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여인 버선발로 뛰어나올걸

박미향 2011.04.27
조회수 12212 추천수 0

한국입양아 엄마의 손맛 스민 ‘뵈프 부르기뇽’ 

 

k.jpg
 

 

파리의 겨울은 유독 습하고 길고 춥다. 그래서인지 봄의 햇살이 그렇게 고맙다. 친구 부부와 봄날 야외스케치를 간 곳은 파리 인근의 강변마을로 샛강 줄기를 따라 집들이 늘어서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이젤을 펴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구름이 몰려오더니 비가 내린다. 비를 피할 마땅한 건물조차 없는 주택가에서 허둥대다 마침 공사 중인 곳의 처마 밑으로 피해 한숨을 돌렸다. 그런데 옆 건물에서 아저씨가 나오더니 철거 중이라 위험하니 조심하란 말을 전하고 돌아선다. 아저씨가 들어가자마자 이내 부인이 또 나오며 혹시 한국인이 아닌지 묻는다. 의아해하는 우리에게 차를 한 잔 대접하고 싶다며 집으로 안내한다. 정원에서 갓 따온 민트를 우려내 따라주며 부인이 들려준 이야기는 20년 전 한국 아이 두 명을 입양해 키웠는데 우리 아이가 그의 큰애 어렸을 때와 너무 비슷해 한국인일 거라고 확신을 했단다. 이후 10년을 한결같이 가족처럼 지낸 그 부부 덕에 프랑스 문화에 대한 이해와 음식 레시피도 풍부해졌다.
 부인인 자닌은 사람들을 초대해 음식 대접하는 것을 기꺼이 즐기는데 저녁식사를 함께 할 사람들을 오전에 불러다 함께 장을 보고 준비하고 정원에서 음료를 마시고 놀다 식사를 한다. 덕분에 자닌의 집엔 포도주 한 병 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갈 수 있어 참 좋다. 그의 요리를 배울 요량으로 곁에서 조수 역을 하는 내가 “얼마나 넣어?”라고 물으면 그는 항상 “적당히!”라고 대답한다. 우리 어머니들의 레시피처럼 적당히. 도마를 거의 쓰지 않는 프랑스 가정에서는 과도만한 작은 칼로 양파며 당근을 손에 쥐고 툭툭 잘라 넣는다. 그래도 맛은 얼마나 훌륭한지. 어머니 손맛이 양념인 건 동서양이 같나보다. 가끔 한국 요리를 위해 칼과 도마를 꺼내 탁탁탁 치면 눈이 동그래져서 “너 요리사 출신이야?”라고 물어본다. 한국 음식 마니아인 그는 내가 요리를 하면 물어본다. “얼마나 넣어?” 나는 “적당히”라고 응수한다. 그의 요리 중 내가 잊지 못하는 음식은 쇠고기로 만든 ‘뵈프 부르기뇽’(Boeuf Bourguignon). 아마 우리가 만난 그날 저녁, 입양한 한국 아이들을 불러다 함께 먹은 음식이기에 더욱 그런가보다. 입양한 둘째 아이가 정체성으로 고민하고 방황할 때의 얘기를 하며 눈물짓던 그. 김치를 담아 한 통 건네면 아들이 좋아한다고 옆에 챙기는 그. 텃밭 가득, 먹지도 않을 깻잎을 심어 놓고 따가라 전화하는 그가 나는 매일 그립다.
 만남의 계기가 됐던 철거된 건물은 지방에 계신 부모님을 위해 새로 짓는 중이었는데 공사 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모시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대신 친구들을 위한 집으로 용도 변경한다면서 건물에 ‘친구집’이라는 한글을 써달란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현판 글을 쓰고 있는데 산책 나온 한국인이 지나가며 속삭인다. “여기 한국 민박집인가 봐!” 누구라도 파리 인근 마을을 지나다 ‘친구집’ 현판이 보이면 문을 두드려 보시라. 그는 당신이 한국인인 것을 한눈에 알아보고 버선발로 뛰어나올 것이다.
 
