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선물>막 입대한 아들에게

조회수 8445 추천수 0 2013.01.15 14:28:22

지난 1 2일 아들이 입대했다. 몇 십 년만의 추위라던 날의 306 보충대, 눈으로 다져진 연병장에 아들과 우리 내외는 서있었다. 머리를 깎은 녀석의 모습이 낯설었다. 수천의 장정과 그 세 네 배수는 될 듯한 환송인파가 이별의 집단의식을 펼치는 생경한 소란이 연병장을 넘실거렸다.

전역한지 27 , 돌이켜보면 나의 군대생활은 이제 환각처럼 다가온다. 저녁 어스름, 예외 없는 내무반 집합이 떨어지는 시간이면 세면장 수도 파이프에 허벅지를 맡기고 쓰러지지 않기를 빌어야 했던 통증이 먼저 몰려들었다. 선임과 후임의 동행으로서의 교감은 보이지 않았고 스스로의 고통을 먼저 피하기 위한 적의는 깊고 또 드셌다. 전시라면 죽음을 함께 넘나들 전우였으나 평시에는 선임과 후임의 사슬로 엮인 상대들일 뿐이었다.

기상나팔 소리 이전에 깨어 있어야 하며 가장 먼저 밥을 먹고 수돗가에서 선임을 기다리는 일과 설거지, 근무 전후의 보고 요령, 청소의 범위와 방법, 쉴 수 있는 시간과 공간 등의 지켜야 할 규율은 넘쳐났고 그 선의 경계에 선 것만 들켜도 집합의 폭력은 집행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무반의 왕고참이 자대 배치 받은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던 나와 동기를 불렀다. 근무복을 몸에 맞게 줄이기 위해서 부대 밖의 세탁소에 들러야 한다며 훈련소에서 받은 군복 한 벌과 위병소 근무를 위해 별도 지급받은 군복 한 벌을 챙겨 나오란 지시를 했다. 하늘같은 왕고참의 그림자를 밟을 새라 조심스럽게 그의 뒤를 따라 세탁소에 들러 이리 저리 몸을 재고 옷을 맡긴 후 세탁소를 나선 우리를 끌고 그는 부대 뒤편의 중국집을 찾았다. 그때 맛 본 자장면의 단맛이란 어떤 수사도 형용을 허락하지 않는 언어 이외의 경지를 경험하게 했다.

맛은 정말 절대 미각을 지닌 이들이 경험하는 특별한 경험이 아니다. 숨 쉬기조차 힘들고 막막했던 이등병 시절, 찔러도 피 한 방울 날 것 같지 않은 왕고참이 선물해준 그 작은 여유가 세상에 지극한 맛을 선사했고 또 그와 다른 내무반의 고참들을 다시 보게 했고, 그들도 나와 같은 통과의례를 겪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출발점이 되었다. 무사하게 아들 녀석이 첫 100일 휴가를 나오는 날, 네가 두려워하고 너를 힘들게 하는 그들도 너와 같은 통과의례를 지나는 똑 같은 사람일 뿐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들려줄 이야기가 되길 빈다


용인 수지 최병일

billykor@gmail.com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sort 조회수
공지 [이벤트] 사랑은 맛을 타고! imagefile 박미향 2011-11-18 30632
공지 [이벤트] 여러분의 밥 스토리를 기다립니다 - 밥알! 톡톡! - imagefile 박미향 2011-05-20 38104
61 '맛 선물' <흉내낼 수 없는 그맛> kkouns90 2012-12-28 8225
60 <맛선물> 80점짜리 김치국 jyeon82 2013-01-02 8974
59 <맛선물> 어머니표 사랑의 굴떡국 ambasa11 2013-01-05 8450
58 마음까지 부르게 한 민박집 아주머니의 밥상 blinker2 2013-01-10 9177
57 생김치 한다라이 janghsuck1 2013-01-10 8047
56 <맛선물>며느리의 자존심이 된 잡채와 갈비찜 [1] kmschn3515 2013-01-10 9242
55 [맛선물]수제비 asan1969 2013-01-11 8471
54 도시락 속의 꼬막무침 liver-pool 2013-01-11 8982
53 [이벤트응모] 외할머니 보다 단하나 lee34070 2013-01-11 8594
52 [이벤트] 소다북어국 sowon9781 2013-01-12 8687
51 그 아이 등판위의 짜장밥 summerbook 2013-01-12 8490
50 [맛선물] 아빠 그때는 몰랐어 미안해 file lovehse 2013-01-13 8372
49 <맛선물>특별한 서른셋 생일 케이크 ddorimom2003 2013-01-14 8477
» <맛 선물>막 입대한 아들에게 pungum 2013-01-15 8445
47 <맛선물> 깔깔한 깨죽 dreamfax 2013-01-15 10641
46 <맛선물>푸짐한 시골 인심 맛 oyllks1966 2013-01-16 8421
45 썩은 감자떡 madang6975 2013-01-24 11356
44 (맛선물) 라면 죽 살구나무 2013-01-24 8782
43 배추전 먹는 시간 irichmom 2013-01-25 9045
42 <맛선물> 도시락, 지옥철과 함께 사라지다 leedmeen 2013-01-26 9269