포시 남단의 한 어촌마을. 낮은 지붕과 우윳빛 담장이 멋스럽다. 제주도가 고향인 ㄱ기자를 ...

열정 콕콕 박힌 눈동자로 “누나 맛 어때요”

  • 박미향
  • | 2011.03.31

서울 시내 이 잡듯이 뒤져 레스토랑 터 잡아 프랑스 전통 오리다리, 겉은 바삭 속은 탱탱 ▲ 루이쌍끄팻덕 밤 10시. 레스토랑에는 손님들이 가득하다. 불판이 훤히 보이는 주방은 소란스럽다. 요리사들이 지글지글 볶고 굽는 모습이 <사랑의 레시피>다. “아! 지금은 바빠서 조금 한가해지면 올게요.” 프렌치 레스토랑 ‘루이쌍끄’의 오너 셰프 이유석(31)씨가 한마디...

이란 커리가 있으면 이런 카레도 있는 거다

  • 박미향
  • | 2011.03.25

내 나이 서른여섯. 친구 G와 함께 북한산 밑에 산다. 직장에 다니는 고로 요리를 하는 건 일주일에 토요일 아점 한 끼뿐. 밥 해먹는 횟수가 적으니 요리 실력은 당최 늘질 않는다. 그래도 관대한 입맛으로, 충분치 않은 맛은 상상으로 보충해가며 기껍게 먹는다. 그렇다. 나는 관대하다. 적어도 입맛만큼은. 동남아발 각종 향채를 즐기고 낯선 음식도 가리지 않는다. 오리 ...

맛이라면 라면 그 이상의 라면 [2]

  • 박미향
  • | 2011.03.24

‘뻔한 맛’ 거부하는 서울 라면집 탐방기 ‘생활의 달인’표 특면의 비법…1만원도 싸다 메뉴 무려 20가지…특별한 재료 한 가지 더   <남자의 자격>의 ‘남자 그리고 아이디어, 라면의 달인’ 편에 등장한 라면들은 재미있다. 매콤한 국물에 와인이 들어가는가 하면 버거가 고명으로 올라간다. 방아잎이나 파인애플이 들어가기도 한다. 닭 육수로 국물을 낸 이경규의 ‘꼬꼬...

탱탱하고 쫄깃한 쭈꾸미같은 ‘봄 사랑’

  • 박미향
  • | 2011.03.24

청순한 그와 통통한 그, 연애는 누가? 당당한 미소면 핑크빛이 될 수 있으리   ▲ 레스토랑 '봄봄'의 쭈꾸미 파스타 30대 초반의 ㅊ은 163㎝가 넘는 정갈한 키에 하얀 피부, 긴 생머리, 청순한 외모의 후배다. ㅊ과 동갑인 후배 ㅅ은 160㎝가 채 되지 않는 작은 키에 통통한 볼살, 성격 좋아 보이는 외모다. 전자는 외모만 보자면 사랑을 12번도 더 했을 것...

베벌리힐스를 요리할 무림고수 같은 그

  • 박미향
  • | 2011.03.17

20년 간 호텔 요리사 박차고 도전 또 도전 밤이 깊어질수록 술잔도 익어 열정에 데여 ▲ 닭고기덮밥 베벌리힐스는 다. 정답은? 미국, 스타, 로스앤젤레스 등 … 사람마다 다르다. 내 정답은 ‘루이스 킴’이다. 루이스 하인(사진가)도 아니고 루이스 캐럴(<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지은이)도 아니고, ‘루이스 킴’이라니! 루이스 킴(44)은 요리사다. 그는 20년간 신라호텔에...

싱글몰트 센 맛에 빠진 여성 는다

  • 박미향
  • | 2011.03.10

'위스키 라이브 서울 2011' 만취 대신 독한 향·맛 자체 즐기는 새 음주문화 ▲흔들었을 때 흐르는 정도는 알코올 도수와 숙성연도를 알려준다. 천천히 흐를수록 도수가 높고 숙성연도가 오래된 것. 싱글몰트 위스키는 튤립 모양 잔에 마시는 게 좋다. “최근 위스키에 관심이 커졌어요. 동호회도 가입했고 싱글몰트 위스키에 대해서 공부도 시작했어요.” 지난달 ...

‘날것’ 그대로인 그와 삼치회, 정이 팔딱팔딱 [3]

  • 박미향
  • | 2011.03.10

경계선에서 아슬아슬, 알싸하고 고소한 그 맛처럼 전남선 “고시 주쇼”, 통영에선 “망에 있는교” 해야   ▲ 남해바다의 삼치회 내 친구 ㅇ의 어린 시절 꿈은 역사의 현장을 놓치지 않는 사진가였다. 도로시아 랭처럼 이주농민들의 삶을 찍거나 루이스 하인처럼 거대한 공장에 갇힌 노동자를 찍거나 제임스 나트웨이처럼 폭탄 터지는 전쟁터를 누비는 것이었다. 낸 골딘처럼...

춘삼월엔 “누나”라던 그와 ‘꿩 먹고 알 먹고’

  • 박미향
  • | 2011.03.03

제대로 된 냉면엔 꿩고기가 제격, 역시 ‘겨울맛’ 푸욱 고아도 쫄깃쫄깃…똥과 털 빼고는 다 먹어   ▲꿩냉면 사진기자들는 봄이 오면 바빠진다. 봄이 만개하기 전에 봄이 오는 소리를 사진에 담아야 한다. ‘계절 스케치’라고 부른다. 남쪽에 때이르게 핀 꽃들이 피사체가 된다. 계절 스케치의 소재로 음식이 등장할 때도 있다. 냉면이다. 음식이 활용되는 예는 냉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