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바다 그 밑에 금테 두른 요놈들

박미향 2011.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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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서천, 제철 주꾸미 ‘소라방잡이’ 어선 동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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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꾸미어선 대광호의 선장 김진권씨(사진왼쪽)과 광호씨

 

 

서쪽 바다의 봄은 희뿌연 새벽안개를 뚫고 출항하는 주꾸미어선에서 시작한다. 주꾸미는 지금이 한창이다. 산란기를 맞아 알이 꽉 찬 암컷들이 잡힌다. 충남 서천군 서면 홍원항은 새벽길을 나서는 어선들로 분주하다. 지난 3일 아침 6시, 주꾸미어선 대광호의 선장 김진권(51)씨가 ‘광호’를 깨워 아침밥을 먹는다. “오늘 내가 좀 늦었어, 서두르자.” 광호는 인도네시아에서 온 아프리 얀또(22)의 한국 이름이다. 김씨가 배의 이름을 따서 지어주었다. 광호씨가 대광호에서 일한 지는 1년 반이 넘었다. “고향이 어디예요?” 그는 짧은 한국말로 “인도네시아”라며 말끝을 자른다. “인도네시아 자바섬요?” “응응.” 역시 짧다. 인도네시아 하면 자바섬이 떠오른다. 그의 고향이 정말 자바섬일까, 귀찮은 김에 ‘응응’을 외친 것은 아닐까? 아담한 키에 까만 피부, 간간이 던지는 미소, 선한 눈빛은 영락없이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이다. 그는 8남매의 장남이라고 했다. 이곳 홍원항에는 광호씨와 같은 인도네시아인들이 6명 있다. 외국인노동자들은 우리 땅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이웃이다.

 “광호는 머리가 좋아. 그중에서 대장이지.” 김씨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아침 7시, 대광호는 바다를 요란하게 달린다. 우렁찬 엔진소리는 오페라 <투란도트>의 나팔소리다. 세상의 고요를 모두 쓸어 삼켜버린 은빛바다를 깨운다. 어디서 부는지 알 수 없는 바람은 짠 내로 단련된 어부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매만진다. 차지 않다. 심장을 가볍게 두드리는 봄바람이다.

아침 7시20분, 대광호는 빨간 깃발이 펄럭이는 곳에서 멈춘다. 깃발의 색은 어부마다 다르다. 이름도 적혀 있다. ‘깃발실명제’다. 바다에는 장난감 요트처럼 보이는 이런 깃발들이 곳곳에 꽂혀 있다. 배들이 그 주변을, 먹이를 노리는 독수리처럼 뱅뱅 돈다. 모두 주꾸미어선들이다. 주꾸미어선은 2톤, 5톤, 10톤, 20톤 이상, 4가지가 있다. 대광호는 5톤짜리 배다. 10톤 이상의 배들은 안강망(조류를 이용해서 그물로 고기를 잡는 어법)을 던진다. 배를 타고 1~2시간 나가는 먼바다는 그들의 차지다. 5톤 이하의 어선은 빈 소라를 이용해서 주꾸미를 잡는다. 소라방잡이라고도 한다. 전통적인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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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호'씨가 주꾸미 소라방을 끌어올리고 있다 

 

 

 

