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보기하다 간보낼뻔한 김치

조회수 8611 추천수 0 2012.06.22 17:41:26

간보기하다 간보낼뻔한 김치

 

  결혼 12년차 주부다. 결혼해서 줄곧 직장 생활을 했던 터라 김치는 으레 친정엄마가 담궈주는 줄 알고 살았다. 물론 그 대가로 용돈 겸해서 나름 섭하지 않게 드렸으니 날로 먹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3년전쯤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고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에 둘째도 낳게 되었다. 수입은 반토막이 났는데 식구는 늘었으니 살림살이가 어찌 되었을지는 굳이 말이 필요 없으리라.

  임신, 출산 덕택에 한 2년은 친정엄마한테 계속 빌붙어도 별말 없던 남편이 어느날부터인가 당신도 김치를 담궈보라고 툭툭 던진다. “내가? 김치를? 더구나 이제 막 돌지난 애를 데리고? 너무하네~ 안들을 걸로 하자”며 대꾸 끝. 말은 그랬지만 작년부터 엄마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더 이상 빌붙기 어렵겠구나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더구나 엄마한테도 예전처럼 후한 값을 쳐주지 못하는게 솔직히 좀 찔리기도 했다. 이러저런 전방위 압박속에 인선생 (인터넷선생) 믿고 한번 질러봐 하는 마음이 들어 난생 처음 얼갈이김치에 도전했다. 결과는 대성공. 남편은 자기가 먹어본 김치 중 최고란다. “자기는 어떻게 그렇게 감정 표현을 솔직하고 진실되게 하냐..” 큭큭큭, 하하하 그렇게 나의 김치는 시작되었다.

  한 두어번 얼갈이에 성공하자 자신감 백배해서 포기김치 도전! 나에겐 인선생님이 있으니 무서울게 없었다. 이왕하는거 좀 넉넉하게 하자 싶어 배추 6포기를 샀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과유불급. 얼갈이 김치할때도 꼬맹이 녀석과 전쟁이었는데 너~무 겁이 없었던 거다. 암튼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 할터. 김치 절이려고 받아 놓은 소금물에 철퍼덕, 흙 잔뜩 붙은 파뿌리 들고 뛰어다니며 흔들기, 겉절이 배추 뜯어 놓은 거 찢어 여기저기 어지르기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딸내매의 훼방에도 굴하지 않고 인선생 레시피를 따라 양념을 준비했다. 그렇게 굵은 땀방울 뚝뚝 흘리며 만든 양념 맛이 어라~. 망치면 큰일난다는 일념으로 먹고 또 먹고. 손으로 찍어 먹어보다 안되겠길래 소금 한줌 더 넣고 국자로 떠먹고, 액젖 좀 더 넣고 또 떠먹고, 고춧가루 한줌 더 넣고 또 먹고, 먹고... 에라 모르겠다 일단 배추에 무쳐보자, 한포기 무쳐서 앞에 뜯어먹고, 뒤에 뜯어먹고, 이파리 먹고, 줄기먹고 그렇게 6포기를 먹고 또 먹고. 이건 간보기가 아니라 간보내기다.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혀가 얼럴하고 간이 뜨끔뜨금. 그러다보니 내가 간을 보는 건 의미가 없었다. 자기가 쓴 글에 오탈자가 안보이는 것처럼.

  그날따라 남편이 술한잔 얼근하게 걸치고 늦게 들어왔는데 평소 같으면 술단지에서 헤엄치니 좋디, 어쩌구 저쩌구 했겠지만 들어오자마자 신발 벗기가 무섭게 김치 하나를 찢어 둘둘말아 빨리 먹어보라고 입에 넣었다. 깜짝 놀란 남편은 왜이래 하면서도 김치 담궜어? 좀 싱거운데... 뭐? 난 잽싸게 이파리를 중심으로 둘둘말아 입에 넣었다. 여긴 괜찮네... 아이고 피곤하다 하더니 푹 쓰러진다. 한 이틀 지나자 김치는 맛이 들었고 내 간 보낼 뻔 했던 김치에 남편은 너무너무 맛나게 밥을 먹는다. 맛이 정말 기특 신통방통이다. 아마도 이 김치 맛은 평생 혀와 마음에 남아 있으리. 남편은 둘째를 낳고 몸쓰는 일로 직업을 바꿨다. 늘 미안하고 감사하다. 그런 남편의 건강은 오롯이 내 몫이라는 생각이다.

“엄마, 그동안 날로 먹었네요. 죄송이요. 여보, 앞으로 평생 맛난 김치 담궈줄께요.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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