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까지 부르게 한 민박집 아주머니의 밥상

조회수 9177 추천수 0 2013.01.10 11:11:09

‘맛있는 인생’이라는 드라마가 끝날 때 요리사역이었던 임채무가 한 말이 인상깊었다. “착한 밥이란 힘든 사람이 한 그릇 두둑히 먹고 나면 기운이 불끈 다시 나서 살아갈 힘을 다시 주는 것” 이 대사를 들으며 나에게도 그런 밥이 떠올랐다.

지난 8월 중순, 대한민국의 휴가철이 끝날 때까지도 휴가를 망설이고 있었다. 깊어지는 마이너스에 전세마감일이 여름철이라 여름휴가라는 마음의 여유를 즐길 수가 없었다. 8월 15일을 딱 넘기자 두 형제의 눈빛은 간절함을 넘어서 애절함으로 바뀌고 있었다. 엄마, 제발! 가자! ‘대신 자기 할 일 열심히 해야 해!’ 하며 다짐을 받고 또 받으며 아이들과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전라도로 우리집의 또마를 몰았다.(또마: 우리집의 두 번째 경차, 남편이 새 차를 샀는데 “또 마티즈?”라고 해서 붙혀진 이름)

가로등이 없고 별빛만으로는 길을 가늠할 수 없는 시골길을 30분이나 달려서 우리는 담양‘무월민박마을’에 도착했다. 다음날 아침식사를 부탁하고 잠이 들었다.

된장국 냄새와 간장물에 끓여진 고춧가루 냄새에 어우러진 참기름 냄새가 코끝으로 와 간질였다. 몸을 뒤척였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친정집에 가면 아침에 맡아지는 그런 냄새였다.

아이들이 일어나 한옥 툇마루에 나가 앉았다. “일어났냐?” 구수하고 정다운 시골 사투리가 들려왔다. 밖으로 나가니 밤 늦은 시간이라 제대로 보지 못한 마을 풍경과 아름다운 한옥의 모습이 들어왔다. 툇마루에 앉으니 사방 자연이 품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커다란 대청마루에 놓인 밥상에 이웃이 완도까지 가서 잡아왔다는 잔갈치로 만든 조림, 애호박과 각종 야채를 넣어 끓인 된장국, 고구마줄기 볶음, 가지 볶음, 깻잎절임, 죽순 나물 무침까지 올라왔다. “야, 죽순이다.” 먹어본 적도 없는 것을 작은 아들이 반가워 소리치자 아주머니는 “으이, 니가 죽순을 좋아하는구나. 이따 갈 때 좀 줄게.”하시는 것이었다. 민박집에서 아침을 부탁하는 것이 왠지 폐를 끼치는 것 같아 조심스러웠는데 아주머니는 “차린 건 없어, 저기 다 텃밭에서 나는 걸로 한 거라. 그냥 우리 먹는대로 같이 먹어.” 하시는 것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아침 밥상에 둘러 앉았다. 된장국에 든 호박은 케잌처럼 달콤하고 부드러웠다. 고구마줄기와 죽순은 들깨가루에 적당히 버무려져 고소했다. 밥이 쑥쑥 줄었다. 아침 밥을 먹지 않는 나는 밥을 두 공기 먹었고 남편은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주인집 할아버지께서 “여럿이 같이 먹으니 참 맛있다.”며 식사를 더 하셨다. 낯선 여행객들을 귀한 손님으로 만들어주시는 느낌이었다.

그냥, 정말 텃밭에서 나는 야채로 만든 밥상이었지만 참으로 맛나고 배불렀다. 전날까지 옹색했던 마음이 펴지며 너그러워지는 것이었다. 다음 여행지를 위해 떠나는 우리들에게 아주머니는 얼린 죽순 한 뭉치를 주셨다. 너무 감사해서 민박비에 식사비, 죽순값까지 3만원을 더 드렸더니 손사래를 치셨다.

“그럼, 내가 준 게 아니라, 판 거 잖어. 이건 주는 거여. 밥값은 그냥 만 원이면 돼.”

도로 2만원을 건네시는 거였다.

그날 하루는 하루종일 배가 불렀다. 준게 아니라 판게 되쟎냐는 아주머니의 말이 귓가에 자꾸 들렸다. 나머지 여행동안 아주머니가 주신 죽순은 귀한 보물이 되어 행여 녹기라도 할 까봐 노심초사 아이스박스를 들쳐보았다. 죽순은 여러 날 우리 밥상에 올랐다. 먹을 때마다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준 거여. 판 게 아니라.

배만 부르게 했던 밥상이 아니라 마음까지 부르게 했던, 그리고 나를 부끄럽게 했던 아주머니의 밥상은 평생 큰 가르침이 될 것 같다. 아주머니, 또 한 번 찾아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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