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알톡톡 공모] Fried Rice? 볶음밥?

조회수 11731 추천수 0 2011.05.31 16:12:14

 대학생이면 누구나 한 번 쯤은 가는 배낭여행, 하지만 15~16년 전만 해도 대학생이 배낭여행을 가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다. 젊은 혈기와 무모함만 가득했던 대학교 2학년, 더 넓은 세상을 보겠다며 유럽 배낭여행을 결심하고 아르바이트로 모아놓은 돈과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단체 배낭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지금이야 베를린의 상징적인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1990년 독일통일의 역사적 장소인 베를린은 분단국가에 사는 열혈 대학생들에게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도시였다. 여행사를 통해 15명의 팀이 꾸려졌고 20박 22일의 일정으로 드디어 7월,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베를린을 경유하는 일정은 없었지만 혼자서라도 베를린은 꼭 가보겠다는 다짐과 함께...

 

 외국이라고는 처음인 시골출신인 나에게 영국에서부터 시작된 일정은 모든 게 신세계 그 자체였다. 사진으로만 보던 유럽풍의 건축이며, 다양한 자동차들, 박물관, 궁전과 보기만 해도 입맛 당기는 본토(!)의 화려한 음식들...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대학생에게 허락된 음식은 익숙한 햄버거나 가격이 저렴한 스낵바에서 파는 양상추, 토마토, 참치 등을 채워넣은 바게뜨과 탄산음료가 대부분이었다. 빵 한 조각을 먹어도 한국에서는 자주 먹지 못하는 음식이라 그런지 그런대로 맛이 괜찮았다.

 

 단체 배낭여행은 10명 이상이 한 팀이지만, 며칠만 지나면 취향과 성격이 맞는 서너명이 짝을 지어서 다니게 된다. 전체 일정의 중반 무렵 드디어 여행의 동선이 베를린과 가장 가까운 시점이 왔다. 아무도 없으면 혼자라도 가겠다는 마음으로 베를린을 함께 갈 사람을 찾았고, 마침 분단조국의 청년으로서 유럽까지 와서 베를린에 가보지 않을 수 없다는 재영이형과 함께 다른 일정을 포기하고서 베를린행 야간열차에 올랐다. 브란덴부르크문과 무너진 베를린 장벽을 보면서 통일에 대한 굳은 의지를 다진 두 청년은 베를린에 온 것만으로도 이번 배낭여행은 큰 의미가 있었다고 스스로 대견해했다.

 

 늘 느끼한 음식과 빵으로 허기를 때웠던 두 청년은 아름다운(!) 도시 베를린에서 마음이 흐뭇해져 그동안 한 번도 먹지 못했던 밥이 먹고 싶어졌다. 가이드도 없는 베를린에서 한국식당을 찾기가 쉽지 않았고 동네 중국집에서 볶음밥 먹던 기억을 떠올려 가까운 중식당에 무작정 들어갔다. 찰기없고 건조한 안남미로 만든 볶음밥이라도 좋으니 밥이 먹고 싶었다. 다행히 메뉴판에는 독일어와 영어가 같이 표기가 되어 있었고 우리는 Fried Rice를 찾았다.

 ‘무슨 볶음밥 종류가 이렇게 많아? 그리고 왜 이렇게 비싸?’

 귓속말을 나누던 우리는 Fried Rice 가운데서 가장 싼 메뉴를 주문했다.

 “Is that all?”(다 주문하신건가요?)

 웨이터가 묻는다.

 우리는 볶음밥이 먹고 싶었고 사실 돈도 별로 없어서 더 주문할 수도 없어서 자신있게 “Yes"라고 대답을 했다.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웨이터, 주방에다 주문을 넣었다.

 

 ‘드디어 밥을 먹을 수 있게 되는구나, 역시 한국 사람은 밥을 먹어야 해. 이 볶음밥이 지금까지 내가 먹은 볶음밥 중에 가장 맛있는 볶음밥이 될거야.’

잔뜩 기대하고 있던 우리에게 웨이터는 ‘먼저’ 만두처럼 생긴 요리를 한 접시에 두개씩 담아왔다. 팥소를 넣은 쌀전병을 튀겨서 나온 요리는 쫄깃하고 달콤했다.

‘오..서비스 좋은데 애피타이저까지 그냥 주다니.’

젓가락질을 서툴러 하는 옆 테이블 독일인들 보란 듯이 우리는 능숙한 젓가락질로 ‘애피타이저’ 맛있게 먹으면서 볶음밥을 기다렸다. 하지만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 우리의 볶음밥은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우리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웨이터에게 물었다.

“Is that all?”(이게 전부인가요?)

당연하다는 표정의 웨이터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Yes"였다.

 

 아! 그랬구나.

 볶음밥이 생각보다 싼 것도, 웨이터가 다 주문한거냐고 물어본 것도, 고개를 갸웃거린 것도, 겨우 볶음밥 하나 먹는데 애피타이저를 갖다 준 것도 다 그래서였구나.

 우리가 주문한 것은 Fried Rice(볶음밥)가 아니라 튀긴 쌀(Fried Rice)전병이었다.

 그렇게 볶음밥은 베를린 하늘 저멀리 날아가 버렸고, 분단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던 열혈 청년 두 명이 화끈거리는 얼굴로 황급히 식당을 떠나면서 남긴 한 마디는,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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