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과 한껏 취한 봄날 벚꽃동산의 맛

박미향 2011.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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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준 셰프의 ‘바라치라시’…샤리 위 가득한 해물 조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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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치라시

 

“오겡끼데스까~?(잘 지내나요?) 오겡끼데스까~?” 네모난 모양의 그릇에선 소리가 난다. 봄날 속절없이 떠나버린 ‘사랑’을 향해 안부를 묻는다. ‘바라치라시’에서는 아름다워서 애틋하고 가슴 아린 사랑이 울린다. 마치 천상의 꽃들이 잔치라도 벌인 것 같다. 한국의 일식당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요리다. “일본에서는 3살, 5살, 7살이 된 아이들에게 ‘시치고산’(七五三, しちごさん)이라는 잔치를 해줍니다. 이때 만드는 대표적인 요리가 ‘바라치라시’예요. 생선을 잘게 썰기에 아이들도 숟가락으로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죠.” 임피리얼 팰리스호텔 일식당 ‘만요’의 권오준(47) 셰프가 <esc> 200호를 맞아 준비한 음식이다. 바라치라시는 만개한 벚꽃처럼 인생이 언제나 풍성하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바라치라시는 언뜻 보면 지라시초밥과 닮아 보인다. 지라시초밥은 생선 조각을 밥(샤리)에 곱게 올린 초밥이 아니라 도시락처럼 넓은 곳에 담긴 밥 위에 생선조각을 얹는 것이다. “지라시초밥과는 조금 다릅니다.” 바라치라시는 잘게 자른 15가지 이상의 재료들이 밥 위에 순서대로 뿌려진다. 샤리 위에 처음 올라가는 것은 오보로다. 오보로는 흰살 생선을 잘게 자른 뒤 삶아서 수분을 제거하고, 설탕 등을 넣고 팬에 7시간 볶아낸 가루다. 밥에 묻혀 흔적도 없지만 혀는 그 깊은 맛을 느낀다. 그 위에 김, 생강절임 등이 올라가면 적당히 간이 밴 호박줄기와 말린 표고버섯이 기다리고 있다. 발표 순서를 기다리는 발레리나들처럼 울긋불긋한 재료들이 뒤를 잇는다. 손톱만한 크기로 자른 흰살 생선들과 한치, 관자가 올라가고 뒤이어 참치와 오이, 아보카도, 장어, 달걀, 무순, 연어알이 등극한다. “일본에서는 고등어초회, 전어 등도 넣는데 우리들 입맛에 맞지 않는 듯해서 뺐어요.” 권씨는 샤리 대신 초장으로 비빈 밥도 좋다고 했다.
 바라치라시는 여러 가지 세상과 수많은 사랑을 한꺼번에 몸 안에 담는 맛이다. 부드러운 왕후의 비단을 만지고 나면 과일향 물씬 풍기는 과수원이 나오고, 이어 잔잔한 바다와 팔딱거리는 생명력이 혀를 휘감는다. 수줍은 사랑이 말을 걸다가, 혼을 빼놓을 만큼 맛난 사랑이 등장한다. 벚꽃 동산에서 연인과 한껏 취해 있는 찬란한 봄날이다. 이렇게 재료마다 다른 질감과 향기는 바라치라시의 큰 장점이다.
 일본에서는 도미도 잔치에 요긴하게 쓰이는 축하음식이다. 우승한 스모선수나 선거에서 이긴 정치인들이 5~6㎏짜리 도미를 들고 활짝 웃는 사진을 일본 신문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축하한다’는 뜻의 ‘오메데타이’(おめでたい)의 ‘타이’는 ‘도미’라는 뜻이기도 하다. 도미는 흰살 생선 중에 왕으로 불릴 만큼 맛이 빼어나다.
 권씨는 17년간 일본에서 요리사로 활동했다. 108년 된 전통일식집 ‘스시하쓰’와 미슐랭 별 셋짜리 레스토랑인 스시쇼계열의 ‘스시사이토’에서 요리사로, 도쿄 쓰키지시장의 ‘스시잔마이’에서 교육자로 일했다. 그도 잊을 수 없는 ‘축하’가 있었다. 일본으로 건너간 지 7년 만에 처음 자신의 단골이 생겼을 때다. “스시하쓰에서 일할 때죠. 일식 요리사는 스시 테이블에서 자신이 마는 초밥을 찾는 손님이 생기는 것이 중요해요. 아내는 ‘이제 프로가 되었네’ 칭찬해주었어요.” 풍성한 맛을 마술처럼 만들어내는 요리사가 그날 잔치음식으로 선택한 것은 나가사키짬뽕이었다. 가격은 1200엔. 도쿄 아카사카에 있는 작은 가게였다. “집에서 가까웠죠. 국물이나 면은 적고 야채와 해물이 많이 들어간 짬뽕이었어요. 지금도 간혹 그 맛이 그립습니다.”
 그는 <esc> 200호에 간결한 덕담을 남겼다. “더 풍성해져라.” 벚꽃이 활짝 핀 것 같은 ‘바라치라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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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준 셰프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 바라치라시 (2~3인분 기준)

재료: 초밥 500g, 참치 80g, 흰살 생선 85g, 계란구이 25g, 아보카도 1/2개, 표고버섯 40g, 호박 줄기 20g, 가리(생강절임) 30g, 오바(차조기잎) 10장, 한치 35g, 관자 20g, 장어 60g

 

만들기
1. 밥 위에 오보로를 올린다.(오보로는 흰살 생선을 삶아서 수분을 제거한 뒤 냄비에 올려 설탕으로 간을 해 7시간 볶은 것.)
2. 아주 잘게 썬 김을 뿌린다.
3. 가리, 오바를 말아서 잘게 썬 뒤 깨에 묻힌다.
4. 호박 줄기, 미리 간을 한 표고버섯을 깍둑썰기해 그 위에 얹는다.
5. 도미 같은 흰살 생선과 참치 등살을 깍둑썰기해 그 위에 뿌린다.
6. 오이, 아보카도, 채소 등과 장어, 계란구이 등을 뿌려준다.
7. 연어알, 무순 등을 뿌려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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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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