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후반에야 결혼에 이른 나는 5녀 2남 가정의 큰며느리가 되었다. 당시 네 아가씨가 결혼해서 조카가 8명, 막내 아가씨와 도련님이 미혼으로 명절에 가족이 모이면 부모님까지 기본 20명 정도였다. 맞벌이하던 우리 부부는 육아를 겸해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어 명절에 우리집은 가족애가 두터운 형제들의 집합장이었다. 추석에 이제 3년차 큰며느리는 대접할 뭔가를 요리해야 하는데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모두가 선호하는 메뉴가 잡채와 갈비찜이라니 이건 기본이요, 아가씨가 좋아하는 고구마 튀김, 각종 전, 보너스 메뉴로 약밥을 하기로 했다. 친정 엄마 요리 솜씨가 워낙 좋다 보니 친정에선 요리 경험도 부족하고, 요리로 칭찬 들어본 적도 없던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요리책의 레시피대로 갈비찜에 집중했고, 잡채는 만드는 순서대로 몇 번을 간 보며 조심스럽게 요리를 했다.

 고구마는 튀김옷 없이 썰어 튀겼는데 간식거리로 인구수를 감안하여 많은 양을 튀겼고, 채썬 각종 야채에 밀가루 반죽옷을 입힌 야채튀김과 고추전, 꼬지전 등으로 기름요리의 하루를 보낸 후 피부에 이상이 생겨 추석 당일날은 문을 걸어 잠근 채 선풍기로 가려움증을 견뎌야 했다.

 요리는 맛있다고 금방 독이 나고, 이후 명절 때마다 나의 잡채와 갈비찜을 기다리는 이들이 생겼다. 튀김은 단 한 번의 알레르기로 어머니께서 다신 하지 말라 하시고, 전은 전기 후라이팬에 앉아 담소하며 부치는 거라 할만 하다.

 명절장을 볼 때면 언제나 한우갈비와 돼지갈비 사이를 오가며 가격을 계산하게 된다. LA갈비나 돼지갈비로 재료와 요리법을 바꿔 가며 몇 번을 시도했지만 식구수 대비 한우갈비 가격은 엄두가 나질 않았다. 결혼 10여년 만에 지난 해 추석, 처음으로 한우갈비를 사서 갈비찜을 했다. 칼집 넣은 고기를 찬물에 담가 한나절 피 빼고, 끓는 물에 삶아 비장의 양념장에 버무려 졸이다가 밤, 표고버섯, 무, 대추, 당근, 브로콜리 등을 부셔지지 않을 정도의 타이밍에 넣어 졸인다. 모두들 환영.

 예전엔 타이밍을 모르고  야채를 부서 뜨렸는데 쏘스가 맛있다며 먹어 준 형제들이 고맙고, 명절이 걱정되지 않는다. 잡채는 이제 어머니 요리 명언인 '대중으로'(어림으로)도 할 수 있다. 이번 설에도 마트가서 한우와 돼지 사이에서 고심할 나, 그리고 대한민국의 며느리들에게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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