 
 * 뵈프 부르기뇽(4인분)
 
재료: 쇠고기 아롱사태 800g, 베이컨 100g, 적포도주 400cc, 당근 1개, 양파 1개, 셀러리 1대, 양송이 버섯 4개, 향신료(월계수 잎, 타임, 로즈마리 등) 조금, 버터 50g, 밀가루 1Ts, 다진 마늘 1Ts, 파슬리 조금, 소금·후추 조금씩, 치킨스톡(서양식 닭육수) 500cc


만들기
1. 쇠고기는 3cm 정도 정육면체로 큼직하게 잘라 300cc의 와인에 12시간 정도 절인다.
2. 당근과 양파는 2㎝, 셀러리는 4㎝로 썰고 양송이는 절반으로 자른다. 베이컨은 1㎝ 간격으로 길게 썬다.
3. 달군 솥에 버터를 넣어 녹인 뒤 양파가 흐물거릴 정도로 오래 볶은 다음 마늘을 볶는다.
4. 와인에 절인 쇠고기를 3에 넣고 센 불에서 볶으며 육즙을 가둔다.
5. 4에 준비된 채소와 베이컨을 모두 넣어 볶은 뒤 밀가루를 넣어 잘 섞고 와인 100㏄를 붓는다.
6. 5에 모든 재료가 잠기게 치킨스톡을 붓고 향신료, 소금, 후추를 넣는다.
7. 뚜껑을 덮고 1시간30분 동안 약한 불에 뭉근히 끓인다.
8. 물이 졸아들면 나머지 간을 맞추고 파슬리를 얹어 접시에 담아낸다.
 
Tip. 뵈프 부르기뇽은 부르고뉴 지방의 대표 음식으로 와인에 절여 고기의 잡냄새를 제거하고 약한 불에 뭉근히 끓여내는 찜 요리이다. 미리 준비할 수 있어 주로 가족 모임 등 여럿이 함께하는 식사를 준비할 때 편하다.
1. 쇠고기를 와인에 절일 때 가끔씩 뒤적여야 골고루 간이 밴다.

2. 양파를 오래 볶으면 당도가 증가하며 감칠맛이 난다.

3. 치킨스톡은 통조림 제품과 마른 큐브로 나온 것이 있는데 어느 것을 써도 괜찮다. 없으면 물을 써도 무방.

4. 근육이 많은 고기라도 뭉근히 끓이면 도가니 맛이 나니 질길까 걱정 안 해도 된다.

5. 너무 오래 끓이면 고기가 질겨지니 2시간을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

6. 혹 남은 음식이 있다면 고기를 작게 잘라 카레를 조금 섞어 밥에 얹어 먹어도 별미다.

 

글 문영화, 그림 김부연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첨부
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이메일 : mh@hani.co.kr       트위터 : psolsol      

최신글

엮인글 :
http://kkini.hani.co.kr/9262/edf/trackback
List of Articles

‘글쓰는 요리사’가 찾아낸 ‘오래된 식당’의 장수 비결은...

  • 끼니
  • | 2018.09.03

‘노포의 장사법’ 펴낸 박찬일 요리사 ‘글 쓰는 요리사’ 박찬일씨. 지난달 31일 ‘글 쓰는 요리사’ 박찬일(53)씨는 ‘2018 스페이스 오디티’ 행사에서 평양냉면을 주제로 강연을 했다. ‘2018 스페이스 오디티’는 음악 분야의 일꾼들을 서로 연결해 콘텐츠를 제작하는 회사인 ‘스페이스 오디티’가 연 콘퍼런스다. 이 행사엔 패션, 음식,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력을 ...

남북 정상이 먹는 달고기, 벌써 품절이라네요

  • 끼니
  • | 2018.06.22

‘남북정상회담 만찬’으로 ‘친절한 기자’에 오랜만에 등판한 음식문화 담당기자 박미향입니다. 27일 역사의 새 장을 연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처음 꺼낸 말은 ‘평양냉면’이었습니다. 그는 “어렵사리 평양에서 평양냉면을 가져왔다”며 “(문 대통령이) 편한 마음으로 좀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다”고 말했지요. 시인 백석이 사랑한 슴슴한 평양냉면이 역사적인 회담...

쥐, 정말 치즈를 가장 좋아할까?

  • 끼니
  • | 2018.04.09

이기적인 미식 욜로 푸드로 뜬 치즈 수백 가지 제조법 분류 참조하면 고르기 수월해 빵과 먹으면 더 맛있어 한국도 생산 농가 늘어나 대표적인 ‘욜로 푸드’ 중 하나인 여러 가지 치즈.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치즈아카데미 프로마쥬 김은주(37) 대표는 치즈 한 조각과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치즈는 와인 안주로 알려진 서양의 발효식품이다. 그는 “진한 ...

