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로만 생각했던 그와 후루룩 쭉쭉

ekamoon 2011.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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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탐라국에서 내 미모에 반한 놈이 개라니
 그가 이끈 음식점이 내 이름과 같은 ‘미향’, 허!
 


 
 “길을 걸었지/ 누군가 옆에 있다고/ 느꼈을 때/ 나는 알아버렸네/ 이미 그대 떠난 후라는 걸…마음은 얼고 나는 그곳에서 서서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지.”
 제주도 서귀포시 남단의 한 어촌마을. 낮은 지붕과 우윳빛 담장이 멋스럽다. 제주도가 고향인 ㄱ기자를 너무 닮은 아이들이 모여든다. “이거 카메라예요?” 삐뚤빼뚤 아무렇게 자른 앞머리, 하늘로 제멋대로 솟은 두상, 한 손에 든 종이컵에는 떡볶이가 들어 있었다. “떡볶이 맛있어?” “사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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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을 떠나보내고 섬 바람을 풍족하게 맞고 있는데 ‘누군가 옆에 있다’고 느껴졌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슈렉>의 장화고양이처럼 빤히 나를 쳐다보는 ‘호순이’. 이런! 탐라국에서 내 미모에 반해 졸졸 따라온 ‘놈’이 개라니! 개를 ‘친구’보다는 ‘식재료’로 생각했던 나로서는 그놈이 부담스럽다. 놈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나를 잡아끌기 시작했다. 애정이 잔뜩 묻은 흐느적거리는 표정으로!
 


 맛이나 고기 얹는 방식이 일본 돈코쓰라멘과 닮아
 


 호순이가 끌고 간 곳에는 놀랍게도 ‘미향’이 있었다. 음식점이다. 제주도에서도 미향을 만나다니!(전국 방방곡곡에 음식점 ‘미향’은 많다) 호순이는 미향에 산다. 두 살이다. 진돗개와 사냥개의 피가 반씩 섞인 놈이란다. 매끈한 피부, 목덜미부터 꼬리까지 길게 이어지는 유연한 줄무늬, 총명한 눈동자…. 볼수록 사랑스럽다. “암컷인데도 예쁜 여자를 좋아해요.” 미향의 주인이 말한다. 낯선 곳에서 만난 내 이름은 반갑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다.
 미향은 관광지에서는 볼 수 없는 평범한 제주도 음식점이다. 차림표에는 ‘고기국수’, ‘벵어돔김치찜’, ‘짜투리연탄구이’ 등이 적혀 있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 당연 고기국수다. 고기국수는 제주도를 대표하는 향토음식이다. 돼지고기 삶은 물에 면을 말고 돼지고기 조각을 얹어 먹는 국수다.
 혼례나 집안 잔칫날 먹었다.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한국전쟁 이후 먹기 시작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1970년대 육지 사람들에게도 알려져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맛이나 고기를 얹는 방식이 일본 돈코쓰라멘과 닮았다. “제주도는 소를 잡지 않아요. 잔칫날 기른 돼지를 몇 마리 삶고, 그 물을 이용했죠. 요즘은 돼지 잡뼈를 많이 사용해요.” 제주도 향토음식연구가 김지순씨의 설명이다.
 


 ‘나랑 밥’의 최초의 동물 주인공, 호순이!
 


 미향의 고기국수는 전통적인 고기국수와 달랐다. 국물은 멸치, 무, 대파 등으로 우린 물과 돼지고기 삶은 물을 반씩 섞었다. 고명으로 올라간 돼지고기 조각은 된장 등을 넣어 삶은 돼지고기가 아니어서 독특한 풍미는 없다. 소박하게 삶은 돼지고기 자체였다. 미향의 주인 허춘자(62)씨는 “외지 사람들 입맛을 생각해서” 멸치 국물을 사용한다고 했다. 요즘 제주도는 허씨처럼 멸치 국물과 돼지 잡뼈를 우린 물을 반씩 섞는 집들이 생겨나고 있다. 음식은 시대를 따라 진화하기 마련!
 자리를 잡고 면을 쭉쭉 당겨 후루룩 입안으로 빨아들이는데 호순이가 아예 내 앞에 자리를 잡았다. 면은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묘기를 부린다. 면 한 젓가락 올릴 때마다 호순이와 눈이 마주친다. 흐뭇한 표정이다. ‘나랑 밥’의 최초의 동물 주인공, 호순이! 그날 친구가 되었다. (‘미향’ 064-794-5558/남편 현정호씨가 직접 낚시로 잡은 생선을 이용한 ‘벵어돔김치찜’도 신선하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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