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여름이다.

물놀이, 아이스크림, 시원한 수박, 냉커피 그리고 방학.

방학이 다가오고 있다.

다시 말하면 오전에 잠깐동안 차를 마시며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을 시간도 이제 얼마남지 않았으며, 하루종일 아이들과 투닥거리며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고, 점심도 되기 전에 바닥나버리는 체력에 나이를 새삼 확인하며, 다시한번 선생님들에게 감사하게 되는 방학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초등학교로 불리는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나에게도 여름방학이 있었다.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은 방학이 시작되기가 무섭게 커다란 짐가방과 함께 나와 동생들을 기차에 태우고 '충남 서천군 서면 개야리'라는 참으로 한적한 시골 할머니댁에 데려다주셨다.

우리는 그곳에서 무려 한달간을 머물렀다.

당시 할머니가 살고계시던 시골집은, TV는 물론이고 냉장고도 없었고 가스렌지 대신 이름도 고풍스러운 "석유곤로"가 있을 뿐이고. 할머니집 근방 1km에 집이라고는 두서너채가 전부였고 그마저도 아이들은 우리들 뿐이고......

그곳에서 우리들은 여름 한낮의 뭉게구름이었다.

고요하고 느리고 참으로 심심했다.

물론 처음 일주일은 엄마에게 벗어난 해방감에 신이 나 어쩔줄을 몰랐다. 소꿉장난도 했다가 숨바꼭질도 했다가 그마저도 질리면 물받아놓고 물놀이도 했다. 놀고 먹고 자는 것도 지겹구나를 온몸으로 느끼는 데는 일주일이면 충분했다. 이런 저런 놀이들이 시들해질 때쯤에는 집근처를 어슬렁거렸다. 마침 야트막한 동산들이 많아 제법 놀거리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좋아했던 것은 산딸기 찾기였다. 기껏해야 우리 손톱보다 작은 게 대부분이었지만 온통 초록투성이인 여름 산길에서 만나는 붉은 열매는 꽤나 우리를 흥분시켰다. 무슨 대단한 게임이라도 하는 양 서로 먼저 찾으려고 야단을 떨었고 운이 좋은 날은 양손에 제법 소복하게 산딸기를 땄다. 새콤한 야생의 산딸기는 맛을 제대로 보기도 전에 목구멍으로 넘어가버렸지만 우리는 여름 방학 내내 산딸기를 먹고 또 먹었다. 따는 족족 입에 넣어보기도 하고 한움큼이 될때까지 기다렸다가 한번에 털어넣기도 했다. 알갱이 하나하나를 떼어내 혀위에 올려놓고 한참을 굴리며 맛보기도 했다. 변변한 먹거리도 놀거리도 마땅찮았던 우리들에게 산딸기는 시골 뒷산이 몰래 주는 선물같았다. 툇마루에 앉아 할머니가 부처주는 부채바람을 맞으며 산딸기를 먹다보면 잠은 또 왜그리 잘도 오는지. 자다 일어나보면 꼼짝도 않는 것같던 뭉게구름이 저만치 가있고 어느새 마당에는 할머니가 피워놓은 모깃불이 타고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우리들의 여름방학은 지나가고 있었다.

할머니도 돌아가시고 이제 시골집 툇마루에는 방학이 되어도 아무도 없다. 주인이 떠난 시골집 마당엔 잡초가 사람 키만큼 자라있을 것이다.

우리도 어느새 훌쩍 커서 벌써 아이를 둔 부모가 되어 버렸다.

 

엊그제 집근처 한살림 매장에서 산딸기를 보고는 냉큼 집어왔다. 알갱이들이 가지런하고 빼곡하게 모여 붉다못해 검기까지 한 산딸기들을 보니 어린 시절 여름방학이 떠올라 반가웠다. 물에 씻어서 소쿠리에 받쳐놓으니 양이 상당하다. 크기도 내 손톱만하다. 얼른 집어서 입에 넣으니 맛이 의외로 심심하다. 내 유년의 산딸기와는 사뭇 다른 그 맛이 새삼 낯설다. 어느새 아이들은 하나씩 입에 넣고 오물거린다. 애교쟁이 둘째가 맛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보인다. 그러고보니 아이들이 꽤 자란 것 같다.

 

방학이 다가온다. 그리고 정신없이 지나갈 것이다.  

"카르페 디엠."

부지런히 산딸기를 오물거리는 아이들의 까만 뒤통수에 대고 작게 말해본다.

혀 끝에 새콤한 산딸기맛이 남아있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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