줄줄이 담근 빈 소라에 집 찾는 주꾸미 모여들고

  
“광호! 시작하자.” 김씨가 시작종을 울리자 광호씨는 대나무 깃대를 끌어올려 소라 줄을 도르래에 건다. 대나무는 다시 바다로 던진다. 4~5m 길이의 대나무 작대기는 바다에 수직으로 꽂혀 있다. 그 끝에는 60~70㎝ 간격으로 소라 묶인 줄이 달려 있다. 80~90개다. 줄을 잡아 올릴 때마다 소라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따라온다. 소라는 주먹만한 크기다. 어선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이런 줄이 3~4m 간격으로 꽂혀 있는 대나무 깃대 사이에 약 10줄이 있다. 김씨는 500개의 대나무 깃대를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 200개를 바다에 담가둔다고 한다. 대나무 깃대를 꽂는 위치는 매년 추첨으로 정한다. 김씨는 한번 바다에 나가면 15구간씩 “물을 본다”. 소라가 있는지 보러 간다는 소리다. 주꾸미잡이는 이 소라들을 끌어올려 ‘놈들’을 바구니에 담는 작업이다. 빈 소라는 봄철 주꾸미의 더없이 포근한 안식처다. 지구의 모든 생물은 모진 운명을 타고나는 법. 광호씨가 매섭게 소라들을 노려보는 순간 그 안에 꼭 박혀 있는 물컹한 주꾸미는 갈고리에 걸려 바구니 안으로 팽개쳐진다. 꼬물꼬물 발버둥을 쳐보지만 소용없다. 요즘은 중국산이나 칠레산도 많다고 한다. 국내산 주꾸미는 구별하는 법이 있다. 머리와 다리 사이를 살피면 손톱만한 크기의 ‘금테’가 있다. 이 노란빛 둥근 무늬가 진할수록 좋은 ‘놈’이다.
오전 9시, 탁탁 배 난간에 부딪히면서 올라오는 소라는 빈방이 많다. 광호씨는 말이 없다. 김씨도 간간이 얽히고설킨 줄을 풀기 위해 나서는 것 외에는 조용하다. 침묵이 대광호를 지배한다. 숨소리조차 내뱉기가 조심스럽다.
어째 오늘은 운수가 사나워 보인다. 조업을 시작한 지 2시간이 넘었지만 빈 소라만 올라온다. 갈고리를 쥔 광호씨의 손이 나른하게 허공 어딘가를 정처 없이 헤맨다. 소라 탓일까! 주꾸미는 새것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놈들이다. 색이 밝고 반짝거리는 새 소라일수록 주꾸미들이 꼬인다고 한다. 어부들은 개당 400~500원(줄에 매달린 완제품은 개당 600원) 하는 소라를 자주 구입할 수밖에 없다. 30년 전만 해도 개당 30~40원 하던 제주산 뿔소라를 썼다고 한다. 김봉규 소형선박회장은 “뭐, 그게 특별히 좋아서가 아니라 다른 게 없어서지”라고 말한다. 지금은 중국, 북한, 중동산 소라를 쓴다. 튼튼하고 색이 곱고 싸기 때문이다. 선주당 적게는 5000~1만개, 많게는 3만~5만개를 소유한다. 줄도 예전에는 지금처럼 튼튼한 나일론이 아니었다. 짚신을 만들 듯 새끼줄을 꼬아 썼다. 한철이면 해져서 겨울날 어부들은 이듬해 쓸 줄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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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가지 쫄깃한 맛…고향 참맛은 주꾸미김국

 
오전 11시30분, 대광호를 향해 한 어선이 다가온다. 김씨가 긴 침묵을 깨고 말을 한다. “어, 형님, 이제 들어갈라고.” 눈치껏 알아들었는지 광호씨는 능숙한 솜씨로 줄을 감고 바구니에 물을 뿌려 정리한다. “4㎏ 정도네요. 한창인 요즘에는 50~60㎏은 해야 제대로 잡은 건데.” 김씨가 빨간 바구니를 아쉬운 듯 바라보며 말한다. 수온이 낮아서란다. “3~4년 전만 해도 하루 평균 200㎏씩 잡았어요.” 양이 적은 만큼 가격은 올라간다. 지난 2일 기준 주꾸미 경매가는 1㎏당 3만1500원이었다. 전날은 2만8500원이었다. 작년 평균 1만7000~2만원 하던 것에 견주면 많이 오른 편이다. 대광호는 해가 뜨는 아침 6시께 출항해 오후 2~3시가 돼야 뭍으로 들어온다. 자고로 배 위에서 맛보는 음식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드는 법이다. 이날은 그런 호사를 기대할 수 없었다.
대광호는 주꾸미철이 지나면 꽃게잡이에 나선다. 가을에는 전어를 잡는다. 14년 경력의 어부 김진권씨는 광호씨와 한조가 돼서 1년을 그렇게 바다에서 산다.
조씨가 잡은 주꾸미는 육지인들에게는 어떤 맛으로 소비될까? 홍원항의 횟집들과 ‘2011 동백꽃 주꾸미 축제’(~4월15일, 서천군 서면 마량리)의 음식 부스에는 ‘주꾸미회’, ‘주꾸미샤부샤부’, ‘주꾸미전골’, ‘주꾸미무침’, ‘주꾸미볶음’, ‘주삼불고기’ 등의 메뉴가 적혀 있다. 변신이 놀랍다. 정작 지역민들은 어린 시절 먹은 ‘주꾸미김국’을 잊지 못한다. 서천이 고향인 강구영(51)씨는 “해장하는 데도 그만인 술국이죠”라고 말한다. 어머니 윤심덕(71)씨의 맛이 그립기만 하다. 주꾸미김국은 먹을거리가 부족한 1970년대 이 지역 향토음식이었다. 멸치, 북어포 등으로 우린 물에 물김(서천은 질 좋은 김 생산지로도 유명하다)을 풀고 주꾸미를 잘게 썰어 같이 익히는데, 알이 꽉 찬 암컷을 넣으면 알이 풀어지면서 마치 쌀밥처럼 보였다. 쌀밥이 귀하던 시절, 형제들끼리 서로 먹겠다고 다투기도 했다. 사라져가는 향토음식은 우리 모두의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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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꾸미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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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꾸미샤부샤부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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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이메일 : mh@hani.co.kr       트위터 : psol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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