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때 피어난 얼음과 팥의 사랑

박미향 2011.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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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때부터 얼려 나눈 얼음, 일본 팥 음식과 접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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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식탁 위의 쾌락을 위해서라면 벌집을 파헤치고 바람에 흩날리는 밀을 붙잡아 얇은 껍질을 수고스럽게 벗겨낸다. 겨울철 신의 선물, 얼음을 지나칠 리가 없었다. 중국인들은 이미 기원전 8세기께 증발 원리를 이용한 얼음창고를 지었다. 눈이나 얼음에 꿀이나 과일즙을 섞어 먹었다는 설도 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는 베이징에서 먹었던 빙수 제조법을 베네치아로 전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대 로마시대에는 얼음이나 눈을 로마로 운송하는 이도 있었다. 탐욕과 식탐은 형제지간일까? 네로 황제는 눈에 꿀을 뿌리고 과일을 얹어 손님들에게 대접하곤 했다.
 우리나라에는 장빙(藏氷)과 반빙(頒氷) 제도가 있었다. 장빙은 겨울철 얼음을 저장하는 일이고, 반빙은 저장했던 얼음을 나누는 일이다. 이 제도는 신라시대부터 시작해서 고려와 조선까지 이어졌다. 얼음창고가 필요했다. <삼국사기>에 기록이 있고 경주에는 유적지가 있다. 조선시대 창덕궁 안에 내빙고가, 궁 밖에는 동빙고와 서빙고가 있었다. 동빙고의 얼음은 종묘사직 등의 제사에 바쳐졌다. 서빙고의 얼음은 종친이나 문무당상관, 퇴직한 벼슬아치 등에게 돌아갔고 병자와 죄인에게도 임금이 베풀었다는 기록이 있다. 하사받은 얼음은 팥빙수로 진화하지 못하고 화채가 되었다. 재미난 기록도 많다. 추석 이전에 얼음을 다 소비하거나 얼음을 훔쳐 파는 도둑을 막지 못한 관리는 파면당했다. 조선 성종 17년, 영조 45년에는 얼음이 잘 얼게 해달라는 기한제(祈寒祭)를, 빙고를 여는 날에는 사한제(司寒祭. 얼음신에게 올리는 제사)를 올렸다. 빙부(얼음짐꾼)로 뽑힌 백성들은 굶주림과 추위로 심한 고통을 겪었다. 얼음의 잔인한 면이다.
 얼음은 언제 팥과 만나 화려한 사랑을 펼친 것일까? 팥은 우리 민족이 사랑한 식재료였다. 신라시대 이전부터 재배된 팥은 붉은색 때문에 악귀를 물리친다고 여겼다. 팥밥, 팥죽, 팥시루떡, 수수팥단자 등 팥 요리가 많았다. 팥빙수는 일제강점기에 등장했다고 한다. 단팥을 얹어 먹었던 일본 음식이 전해졌다. 빙수 장수는 손수레에 얼음덩어리를 싣고 다니면서 깎은 얼음에 설탕 한 숟가락과 빨간 물과 노란 물을 뿌리거나 팥을 얹었다. 연유는 한국전쟁 이후 미군과 함께 우유가 한반도에 쏟아져들어오며 팥빙수에 가미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에선 서울우유가 1963년 처음 만들었다. 현대로 넘어와서는 26년 전 생긴 현대백화점 압구정점 ‘밀탑’의 밀크팥빙수가 큰 인기를 끌었다. 대전 성심당, 광주 궁전제과 같은 제과점의 팥빙수도 유명세를 탔다. 1980년대 중반,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을 유치하면서 경기가 상승기로 접어들자 제과점들도 호황을 누렸다. 제과점에서 팥빙수를 만들기 시작했다. 팥빙수도 덩달아 호황을 누렸다. 1990년대 후반부터 색다른 빙수들이 고급 카페나 대학가를 중심으로 생기기 시작했다. 녹차빙수, 와인빙수, 커피빙수, 아이스크림빙수, 과일빙수 등. 고급 베이커리들도 뒤따랐다. 최근에는 구수한 전통적인 팥빙수가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글 박미향 기자·

도움말 장소영(전통음식 연구가)·참고문헌 <우리 생활 100년 음식편>(현암사), <한국의 식생활문화>(신관출판사), <먹거리의 역사>(까치), <음식의 역사>(우물이 있는 집), <월간 파티시에>(비앤씨월드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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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에 직장인들의 야식을 주제로 한 연재물 '밤참'을 시작으로 먹을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인생이 있는 식탁> 등 4권의 음식 관련 책을 냈다. MBC <여성시대> 등에 출연해 맛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품 넓은 열정을 재산 삼아 맛과 이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문화 정착에 자신의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의 시작은 밥상이 출발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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