실존적 고민 빠뜨린 ‘쓰나미케이크’

  • 박미향
  • | 2011.07.01

  융통성 없는 파티스리 수업에서 인생을 배우다   파티스리(제과제빵)의 세계는 퀴진(요리)과 너무도 달랐다. 마치 다른 중력의 법칙을 가진 은하계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파티스리에서 레시피는 바이블이자 꾸란(코란)이다. ‘경전’과 토씨 하나라도 다르게 조리하면 걷잡을 수 없는 재앙이 찾아온다. 예를 들어 레시피에서 달걀노른자 80g만 넣으라면 노른자를 쪼개서라도...

셰프의 자격, 야성이냐 과학이냐

  • 박미향
  • | 2011.07.01

누들로드 이욱정 피디의 르 코르동 블뢰 생존기<10> 퀴지니에와 파티시에…살벌한 라이벌 의식   ‘르 코르동 블뢰’의 학과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프랑스 요리 전반을 배우는 퀴진과 디저트와 빵 만들기를 배우는 파티스리 과정이 그것이다. 나처럼 두 과정을 전부 수강하는 이도 있지만 한쪽만 공부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고 실습교실과 담당교수까지 전부 다르다...

프랑스 갈레트, 한국판 부침개

  • 박미향
  • | 2011.07.01

<문영화, 김부연의 그림이 있는 불란서 키친> 검은 밀로 만든 대중식…전통주 시드르 찰떡궁합    프랑스는 남북한을 합친 면적의 약 2배 반이 넘는 넓은 국토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국토의 80%가 평야와 구릉지인 유럽 최대의 농산물 재배국이다. 한국에 알려진 프랑스는 관광과 명품 수출이 주를 이룬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농업국가라고 스스로를 칭한다. ...

입맛 까다로운 프랑스인 사로잡은 이 맛

  • 박미향
  • | 2011.05.26

“비린내” 김밥 싫다 해도 마늘 뺀 ‘불고기’엔 환호 프랑스인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일까? 캐비아에 샴페인 한 잔 마실 때란다. 1㎏에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철갑 상어알과 최소 3~5년은 포도주 저장고에서 묵히면서 하루에 두 번씩 병목을 돌려줘야 탄생하는 샴페인은 호사스런 음식의 대명사다. 프랑스 초대 대통령이었던 드골 장군은 360가지가 넘는 ...

누들로드 이욱정피디 르 코르동 블뢰 생존기

  • 박미향
  • | 2011.05.26

기말실기시험과 벌인 필사의 결전 2인의 낙제 유력후보 피말리는 경쟁…그리고 반전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초급과정의 최종 관문이자 당락을 결정짓는 ‘파이널 프랙티컬’(Final Practical Test), 기말실기시험이었다. 평소 수업시간의 평가가 아무리 좋아도 소용없다. 이 마지막 실기시험을 망치면 낙제 처리되어 초급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들어야 한다. 상상만 해도...

프랑스 여인 버선발로 뛰어나올걸

  • 박미향
  • | 2011.04.27

한국입양아 엄마의 손맛 스민 ‘뵈프 부르기뇽’    파리의 겨울은 유독 습하고 길고 춥다. 그래서인지 봄의 햇살이 그렇게 고맙다. 친구 부부와 봄날 야외스케치를 간 곳은 파리 인근의 강변마을로 샛강 줄기를 따라 집들이 늘어서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이젤을 펴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구름이 몰려오더니 비가 내린다. 비를 피할 마땅한...

누들로드 이욱정피디 르 코르동 블뢰 생존기

  • 박미향
  • | 2011.04.27

쫓겨난 예비셰프들 “잠깐만 참았더라면…” 주방에 난무하는 욕설…물리적 폭력에는 ‘불관용’ 원칙 요리사들이 등장하는 영국의 티브이(TV) 리얼리티 쇼를 보면 빠지지 않는 캐릭터가 있다. 지상파 방송에서 저래도 되나 할 정도로 말끝마다 비속어를 남발하고 성질나면 접시부터 공중에 날리고 본다. 바로 고함지르는 욕쟁이 셰프다. 폭군의 가련한 희생양은 지옥의 주방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